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단지 모시는 가신신앙 산 증인 김월임 할머니
성주단지 모시는 가신신앙 산 증인 김월임 할머니
  • 김철
  • 승인 200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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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단지도 함께 모시는 고유의 민간신앙 맥 이어 / 김철



[인터뷰365 김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먹을 것이 푸짐한 추석 명절을 두고 내려오는 속담이다. 추석은 사람들만 즐거운 것이 아니다. 풍성하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의 오곡백과도 가을바람에 신나게 춤을 춘다. 올해도 조상을 모시는 추석 상에는 햇과일과 함께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질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예부터 농촌에서 집집마다 모시는 성주단지와 조상단지도 햇벼와 햅쌀로 다시 채워진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할머니들을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던 가신신앙이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 됐기 때문이다. 가신신앙의 상징물인 성주단지와 조상단지가 뭔지도 대부분 모르는 세상에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한민족 가신신앙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월임(89)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거주하는 곳은 상주와 의성, 예천의 3개 시군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속칭 다래라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행정구역상 상주시에 속하는 오지로 20여 가구, 30여명의 마을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를 가업으로 잇고 살아간다. 경주김씨와 경주최씨가 사이좋게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에는 수령 300여년의 느티나무 노거수도 있어 마을의 역사가 꽤 오래 됐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아흔 살을 눈앞에 둔 할머니가 가신신앙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 치면 어린 나이인 16살에 경주최씨 가문으로 시집을 오면서부터다. 73년 전의 일이다. 10년이면 바뀐다는 강산이 무려 일곱 번이나 바뀌는 세월 동안 할머니는 해마다 이 무렵이면 햇벼와 햅쌀을 정성들여 준비한다. 성주단지와 조상단지에 든 묵은 벼와 쌀로 바꾸기 위해서다. 그것은 곧 성주신과 조상신을 모시면서 집안의 평화를 기원하는 할머니의 간절한 믿음이자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뿌리 깊은 민간신앙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통 토담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는 청력과 시력이 젊은이 못지않을 만큼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다.



요즘 세상에도 성주단지와 조상단지를 모신다는 게 놀랍습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모셨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아직까지 가신을 믿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모시게 됐는지요.

“시집 와서 보니까 시어른들이 이미 모시고 있더군요. 집안의 안녕과 가족들의 건강 그리고 행복을 비는 단지지요. 당시에는 안 모시는 집이 없었어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인데 세상이 바뀌었다고 모시지 않는다면 조상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죽어서도 조상들을 뵐 면목이 없지요. 남들이 모시든 안 모시든 나와는 상관이 없어요. 제가 직접 모신 것은 시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부터입니다. 시부모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시할머니께서는 85살까지 사셨거든요. 내가 시집온 지 서너 해쯤 돼서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그 때부터 내가 모시게 된 거지요. 70년쯤 됐지요.”


할머니의 증언을 근거로 화제의 단지를 집안에 모신 햇수를 역산하면 140년은 된다. 시할머니가 비슷한 연령에 시집 왔을 때도 이미 모시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 세월이다. 140년 전이라면 흥선대원군이 한창 섭정을 하던 시기다. 따라서 할머니의 가신신앙은 조선시대의 민간신앙과 맥을 같이하는 셈이 된다.

마루 위와 안방 벽 두 곳에 단지가 놓여 있군요. 단지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각각 어떤 것을 담는지요.

“마루 위 벽에 놓인 것이 성주단지이고 안방 벽에 놓인 것은 조상단지지요. 성주단지에는 햇벼를 넣고 조상단지에는 햅쌀을 넣게 돼요. 곧 있으면 땅을 부치는 친척이 추수를 하게 될 겁니다. 도지를 받는 대로 새것으로 바꿔 넣을 참입니다.”



전래되는 가신신앙의 대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과 가장을 지키는 성주를 비롯해 자손번창과 가족의 건강을 돌본다는 삼신, 조상을 섬기는 조상신, 집터를 관장하는 터신 그리고 심지어 우물을 지키는 용왕신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형이 있다. 할머니가 모시는 것은 성주단지와 조상단지이지만 안방에 단지 대신 바가지를 놓으면 ‘삼신바가지’라 하여 삼신을 모시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박이 희귀해지면서 바가지는 어느덧 단지로 대체되어 삼신단지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고 이를 조상단지와 섞어 호칭하기도 한다. 할머니가 모시는 조상단지도 마찬가지다.


단지 속에 든 벼와 쌀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요.

“지금이야 단지를 모시지만 원래 단지보다 큰 항아리에 햇벼를 넣어 이듬해 봄에 종자용으로 사용하거나 방아를 찧어 먹기도 했습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성주용 벼는 팔지를 않았어요. 신성하기 때문이지요. 또 단지 속에 햅쌀을 갈아 넣고 난 뒤 묵은쌀은 밥을 지어 이웃들과 나누어 먹지 않고 가족들만 먹었지요.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부정 탄다고 했어요.”


성주단지와 조상단지에 치성을 드리는 일은 없습니까.

“명절 같은 날에 당연히 치성을 드립니다. 설날에 떡국을 끓이면 성주단지 앞에 바치고 집안의 평온을 성주 신에게 비는 거지요. 섣달그믐날과 정월대보름날 자정에는 집안의 평화를 비는 뜻에서 조상단지에 참기름 불을 밝히기도 합니다. 들기름이나 산초기름으로는 불이 붙지 않지만 접시에 참기름을 붓고 문종이로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이면 타거든요. 또 출산을 하게 되면 미역국을 끓여 먼저 조상신에게 바치고 먹게 됩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도록 바라는 뜻이 담겨 있는 거지요.”



평생 단지를 모시면서 느끼는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모실 겁니까. 대물림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조상 덕에 이밥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다 조상님들 덕분이 아니겠는지요. 끼니조차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시절과 비교하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입니까. 살아오면서 궂은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단지는 대물림하면 좋겠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 될 법한 이야기입니까. 나와 운명을 함께 하겠지요. 나야 물론 죽을 때까지 모시는 게 도리지요.”



57살 되던 해 두 살 연상인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까지 10마지기의 논밭 농사를 지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할머니의 신앙심은 남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4남 4녀의 자녀들 가운데 불행히도 장남과 3남을 먼저 저 세상으로 앞세우고 홀로 살아가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가신을 섬기는 의지력이 무엇보다 그렇다. 동년배의 촌로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굳은 신앙심이 지금까지 건강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손자까지 둔 다복한 자녀들이 여생을 함께 보내자고 호소해도 할머니는 한사코 거부한다. 그 이면에는 조상의 혼령이 담겼다고 믿는 단지를 두고 떠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할머니가 살아가는 전통 토담집은 마을회관 다음의 작은 경로당으로 일컬을 만큼 연일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다정한 성품의 친화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할머니가 모시는 작은 성주단지와 조상단지는 민속학자들에게 좋은 연구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신신앙의 상징물이 아직도 산간오지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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