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풀린 미스터리-히치콕의 ‘새’들이 사람을 공격한 까닭
50년 만에 풀린 미스터리-히치콕의 ‘새’들이 사람을 공격한 까닭
  • 김다인
  • 승인 2012.01.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365 김다인】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1899.8.13~1980.4.29)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영화는 ‘싸이코’가 아니라 ‘새(The Birds, 1963)이다.


평화로운 항구 마을 한두 마리씩 날아다니던 새들이 갑자기 새까맣게 전선 위에 줄지어 앉기 시작한다. 길을 걷고 있던, 금발을 멋지게 틀어올린 티피 헤드런에게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슬쩍 머리카락을 흐트려놓더니 이어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 머리를 쪼아대고 도망가는 헤드런의 뒤를 따라간다. 집안으로 간신히 피신하지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포기할 줄 모르는 새떼들의 공격이 공포스럽게 이어진다.


보고 있는 관객들조차 마치 자신의 머리가 실제로 새한테 쪼이는 듯한, 리얼한 이 영화의 공포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새떼들이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장에 갇혀서 사람들에게 즐겁게 노래를 불러주든지 아니면 인간사와 무관하게 훨훨 날아다니던 새들이 왜 사람을 공격하는 걸까. 히치콕은 그러나 영화 내내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해답이 최근 나왔다. 새들은 ‘미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새들이 미친 이유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미국 루이지애나 스테이트대학 해양생물학 연구진은 지난 3일 영화 ‘새’ 속에서 새들이 미치게 된 이유는 바닷물을 오염시킨 독성 플랑크톤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새들이 미친 사건은 1961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몬터레이만 일원에서 일어났는데, 연구진이 1961년 7~8월 사이 몬터레이만 지역에서 채집돼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 보존돼온 동물성 플랑크톤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은 것이다.


히치콕은 바로 이 몬터레이만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새’를 만들었다. 새들이 갑자기 미쳐버린 이 사건은 당시 지역신문에 실렸고 이를 본 히치콕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자새한 사항들을 물어보고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고 한다.


유독성 플랑크톤을 먹은 새들은 방향을 상실하고, 가려움증과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이 플랑크톤을 먹은, 당시 몬터레이만에 있던 수천 마리의 검은슴새(sooty shearwaters)들은 먹은 멸치들을 토해내고 바위건 건물이건 가리지 않고 돌진해 피를 흘리고 죽었다. 마치 묵시록의 마지막 날이 온 것 같은 광경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독성분은 196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이 주택건설 붐이 일면서 공사현장에서 패혈증을 유발하는 독성이 탱크에서 새면서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몬터레이만의 따뜻한 물과 잔잔한 바람이 번식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몬터레이만 사건에서 새들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모티브로 만든 히치콕의 영화 ‘새’는 사람을 공격한다. 실화를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했다는 점도 있지만, 이는 히치콕 영화에 불길한 징조로 새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대표작인 ‘싸이코’에서도 주인공 노먼 베이츠가 박제된 새와 함께 등장하는 등 그의 영화에는 유독 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 그 자신이 새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지니고 있다가 몬터레이만 사건이 터지자 이를 극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50년 만에 풀린 ‘새’의 미스터리를 알고 나니 이제는 ‘새’의 공포가 더 현실화되는 것 같다. 공해와 오염으로 인해 주변의 것들이 미쳐가면, 히치콕의 ‘새’가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새들의 반란’은 시작되고 있지 않은가. 시청앞 광장에 먹이를 따라 걸어다니는(나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가 새삼스러워 보인다.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김다인
김다인
press@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