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미소짓게 하는 한국의 표정,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세계를 미소짓게 하는 한국의 표정,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 유성희
  • 승인 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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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형의 얼굴은 그때그때 내 마음”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닥종이로 만든 그의 인형을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번진다. 동글한 얼굴에 실처럼 가는 눈매와 통통한 몸, 발그레한 볼, 그리고 노래하듯 오므린 앙증맞은 입은 해학이 담긴 정겨움이 풍긴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한지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의 인형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씨가 오랜만에 귀국했다. 4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전시회 때문이다.

닥종이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지 40년, 독일에서 살며 작품을 만든 지 올해로 27년째인 김영희 씨는 “어느때보다 자유롭고 혈기왕성하게 작품을 만들고 있다”며 마치 자신이 만든 닥종이 인형처럼 웃는다.

전시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 준비로 바쁜 작가를 삼청동에서 만났다.

 

5년 만에 오셨는데, 공항에 내렸을 때 첫 느낌이 어떠셨나요.

이번만큼 좋았던 적이 없었어요. 보통 한국에 올 때 오후에 도착하는데 이번에는 새벽 5시 반에 비행기에서 내렸어요. 공항을 나서는데 공기도 무척 상쾌하고 아침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죠. ‘한국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묵고 있는 호텔 뒤 골목과 덕수궁 돌담도 여전히 정겹고 매미 소리 하나도 반가웠습니다. 독일에는 매미가 없거든요. 겨울과 초봄에만 한국에 나오다가 늦여름에 와보니까 색다르고 더욱 좋았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닥종이 인형 외에 사진작품도 함께 선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예쁜 조각을 사진에 담아 회화작품에 접목 시킨, 또 하나의 제 작품이지요. 제가 필름에 관심이 많아요. 그동안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오면서 늘 느낀 게 ‘왜 나는 조각만 해야 되나 움직여서 나가야 되는데’라는 생각이었죠. 이번 작업을 통해 좀 더 넓은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어요. 평생의 후회를 예순이 넘어서 해결을 한 셈이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반대를 하더라고요. 닥종이 인형이나 그냥 예쁘게 만들지 왜 하려 하느냐며... 새로운 작업은 예술가로서의 또 다른 경지라고 생각해요. 난 하고 싶은 걸 참으면 병이 들어요. 위험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잘 안되면 뭐 어때’ 배짱두둑하게 생각했지요.(웃음)

 

사진작품은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데, 반응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음.. 사람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시를 통해 ‘나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는 거예요. 전시는 대중과의 호흡도 있지만 나를 만나게 되는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좀 더 넓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셨던 만큼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변화가 있었겠죠.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가 되면서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졌어요. 그러다보니 작품에 대한 생각이 모던해졌지요. 저는 40년 동안 닥종이 인형을 만든 여자예요. 그런데 이번 포토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시면 제 작품이 많이 다양해졌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인형을 섹시하게 또는 유치하게 만들기도 했죠. 제가 유치한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폭이 넓어진 걸 실감해요. 유치한 인생도 인생이잖아요. 유치한 의상과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풍경이 더욱 밝아졌어요. 우리 어머니는 ‘도둑질 빼고 네가 하고 싶은 것 다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 때문인지 예술에 관한 한 내가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싶어요.

 

닥종이 인형의 표정이 무척 다양합니다.

제 심리에 따라 인형의 표정이 변해요. 다양한 표정은 곧 그때그때의 심정인 셈이죠. 포토작품의 경우 ‘야한 옷을 입고 밤에 디스코텍에 가는’ 기분으로 화려하게 만들어봤어요.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 머릿속은 끊임없는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글도 항상 쓰고요. 새벽에 커피를 마시다가도 번뜩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부터 밖에 나가기는커녕 세수도 안하고 하루 종일 작품에 몰두하죠. 주위에서 미쳤다고 그럴 정도로요.(웃음)

 

 

“여름비가 내리쳐 나무 문살에 퍼진 얼룩진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문종이를 붙이던 아버지가 내게 국화 몇 잎을 따오라고 하신다. 새하얀 종이 위에 국화잎으로 장식되던 모습에 나는 아버지의 하얀 마음을 보았다. 하얀 아버지의 마음이 가득 퍼졌다. 이렇듯 나는 하얀 공간을 보면 그리고 싶고 만들고 싶다. 폐결핵 끝 선 아버지의 조용한 말씨 그리고 뭐든지 조용해야만 되는 그때의 분위기. 그래서 나는 만드는 데에만 골몰했다.” (김영희 에세이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중에서)

 

국제무대에서 더 유명한 김영희 작가는 지금껏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등 유럽 각지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 퍼포먼스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글솜씨 또한 뛰어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뮌헨의 노란 민들레> <밤새 훌쩍 크는 아이들> <눈화장만 하는 여자> <눈이 작은 아이들> <책 읽어주는 엄마> 등 자전적 수필집도 냈다.

