한국 축구, 월드컵 예선에서 실험은 금물이다
한국 축구, 월드컵 예선에서 실험은 금물이다
  • 이근형
  • 승인 200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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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우 윙포워드 기용은 발에 안맞는 신발 격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상하이로 떠나기 직전, 요르단과의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전술을 들고 나왔다. 쓰리톱 공격진에서 왼쪽 윙포워드에 김치우를 기용한 것이다. 김치우야 왼쪽 윙 미드필더까지 활약이 가능한 공격적인 선수이지만, 본래의 포지션은 수비수다. 윙백에 놓았을 때 최적의 경기력을 보이는 김치우를 왼쪽 윙포워드로 놓은 허정무 감독의 심산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소속팀 적응을 위해 국가대표에서 이탈한 박주영이라든지, 피 말리는 주전 경쟁 때문에 국위선양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룬 박지성 등 윙어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없는 상태에서 전술적인 실험을 가동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리그 경기에 꾸준히 나오고 있는 전문 윙어 이천수, 이근호 등이 버젓이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실험적으로 김치우를 윙포워드로 기용한 것은 모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작전을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까지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허정무 감독은 10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북한과의 1라운드 경기에서 왼쪽 윙포워드에 김치우, 타깃맨 스트라이커에 조재진, 그리고 오른쪽 윙포워드에 최성국을 투입시켰다.

여기에 적지 않은 잡음이 일었다. 먼저 친선 경기에서나 실험적으로 기용하는 줄 알았던 김치우를 또다시 포워드 자리에 놓았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겠다던 신영록을 현재 컨디션 난조를 겪고 있는 조재진으로 급하게 바꿨다.


좀 더 A매치에 적응을 많이 했고, 노련한 공격 플레이를 꾀하기 위해 조재진을 주전 타깃맨으로 심어놓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이미 요르단전에서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펼친 김치우를 또다시 중용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해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왼쪽 윙백으로서 상대편 사이드 공격 차단, 오버래핑을 통한 크로싱이 좋은 김치우라고 하더라도 1차 단계인 커버링, 수비 라인 전열 등을 무시하고 아예 공격만 파고드는 ‘윙포워드’를 맡겼다는 것은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억지로 신게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북한전의 쓰리톱 양상은 조재진이 문전에 대기하고 있으면, 오른쪽 윙포워드 최성국만 치고 올라와서 열심히 크로스를 날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재 새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의 적응을 위해 국가대표를 반납한 이영표의 공백 때문에, 왼쪽 날개나 사이드 계열에서 최적의 구상을 꾀하려고 왼쪽 날개 자원 두 명을 동시에 그라운드에 올림으로 해서 시너지 효과를 바란다는 것이 허정무 감독의 심산일 것이다. 그래서 김동진과 김치우가 각각 왼쪽 사이드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태를 구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경기에서는 본업이 ‘수비수’인 김치우가 좀 더 사이드 깊은 곳에 숨어서 그라운드를 활보하는 경향이 있었다. 답답한 나머지 김동진이 북한진영 우측면 돌파 후 벼락같은 중거리 슛을 쏘는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거기에 더해 후반전에 이천수가 최성국과 교체되어 들어갔을 때, 얼마 남은 시간을 두고 공격진에 활력소가 생긴 것은 김치우의 윙포워드 기용이 얼마나 들어맞지 않는 전술이었는지 증명케 했다. 이천수는 김치우가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북한 문전의 오른쪽 사이드를 철저히 공략하면서, 심지어 좁은 공간에서도 공간을 창출하려는 용기까지 선보였다. 이게 바로 윙포워드가 수행해야할 미션이다. 공격적인 자세로, 사이드에서 인사이드로 돌파한 다음 동료에게 볼을 주거나 활로를 터주는 게 윙포워드다. 후반전 막판에는 타깃맨 서동현과 이천수가 마치 투톱이 된 듯한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우습게도, 김치우와 김동진이 왼쪽 윙백을 보는 듯했다.



