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도선수들은 메달 따고 우는가
왜 유도선수들은 메달 따고 우는가
  • 김희준
  • 승인 20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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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정신이 살아있는 그들에게 보내는 박수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수영의 박태환을 비롯해 남녀 양궁선수들, 펜싱에 이르기까지 4년 동안 열심히 갈고닦은 기량을 아낌없이 선보이고 있다. 생활고와 무개념의 정치판에 찌푸려져있던 국민들 얼굴에도 오랜만에 환한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다. 밤이건 낮이건 우리 선수들이 메달을 땄을 때 아파트 단지 내에 울려 퍼지던 박수와 환호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기쁜 일에 목말라했는지를 알게 했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자랑스럽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들은 유독 울음이 많았던 유도선수들이다.

올림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날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유도선수 최민호는 그 메달이 확정된 순간 울음을 감추지 못했다.

작은 체구에 엄청난 순발력으로 결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대선수들은 한판으로 넘겨버린 그는 이길 때마다 검지를 치켜올리며 여유만만한 표정을 짓다가 금메달을 메다꽂는 순간에는 아이처럼 울었다. 결승에서 맞붙어 최민호에게 진 오스트리아 선수 파이세르가 마치 형처럼 끌어안았을 때도 그 어깨를 빌려 한없이 울었다.



유도선수의 울음은 은메달을 딴 왕기춘에게도 이어졌다. 갈비뼈 부상을 견디며 결승에 올랐지만 결승 상대인 엘누르 맘마들리에게 너무 빨리 무너져버린 갓 스무살의 어린 선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두 선수의 눈물은 그 의미가 달랐을 터다. 최민호는 4년 전 동메달에 그친 한을 풀었다는 마음이었을 테고 반대로 왕기춘은 조금만 더 힘을 낼 걸 하는 회한을 담은 울음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왕기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를 물리치고 올림픽에 출전한 터였다.

최민호와는 달리 수영 자유형 4백미터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국내 수영사상으로도 처음 금메달을 딴 박태환이나 양궁 금메달 남녀선수들은 환하게 웃었다.

왕기춘과는 달리 펜싱에서 은메달을 딴 남현희나 역도에서 은메달을 딴 윤진희의 우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같은 역도선수로 최민호와 준결승에서 맞붙은 네덜란드 선수는 동메달을 땄음에도 마치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 유도선수들만 금이건 은이건 메달을 딴 후 우는 걸까.

그동안 힘든 훈련을 거치면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 그럴까.

아닌게아니라 유도선수들의 훈련 현장은 치열했다. 이들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 일본 전지 훈련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랬다. 체육관 천정에까지 매달아놓은 동아줄을 두 팔만 이용해 올라가고 자기 체급보다 두 체급은 더 위인 일본 선수를 엎어치기 위해 뻘뻘 땀을 흘렸다. 고된 훈련을 이겨내는 동시에 자신의 체중과의 싸움, 같은 체급 동료들과의 무한경쟁 등은 웬만한 자기컨트롤 없이는 이겨내기 힘든 것으로 보여졌다. 나이가 좀 많거나 부상이 있는 선수들을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훈련을 쉬지 않았고 나이가 어린 선수는 상대편 선수가 얕잡아볼까봐 그런다며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연습까지 스스로 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올림픽 출전 멤버로 최종 선발된 것이니 우승 또는 준우승 순간에 그동안의 힘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의 스트레스와 그건 다른 종목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들 4년을 준비하며 이 정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왜일까.

정확한 사연을 조사한 바는 없지만 추측컨대 유도라는 운동종목이 수영이나 펜싱 등 다른 종목에 비해 아직 헝그리정신이 더 살아있는 종목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잘 못살았을 시절에 운동선수 가운데는 배 곯아가며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헝그리 정신의 운동종목은 복싱이었고 육상도 이에 못지않았다. 이들 운동종목은 다른 기구 하나 없이, 공 하나 필요없이 오직 맨몸으로 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할 수 있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특히 86아시안게임 중,장거리 금메달리스트인 임춘애 선수는 라면을 먹어가며 뛰었다는 것이 밝혀져 국민들 가슴을 뭉클하게 한 바 있다.

사는 것이 점점 나아지면서 이같은 헝그리 정신은 점차 무뎌져갔다. 오직 자신의 몸을 단련시켜 다른 선수를 쓰러뜨리는 격투기 종목은 이제 비인기종목이 됐으며 그 대표적인 복싱은 다이어트스포츠로 형질변경이 됐다. 운동을 특기로 하는 학생들도 힘든 운동보다는 골프 등 멋있고 돈도 많이 버는 운동 쪽에 점차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도는 이들 인기종목에 비하면 여전히 헝그리정신에 가까운 운동이다. 자신의 몸과 가능성으로 시작할 수 있는 맨몸운동이며 비록 가정형편이 어렵더라도 본인의 투지로 끝까지 해볼 수 있는 운동인 것이다. 헝그리정신으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자신의 힘든 환경을 잊으려 운동을 하고 운동의 결과물이 자신의 부모나 집안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 있다.

최민호는 금메달을 딴 후의 기자회견에서, 정부에서 주는 포상금으로 무엇을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집이 없는 부모님 집 사드리는 데 쓰겠다고 말하며 비로소 웃었다. 금메달을 딴 직후 그의 울음은 결국 고단하게 지나온 어려운 시절이 끝났음에 터진 웃음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미래가 창창한 왕기춘은 4년 후 다시 한번 더 큰 울음을 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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