 

 

 

 

그는 5살부터 한지를 물들이고, 접고, 붙이며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왔다. 슬프면 울면서 만들고, 기쁘면 웃으며 만들고, 돈이 없을 때는 한숨을 넣어 만든 닥종이 인형들에는 작가의 삶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뒤 1981년 열네 살 연하 독일 청년과 운명처럼 만나 삼 남매를 데리고 독일로 건너갔다. 이후 독일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더 낳아 다섯 아이를 기르며 닥종이 인형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다섯 아이들이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닥종이 인형의 모티브가 되었던 자녀분들은 이제 다 장성하셨겠습니다.

다들 독립해서 결혼도 하고 사회생활 하면서 잘 살고 있어요. 사실 가족들이 제발 나를 잊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잠시 나한테 왔다가 돌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엄마가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제발 그런 생각 좀 안했으면 좋겠어. 애들이 가끔 집에 오면 내가 안 좋아한다는 걸 알아요. 엄마의 작품 할 시간을 뺏는다는 걸 더 잘 아니깐. 예전에 아이들을 키우며 작품을 할 때는 여유를 즐길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는 음악도 제대로 들어볼 시간조차 없었죠. 베토벤 전곡을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없어요. 듣고 있노라면 아이들 중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괴롭히고.(웃음) 요즘은 너무 좋아요. 아이들도 외롭지 않은 엄마가 있으니깐 좋지 않겠어요?

 

 

 

 

 

 

 

 

 

 

독일에서의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면서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해요. 그리고는 종일 작품이 몰두하죠. 독일에 건너간 이후 잠을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5시간 이상 잘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데도 4시만 되면 눈이 떠져요. 그러니깐 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요. 더 자고 싶은 건데 사실...

 

작가 김영희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첫사랑을 느낄 때 ‘어머나!’하고 놀라는 감정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잖아요. 자극이 와야 사랑을 느끼듯 모든 예술은 사랑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봐요. 꽃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아니잖아요. 이유 없이 빨려드는 무언가가 있었겠죠. 작가 또한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 스스로 반해야만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자극을 주기 위해 수단을 쓰면 몇 년은 반짝할 수 있겠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시회가 끝나면 한국에서 무엇을 하실 작정이세요?

사찰도 둘러보고 여행도 하며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싶었는데 못할 것 같아요. 전시회가 끝나고 5일 정도밖에 시간이 안 나요. 그래서 친정어머니 산소에 들르고, 친구들을 만날 계획이에요. 한국음식도 원 없이 맛보고요. 독일에서 만들어 먹는 한식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40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지치지는 않으세요?

지치기야 오히려 젊었을 때 지쳤어요. 그때는 작품에 대한 방향도 없고,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지금은 전혀 그런 거 없어요. 아이들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생활에 더욱 혈기왕성해져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어요. 대학 다닐 때 화실에 온 기분이랄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물론 예전의 엄마로서의 생활도 좋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이미 잘 아는 세계를 내가 왜 가요? 이제부터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는 몸과 정신이 예술과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안하면 나는 아파서 죽어요.(웃음)

 

 

 

 

 

인터뷰 내내 김영희 작가는 이제 막 예술을 시작하는 젊은 아티스트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풍부한 감성이 실린 표정과 말은 예순넷이라는 나이를 무색케 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전시회 준비를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작가의 뒷모습은 생기발랄한 소녀였다.

 

[인터뷰이 나우] 독일에서 활동하는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씨의 고희기념 닥종이 인형 전시회가 조선일보 초청으로 조선일보미술관에서 7월19일∼8월25일까지 개최되고 있다. <김영희의 아이들 - 닥종이전>으로 이름을 정한 이번 전시회에는 작가 자신의 젊은시절 모습을 되살린 자화상 인형 등 수백 점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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