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장미희는 영리하고 강해요” 어머니 최숙희 여사
“내 딸 장미희는 영리하고 강해요” 어머니 최숙희 여사
  • 김두호
  • 승인 20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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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딸과 함께 뛴 맹렬 매니저 엄마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KBS-TV <엄마가 뿔났다>에서 드라마의 재미를 틀어잡고 지금 한창 화제의 중심 스타로 등장한 배우 장미희. 그에게는 소문난 엄마가 있다. 이제는 딸 곁에서 물러나 살고 있고, 연세도 팔순에 가깝지만 1970년대말 딸 장미희가 데뷔해서부터 30여 년을 함께 뛴 대표적인 맹렬 매니저 엄마였다.

최숙희 여사를 만났다. 빨간색을 좋아해 빨간 모자에 빨간색 투피스를 즐겨 입고 방송사 스튜디오와 영화 촬영장 어디든 장미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엄마도 있었다. 최 여사는 요리솜씨가 뛰어나 집을 찾는 수많은 방송이나 영화 종사자 또는 기자들에게 칼국수와 만두국을 대접하는 것도 취미처럼 즐겼다.

32년간 살았다는 장미희의 집 서울 서교동 338번지는 고목이 된 정원수들의 짙은 녹음 속에 몸을 숨긴 여름 매미들의 마지막 합창이 조용한 집안을 시끄럽게 했다. 수십 년을 두고 마주친 대문 안쪽의 등나무 덩굴도 주인처럼 세월의 무게를 안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요즘 TV 드라마 시청자의 화제거리가 주로 따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엄마가 뿔났다>를 보시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하. 김수현 작가는 하늘이 내린 천재가 분명해요.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어떻게 그리 잘 묘사하는지 성당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온통 <엄뿔> 이야기들이랍니다. 그 김혜자(극중 김한자) 씨가 가출한 걸 두고도 정말 우리들 가슴에 맺힌 걸 대변해주고 있구나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시어른 모시고 평생 집안 살림만 하며 산 사람들의 한을 분풀이해주고 있으니.



이제는 나일석(백일섭) 김한자(김혜자) 가족보다 사돈인 김진규(김용건) 고은아(장미희) 부부 쪽으로 재미가 넘어갔다고들 합니다. 특히 고고하고 도도하던 따님 장미희 씨가 기를 죽여서 살던 남편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슬슬 매는 연기가 일품입니다. 오르지 교양과 품위를 앞세우지만 속은 보통여자이면서 속물성을 갖고 있는 양면의 성격을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실제 성격과 닮은 데는 없습니까?

하하하. 우리 진짜 미희랑 고은아가 닮지 않았느냐고요? 출연 인물들이 모두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요. 캐스팅도 잘했고 워낙 연기도 잘들 해서 이순재 백일섭 김용건 강부자 씨며 모두가 배역의 캐릭터에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미희는 고은아 같은 데가 있지만 그렇게 비굴하지는 않구요, 머리도 훨씬 영리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영리한 데가 있었나요?

미희는 어릴 때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미정아(장미희의 어릴 때 이름) 너는 똑똑하니까 땅으로 다니지 말고 훨훨 날아다녀라. 미국도 가고 파리도 가고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외교관 같은 직업을 가지고 멋지게 살아라”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배우가 되었어요. 그게 소질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영리해서 처음부터 감독들이 장담을 하더군요. 첫 영화 <춘향전>이나 첫 TV드라마 <해녀 당실이>를 찍을 때 모두가 분명히 큰 연기자가 될 거라고 나보다 더 흥분들 하더라구요. 미희는 착하면서 강해요. 주어진 일을 해낼 때 보면 악바리같은 데가 있어요.


첫째는 본인의 노력과 재능이 있어야 큰 연기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재능이 빛을 보게 하는 뒷받침도 반드시 필요한데 그 역할을 어머니가 톡톡히 해냈다고 봅니다. 매니저를 하시면서 겪은 일화들이 수북히 쌓여 있지요?

우리 모녀에게는 의지할 구석이 아무데도 없었어요. 오르지 죽기살기로 노력하며 경쟁에서 이기는 길을 찾아야 했지요. 지금은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지만 그때는 종교가 없었어요. <해녀 당실이> 촬영장인 구룡포 바다를 보며 그냥 절하고 간곡하게 기도했어요. 매달릴 곳이 없었으니까. 미희도 스태프들이 탄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수영도 못하는 아이가 바위에서 바다로 빠지는 연기를 겁없이 반복하며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거든요. 재촬영을 하는 사고가 생겨 철야촬영을 하고도 방긋이 웃고 있더라구요. 저런 정도면 안되는 일이 없겠구나 하고 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 쏟아부었지요. 그때부터.



