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개그맨 김형곤은 웃고 있었다
아직도 개그맨 김형곤은 웃고 있었다
  • 김두호
  • 승인 20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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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홈피에 가득한 안부 인사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별들의 고향>에 올릴 별을 찾다가 묵은 취재자료 더미에서 ‘비룡그룹’의 김형곤 회장을 만났다. 그가 떠난 날짜를 알려고 어느 검색창을 열었다가 아직도 살아있는 그의 미니 홈피를 만났다. 이름 앞에 고(故)를 달아놓기는 했지만 영원히 침묵에 빠진 그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의 인사말은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형, 오랜만에 왔어요. 편히 쉬고 계시죠?”

“하늘나라에는 저희 할아버지와 제 친구가 있으니까 가끔씩 말동무 좀 해주세요.”

그리고 <사진첩>이란 페이지로 넘어가자 ‘하늘, 그 쯤 어딘가에 계시죠? 춥지도 덥지도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을 하늘, 그곳에서의 새로운 삶은 어떠신지요?.....’라는 글이 띄워져 있다. 방명록에는 그가 떠난 후에도 다녀간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 켜켜이 쌓여 있다.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열심히 살았던 뚱보 개그맨 김형곤은 운동을 심하게 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겨울의 끝자락에 꽃샘바람이 불던 2006년 3월이었다. 1957년생인 그가 49세 되던 해였다.



김형곤의 전성기는 1980년대 TV 개그프로가 창업한 유령기업 비룡그룹의 회장시절이었다. 그 때의 프로를 재미있게 본 시청자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둘러앉은 중역들 앞에서 거드름을 잔뜩 피우다가 수시로 걸려온 사모님 전화에는 쩔쩔매는 그의 행동거지를 금방 기억할 것이다.

“네. 부인 접니다. 아닙니다. 두 손으로 받고 있어요. 네! 말많은 사람한테는 억울하면 너도 회장해라 이렇게 말하라구요?”

개그프로의 한 코너였던 <비룡그룹>은 5공화국 말기에 권력과 시대를 풍자한 코미디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8년에는 <변강쇠>를 만든 엄종선 감독이 거액의 개런티를 주고 영화로 만들었다. 그 무렵 개그프로에서 김형곤이 빠지면 재미가 없다고 할 만큼 전성기가 199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김형곤은 대구 근교의 영천에서 출생해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성장기에는 여러 곳으로 학교를 옮겨 다녔다. 네 아들 중 둘째인 그는 서울 무학초등학교와 장충중학 시절 전교 학생회장, 중경고교 때는 새마을부장,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재학시절은 민주화 운동의 선봉시위에 나설 만큼 매우 활동적인 청소년기를 보냈다. 1980년 TBC(현재의 KBS-2TV)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연예계에 들어와 개그맨으로 성공했을 때 그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꼭 내세우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엄격한 군인 장교였다. 상명하복의 규율과 절도 있는 생활을 하게 했고, 머리는 맑게(頭之淸也), 배는 가볍게(腹之脛也), 어깨는 무겁게(肩之重也)라는 가훈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자식들도 따르도록 하셨다.”

몇 대를 두고 이어온 세 가지의 가훈을 평생 신념으로 간직하며 살고 있다는 김형곤은 결국 두 번째 가훈인 ‘배는 가볍게’를 극복하지 못해 ‘공포의 삼겹살’ 소리까지 듣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공포의 삼겹살’이라는 별명을 유행어로 만들며 하루 밤무대 10여 곳을 뛰는 가장 정력적이고 비싼 희극인으로 호황을 누렸다. 간호사를 채용해 주사를 맞으며 다닐 만큼 분주하던 개그스타에게도 좌절과 방황의 시기가 찾아왔다. 직접 무대를 만들어 사업도 하고 돈도 벌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무대를 떠난 후 화려한 성공담은 나오지 않았다. ‘비룡그룹 회장’은 드라마였지 그의 실제는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졸지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처럼 발생해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유가족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약속과 유언대로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했었다. ‘비룡그룹 회장 김형곤’은 우리 곁에 없지만 어느 대그룹의 회장도 남기지 못한 웃음의 추억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기고 갔다. 홈피가 오래오래 살아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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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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