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의 스타 계은숙, 영광과 좌절의 삶 ②
파란만장의 스타 계은숙, 영광과 좌절의 삶 ②
  • 김두호
  • 승인 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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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양로원 차려드리는 게 꿈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계은숙은 아버지를 찾아 헤맨 지 몇 해만에 수없이 드나들었던 계씨 종친회 사무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언제 몇시에 스카라극장 부근에 있는 다방에 가면 찾고 있는 아버지일지 모른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전갈이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를 19년 만에 만난 딸의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은 다음과 같았다.


“다방 안을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다가 한 신사와 시선이 마주쳤어요. 그 순간 온몸에 전율 같은 게 느껴지고 심장이 터질 것같이 두근거리더군요. 그게 바로 핏줄이 서로 통하고 당기는 걸로 표현해야겠군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 하고 나직하게 불러 본 첫 마디가 맺히고 쌓인 눈물을 왈칵 쏟아내게 만들었다. 분명 드라마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딸의 중개로 극적인 재회를 한 부모는 이미 차갑게 식은 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납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이미 아버지에게는 다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자녀를 비롯해 헤어질 수 없는 가족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후 그녀와 그녀의 가족 곁에서 떠나버렸다.



<기다리는 여심>까지 연속 히트를 시키며 인기가수로 떠오른 1981년, 계은숙의 인터뷰에는 아버지에 대한 인연을 계속할 수 없었던 정리된 아픔의 가족이야기가 그처럼 눈길을 끌게 했다. 그 한 해 전 마지막 본 아버지의 모습을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작년 가을 영등포 극장에서 공연을 할 때 분장실로 들어가다가 객석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았어요. 나는 단념을 하고 있어서 아버지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어요. 그러나 등 뒤로 느껴지는 아버지의 처연한 눈빛이 마음에 걸려 오래도록 가슴 아팠어요. 냉정해지지 않으면 괴로운 일들이 생길 것 같아 돌아 설 수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계은숙은 스스로 “나는 남자같은 성격을 가졌다”면서 배우자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곧잘 했다. 남자가 없는 집안에서 남자처럼 씩씩하게 성장한 여자답지 않게 얼굴이 예쁜 그는 대기업의 전속 모델로 활동하면서 작곡가를 만나 밤무대의 무명가수로 활동하며 꿈을 키웠다. 첫 히트곡 <노래하며 춤추며>로 인기가수의 꿈을 이룬 그녀는 그 무렵 ‘가수왕’보다 돈을 잘 버는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외로운 할머니들을 돌보는 양로원을 갖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소망을 이뤄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계은숙은 소망대로 인기가수로 재산을 모을 기회도 많았으나 불운한 일과 인간관계로 실속을 잃는 일들이 많았다. 가요활동이 부진할 때는 강남에 유흥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큰 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나오지 않았다. 활동무대를 일본으로 옮겨 ‘엔카여왕’ 소리를 들을만큼 인기와 돈을 모았지만 역시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1999년에는 한국인 남편과 이혼했고 소속사와 갈등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하는 시련도 찾아왔다. 과거에도 그랬다.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누릴 때도 승용차가 전복되는 대형교통사고로 머리에 박힌 유리파편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계은숙은 그때의 후유증으로 고질병인 두통증세가 나타났고 수시로 머리가 아플 때마다 주변사람들이 갖다주는 약을 먹다가 각성제 중독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참새의 눈물> <기다리는 여심> <너무 멀어요> <연정> <다정한 눈빛으로> 등의 히트곡을 낸 계은숙은 활동무대를 일본으로 옮긴 후 가수 이성애를 필두로 조용필 김연자 민해경 보아 등과 함께 일본에서 노래로 한류의 바람을 일으키며 성과를 남긴 주역이다. 금지된 약물복용으로 20여 년간 쌓아올린 인기와 명예를 잃고 눈물로 돌아온 그녀가 안쓰럽기만 하다. 행운과 불운 사이를 오가며, 넘어지면 일어설 줄도 알았던 그녀에게 재활의 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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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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