서울의 극장 한곳에서 개봉하던 시절에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가 <겨울여자>였지요. 그 영화로 톱스타가 되고 정윤희 유지인과 트로이카시대의 주역으로 인기를 누리는 동안 엄마 매니저로도 전성기였지요?

내가 너무 적극적이고 과보호적인 엄마가 되어 딸이 불만을 가진 적도 많지만 참 바쁘게 살았지요. 여기 저 마당과 2층 집안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도 많았어요. 결국 평생 내 등에 백넘버 대신에 장미희 엄마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녔지요. 늘 ‘입은 원수를 만들고 귀는 친구를 만든다‘는 잠언을 가슴에 새겨서 말조심도해야 했구요.


작년에 느닷없이 학력 파문들이 일어났을 때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죽고 싶었지요. 한없이 마음이 아팠어요. 딸 대신에 내가 십자가를 질 수 있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미희도 힘없이 들어와 이민이라는 말도 꺼내더군요. 미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잘못이 있다면 이 어미가 삼남매 품에 안고 먹고 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동안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해준 것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미희는 18살에 배우가 된 뒤에도 꾸준히 공부를 했고 대학에서도 평생 익힌 연기지식으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아왔어요. 생각하기 싫네요. 세상이 무섭더군요. 그러나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나는 믿어요.


살아온 힘든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미희가 싫어하면 어떡하나 걱정이네. 밝혀도 뻔해요. 6.25로 황폐화된 시절에 살았고 세 아이의 아버지와 일찍 헤어져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파는 일부터 먹고 사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지요. 가장 참담했던 건 회현동 자그마한 집에서 살 때 집에 불이 나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섰을 때였어요. 갈 곳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의 골방에 가족이 의지해 살며 앞이 안보이는 절망에 빠져 눈물로 지새우던 때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미희가 3살 때였지요. 그런데, 내가 지금 밝히고 싶지 않지만, 내 주변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픈 일이 있었어요. 마음이 아프면 그냥 발길이 성당으로 갑니다. 그곳에 가면 하나님 예수님 손길이 따뜻하고 교우들과 주고 받는 눈길도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기도해요. 기도하며 살아요.


가족 말고 가깝게 지내는 분은 누구인가요?

바로 길 건너 이웃에 이호근 이종희 씨 부부가 삽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분들이지만 10년 넘도록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는 이웃입니다. 이웃사촌이라고 하지만 사촌보다 더 가깝게 지내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다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고 평화로울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쉬운 일이나 앞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나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8년째 수필공부를 하며 틈틈이 동인집도 내고 수필을 써왔어요. 좀 게을러졌지만 평생 일기도 써왔어요. 그리고 미희의 각종 자료를 오래전부터 정리하고 있어요. 사진에서 기사 스크랩들, 수많은 비디오 테이프를 비롯한 영상기록물들을 분류하고 있어요. <엄마가 뿔났다>도 빠짐없이 모니터하고 비디오로 복사자료를 만들어 두고 있어요. CD는 아직 손에 설어서 비디오 테이프로 주문제작을 해 보관해요. 이제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해서 딸에게 물려주어야지요. 아무 욕심이 없어요. 이 나이에는 정리할 것밖에 없지요. 얼마 전 박경리 작가가 떠나시기 전에 버리는 일밖에 없어서 즐겁다고 하셨다는데 내가 그런 처지 같아요.


딸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말했어요. 너에게 마지막 모든 것을 바칠 곳은 학교라고. 돌보아야할 가족도 제자들이라면, 그들이 영원히 기념할 수 있는 무엇을 대학에 남기도록 언젠가 물심(物心) 모두를 바쳐 무엇인가를 만들고 남기면 좋겠다는 내 생각을 전했어요.


따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그냥 듣고만 있었지만 엄마보다 더 지혜롭고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 나름으로 생각이 있겠지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 건가요?

새벽에 잠에서 깨면 양배추(애완견) 데리고 동네를 한바퀴 돕니다. 홍익대 동네는 젊은이들이 밤낮없이 어울려 노는 곳이 많아요. 공원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비보이를 즐기고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도 있어요. 저렇게 넘치는 정력으로 공부를 한다면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재산을 만들 텐데 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최 여사와 감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테이블 앞에 마주앉아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양배추와 고양이 한 마리가 주인의 곁에서 맴을 돈다. 고양이 이름은 미미였다. 장미희가 1996년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에 출연할 때 멕시코 로케이션 현장에서 구입해 데려온 녀석이다. 그동안 50여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한때는 대지 7백여㎡의 넓은 집안에 애완견과 고양이가 동물원을 이루고 살았다. 모녀가 워낙 동물을 좋아해 해외 나들이 때 동반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왜 동물을 그토록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사람은 주인을 배신하기도 하지만 짐승은 결코 주인을 물지 않아요. 베풀면 반드시 그 사랑을 느낄 줄 알고 자신의 몸보다 주인의 몸을 더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 동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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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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