이천수마저 없었더라면


이천수는 윙포워드뿐 아니라 공격수와 스트라이커를 오가는 다재다능한 자원이다. 더해서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으니, 그가 왜 국가대표 넘버원 저격수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축구계에서는 북한전 이천수 투입에 많은 찬사를 보내왔다. 이천수는 비록 볼을 잡는 시간이 극히 짧았지만, 그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공격진이 각성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활동 반경이 넓은 이천수가 등장하니, 공격형 미드필더로 중원을 조율한 김두현이 드디어 질좋은 땅볼 패스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더 훌륭한 점은 같은 수원 삼성 동료로 짝을 맞춘 바 있는 서동현과의 콤비 플레이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천수와 서동현이 발을 맞춘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같은 소속팀이라는 동료애와 친숙함이 북한전 막판 우리나라가 북한 진영을 흔들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다. 서동현이 북한 문전에서 수비수 및 골키퍼의 시야를 가리고 있을 때, 이천수는 인사이드로 들어와서 그에게 볼을 배급하거나, 아니면 세트피스를 만들기 위해 북한 선수에게 볼을 맞히는 모션으로 코너킥을 얻어내기도 했다. 여기서 이천수의 비교적 빠른 눈썰미, 그리고 대표팀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천수였기에 망정이지, 그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기성용의 멋진 발리킥 득점으로 만족하고 전반과 후반 내내 지루하게 만들었던 ‘북한 수비 앞에서의 허겁지겁 플레이’를 끝까지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천수가 오른쪽 윙포워드로 기용된 후 자연스럽게 김치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했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국가대표 수뇌부는 그제야 깨달았던 것일까. 윙포워드는 윙포워드에 적합한 공격 자원이 맡아야 하는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를.



실험을 그만 두고, 그간 해오던 것으로 일관하라


2005 K-리그에서 당시 FC서울 감독직을 맡던 이장수 감독(베이징 궈안)은 잠시간 왼쪽 윙 미드필더이자 윙백인 김동진을 왼쪽 윙포워드 및 공격수로 기용한 바 있었다. 그의 출중한 오버래핑 실력과 날카로운 크로싱을 염두에 둔 것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김동진이 포워드로 올라왔을 때, FC서울의 예봉은 한 순간에 물방망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장수 감독은 1~2라운드까지 이런 실험을 해오다가, 나중에는 다시 김동진을 허리로 돌려보냈다.


이렇듯 선수의 포지션 실험은 극과 극을 달리는 양상이다. 실험한 결과가 신기하게 들어맞으면 성공이지만, 그냥 그런 대로의 성적표를 받으면 팀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기에 ‘윙포워드 김치우’ 작전은 우리나라가 월드컵 티켓을 따내겠다는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철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한 조에 ‘중동의 양대 산맥’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버티고 있고, 우리나라에게 껄끄러운 상대로 부상한 북한이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UAE까지 상대해야 하므로, 한국축구 취약 지역인 중동을 여러 차례 방문해야 하는 실정이다.


물론 이번 북한전 1라운드를 계기로 허정무 감독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남아공에 가느냐 마느냐 중요한 갈림길에 놓인 최종 예선에서, 앞으로 허정무 감독은 전문 윙포워드인 이천수나, 이근호를 많이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주영이 AS 모나코에서의 적응을 마치고 대표팀에 합류하면, 역시 그에게도 윙포워드 자리를 내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전력을 끌어올린 최성국도 있다.

윙포워드 자원은 많다. 더 이상의 실험은 금물이다. 아무리 세계 축구 트렌드가 ‘멀티 플레이어적 성향’이라서, 중앙 미드필더 이니에스타(FC 바르셀로나)가 윙어로 나서고, 마이클 에시엔(첼시)이 센터백이나 오른쪽 사이드백으로 활약한다 해도 두 선수 모두 월드 클래스급의 출중한 플레이어라는 점과, 그것의 실험은 전반적으로 경기 수가 많은 프로축구 리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한국 축구는 윙포워드 실험을 통해 느긋한 마음으로 최종 예선을 맞이할 시간이 없다. 북한전에서 드러난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어떻게 하면 개선시킬 수 있을까에 더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한다. 아직도 한국 축구는 조재진처럼 하드웨어가 출중한 타깃맨을 문전에 심어놓고 그에게 크로스를 올려 득점을 꾀하는 단순한 공격 패턴을 구사하고 있으며, 템포 조절을 못하거나 기본적인 전진도 못하는 수준 이하의 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만년병인 골결정력 부족까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세트피스 시에서의 영민한 작전이랄까. 실험을 그만 두고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고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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