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빛 발하고 가버린 패셔니스타 이언
눈부신 빛 발하고 가버린 패셔니스타 이언
  • 이근형
  • 승인 200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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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과 강호동을 바라보고 자라다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이언(본명 박상민)은 생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패션모델 차승원이 너무 멋있어서, 씨름 선수를 그만 두고 그 쪽 일을 알아보려고 했다” 라고 말이다. 그는 대학교에서 씨름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을 때, 패션 계통와 연예계를 넘나들며 멀티 플레이어적 성향을 보이는 스타 차승원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그래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익혀오던 씨름을 단번에 끊었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도 딴 실력파 선수였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런웨이를 걷고 싶은 욕망과 예능을 펼치고 싶은 끼가 꿈틀거렸다.


이언은 당시 인터뷰를 할 때, 이미 패션계에서는 손꼽히는 헤드라이너 모델이었음에도 인터뷰 내내 차승원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사뭇 진지하고, 또 진지했다. 자신 역시 런웨이에서 멋진 디자이너의 작품을 걸치고 등장하면, 주변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쉬에 눈이 부실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차승원이라는 ‘대선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언은 “강호동 선배 역시 씨름 선수 출신 연예인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차승원 선배 역시 내가 바라던 롤 모델이기 때문에 존경한다” 라고 말했다. 씨름 선수에서 연예인으로 전향한 강호동, 그리고 패션모델과 배우를 넘나드는 차승원은 이언의 영원한 스승이었다.


차승원이라는 사람은 어떠한가. 1988년 데뷔하여 조각같은 몸매와 이국적 외모로 단번에 모델계의 ‘거물’ 로 이름을 날렸고, 우리나라에서 톱 모델 1호라는 수식어가 붙는 전설의 인물이다. 그가 찍는 화보마다 상한가를 달리지 않는 것이 없었고, 1995년 한 해에만 세 가지의 패션계 메이저 시상식 (한국모델협회, 한국패션사진가협회, 한국패션협회 시상식 등) 에서 금자탑에 올랐으며,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 로 정식 배우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한국 영화의 흥행 전도사로 우뚝 서있는 그다.


이언과 비슷한 길을 먼저 걸었다고 할 수 있는 강호동은 또 어떠한가. 1990년, 1991년, 1992년 연속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천하장사를 거머쥐었고, 1993년 개그맨 이경규의 지원 아래 MBC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을 활보하며 ‘운동선수 출신 연예인’ 이라는 좀 안 좋은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꾼 인물이다. 호방한 연기 실력에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최근에는 각각 MBC와 KBS 야심작 <황금어장> <1박 2일> 로 안방을 휘어잡고 있다. 게다가 2008년 백상예술대상에서는 개그맨, 예능인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언은 연예계 전방위에서 활약하는 두 선배, 차승원과 강호동의 길을 걷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시도했다. 그가 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흘려놓은 ‘그간의 패션 모델 되기 위한 노력들’ 은 하나하나 종합해보면, 참 노력 없이는 되는 게 없다는 하늘의 명제를 다시 실감하게 만든다. 씨름 선수 특성상 몸집을 키우기 위해 우걱우걱 먹어두었던 식성을 버리고, 단백질 식단과 균형있는 다이어트로 몸매를 가꿨으며, 틈틈이 작품들을 보면서 연기 연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언은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 연기를 향한 맹훈련에 돌입했고, 결국 1999년 패션 모델로 데뷔, 2008년까지 패션계와 연예계를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2005년 한국모델협회 베스트 모델상을 수상한 차세대 모델 이언에게, 연예계로 진출하는 데 가능성을 비춘 작품으로 꼽는 것이 바로 ‘월드 스타’ 비의 노래 It's Raining의 뮤직비디오다. 패션모델들은 주로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에서 약간의 연기력을 과시하며 점차 연예계로 발을 넓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언 역시 같은 통로로 연예인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찰나의 미묘한 표정 움직임, 그리고 탄탄한 몸매에서 비롯되는 시각적인 시너지 효과는, 카메라 앵글이 원하는 그것과 일치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연예 계통 스카우터들이 이언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동성애자 씨름 선수라는 특이한 주제를 지닌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를 시작으로 본격 수면 위에 떠올랐다.


2007년 정초에는 박건형, 이하나 주연의 KBS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 에서 순박한 정육점 일꾼으로 나와 능글맞은 표정과 꾸밈없는 ‘이언 스타일의 연기’ 로 주목을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이언의 연기하는 캐릭터는 대체적으로 가식이 없고, 불의를 못 참으며, 정 (情) 에 약한 순박한 인물이다. 이것을 잘 캐치한 방송계 스카우터들은 그의 특성을 잘 살려 드라마는 물론, 광고까지 영역을 넓혀주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언의 광고 중, 모 은행 CF에서는 같이 연기한 배우 김재욱이 머리를 잘 굴려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일을 기다리지만, 이언은 무슨 수를 못 쓰고 가만히 방관하다 ‘커피를 흘리는’ 역을 맡았다. 또한 모 핸드폰 광고에서는, 결재를 제대로 처리 못한 순진한 회사원으로 분했다.


이런 이언 특유의 순박한 연기력은 2007년 늦여름, 초가을을 뜨겁게 달군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에서 드디어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청춘의 낭만과 젊음이 가득한 카페 ‘커피프린스’ 에서 서빙을 맡는 ‘황민엽’ 역을 맡은 그는, 고은찬 (윤은혜 분) 의 잔꾀에 속아 넘어가 곤욕도 치르고 ‘자장면 빨리 많이 먹기 대결’에서는 순박한 연기 그 이상을 보여줬다. 또한 김재욱 (노선기 역), 김동욱 (진하림 역), 그리고 공유 (최한결 역) 와 함께 팀을 이뤄 <커피프린스 1호점> 의 ‘외모 수준’ 역시 업그레이드 시켜, 많은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줬다. <커피프린스 1호점> 을 계기로, 연예계는 드디어 이언을 정식적인 배우로 인정해줬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밀려들어오는 광고,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를 불문하고 쏟아지는 그에 대한 러브콜은 가히 2007년을 이언의 해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디오 섭외까지 들어와 최근까지 개그우먼 김신영과 함께 MBC FM <이언, 김신영의 심심타파> 의 DJ를 맡기도 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의 메이저 패션 브랜드 Z사의 멋진 화보로 다시 패션계에 돌아오기도. 이렇게 자신이 유년기 시절에 바라던 ‘패션계, 연예계의 전방위 활약’ 은 모두 이뤄졌다. 더해서 2008년 KBS 드라마 <최강칠우> 에서는 듬직한 전사 ‘자자’ 역을 맡아 주연의 자리까지 넘보는 능력자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1981년생, 아직 이룰 건 너무 많고 경험할 것도 너무 많은 부산 출신의 한 순박한 청년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최악의 비극을 맞이했다. 2008년 8월 21일 새벽, 드라마 <최강칠우> 의 종방연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다가 서울 한남동 고가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받아버리는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는 수많은 패션계 인물, 연예계 인물들이 조문을 왔고, 생전 이언이 남겼던 최고의 연기와 앞으로의 가능성이 아깝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미처 병원에 조문하지 못한 수많은 팬들이 명복을 비는 글을 남겼으며, 드라마 <최강칠우> 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끝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디시인사이드 ‘최강칠우 갤러리’ 에서도 조문을 하며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참 막중했다. 강호동, 강병규 등으로 이어지는 운동선수 출신의 ‘안정 궤도에 오른’ 연예인, 그리고 차승원, 변정수를 시작으로 이천희, 배정남 등과 함께 이어오는 ‘패션모델 출신의 연예인’ 의 대열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패션모델 출신이라고 약간의 허세나 자만심에서 오는 예능 활동이 아니라, 기름기 쫙 빼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순수한 연기 활동이었기에 더욱 더 가치가 있었다.

이언은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완전히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 같더라도, 케이블의 패션 전문 채널의 보조 MC나 게스트로 출연하며 늘 ‘자신의 예능 고향’ 패션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엠넷에서 2006년 8월부터 방영했던 ‘차세대 패션 모델 발굴 프로젝트’ <아이 엠 어 모델> 에 이언이 출연하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을 말이다. 그는 민우기, 찰스, 그리고 최지호와 함께 패션 모델 4인방으로 느닷없이 메이저 무대에 등장했다. 이 네 명 모두 다 패션계와 연예계에서 알음알음 이름을 알리던 자들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넓은 연예계 시장에 이름 석자를 내민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엠넷은 <아이 엠 어 모델> 이라는 제호 아래, 차세대 모델 4인방의 좌충우돌 성공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모두들 다 한 몸매 하고, 한 외모 하는 개성있는 모델들이었지만, 세계 패션의 메카나 우리나라 메이저 패션계에서는 아직 익숙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그 네 명은 각자의 프로필을 알리기 위해 올 누드 화보를 찍기도 했고, 우리나라 굴지의 패션 디자이너들을 찾아가 열심히 광고 활동을 펼치며 결국에는 런웨이를 걷기도 했다. 역시 이 프로그램에서도 이언이 맡은 캐릭터는, 그룹 안에서 사람들을 이끌기보다는 그 안에서 순종하며 환경에 맞춰나가는 착한 사나이였다.



민우기, 찰스, 최지호, 그리고 이언 4인방은 세계 패션의 메카 프랑스 파리에 찾았다. 그들은 파리 거리를 거닐며 파리지앵들의 탁월한 패션 감각을 눈으로 익히고, 또한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구경하거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아가 한 수 배워오기도 했다.


파리 촬영분에서 인상깊은 장면은 네 명의 이 모델들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것이었다. 현재 패션계와 연예계 각각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민우기, 찰스, 최지호 등은 당당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언도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이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던 그였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안되니 가슴이 더욱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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