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목소리 재현중인 소리전문가 배명진 교수
예수 목소리 재현중인 소리전문가 배명진 교수
  • 김우성
  • 승인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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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밝혀낼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합니다”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 배명진 교수는 흔히 말하는 ‘소리전문가’이다. 시사 예능 교양 프로그램 가릴 것 없이 소리에 관련된 궁금증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가 TV에 등장하여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당시 범인이 쏜 것 이외의 총성이 존재한다거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가 중년남성의 목소리와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파도가 칠 때마다 조약돌이 구르며 내는 몽돌소리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준다고 밝혀내는 식이다.


이 같은 분석은 하나같이 과학적 원리에 기초한 것이어서 상당한 신빙성을 갖는다. 또한 대부분이 일반생활과 친밀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일상적인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그는 소리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 교수이다. 해외출장을 마치고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그를 만나 방송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송 일로 바쁘시죠?

작년에 방송에 출연한 횟수가 200건이 넘습니다. 방송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하루 한 건 이상 방송촬영에 시간을 할애했죠. 잘 아시겠지만 실제 화면에 보이는 건 몇 초 안 돼도 촬영시간은 길잖아요. 특히 소리는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니까 이미지화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가려고 해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웃음)


가장 많이 출연하셨던 게 <스펀지>였지요?

<스펀지>에서 재밌는 것을 많이 다루었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교수가 소리로 라면을 끓였다, 계란을 삶았다 하니까 그걸 구현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소리는 에너지니까 우리는 소리를 갖고 텔레비전을 켜주겠다”해서 성공을 한 적이 있고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목소리로 유리를 깨는 영상이 방영된 적이 있었어요. 국내에서는 사례가 없었는데 그때 처음 김종서 씨의 목소리로 유리컵을 깨도록 만들어줬죠.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들이어서 일단 시도해봤는데 성공한 거죠.


필요 이상의 전문가 출연이라는 지적도 있던데요.

너무 자주 출연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기존에 있던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단순하게 아이템을 가지고 오면 그에 한정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죠.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서 얘기해주고요. 이런 것들은 전부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것들이에요. 또한 소리공학을 하다 보니 실용성 있는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현실적으로 불필요한 걸 만들어내면 공학자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스펀지> 같은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는 거고요.



아직까지 ‘소리전문가’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합니다.

국내에만 석사 이상 3천5백 명에 이르는 소리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들이 모인 게 한국음향학회이고요,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그는 현재 한국음향학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소리공학연구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소리를 분석하고 규명해서 실생활에 응용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소리로 청력연령을 측정한다거나, 다리나 건물의 붕괴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으며, 변비를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도 있어요.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도 재현한 적이 있습니다.


고인의 목소리를 재현한다고요?

어느 날 느닷없이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나라 위인의 목소리를 재현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후보군이 남성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었고 여성은 유관순 열사였죠. 그러기 위해서는 신체구조에 대한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세종대왕이랑 이순신 장군의 것은 확보할 수 없었어요. 근거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죠. 그런데 유관순 열사는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촬영했던 사진이 남아있었어요. 나이 18세, 키가 169.9cm에 목이 굵었어요. 목소리가 우렁찬 사람이었다는 거죠. 곧바로 비슷한 체형의 여성을 섭외해 최종 5명을 추려내는 식으로 하드웨어적인 골격을 만들어냈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 됐죠. 충청도 억양이 약간 들어갈 거 아니에요. 유관순 열사 생가에서 멀지 않은 웅변학원에 가서 연설하는 톤을 확보했고 5명의 목소리와 조합해서 유관순 열사 목소리를 재현했어요. 무슨 근거로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라 주장하느냐는 의견이 당연히 있었죠. 결국 YTN에서 검증을 받은 겁니다. 유관순 열사의 남동생에게 딸이 두 분 계셨어요. 통화를 해보니까 우리가 만든 목소리랑 똑같았죠.


다른 위인들의 목소리를 재현할 계획도 있으십니까?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애초에 가장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 성경 읽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재현해보자는 거였어요. 유관순 열사보다 더 전이었죠. 이탈리아의 토리노 성당에 가면 성의가 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시체를 싼 세마포인데요. 거기 혈흔이 있는데 NASA에서 그걸 추적해서 신체적인 골격을 만들어낸 데이터가 있었어요. 키 181cm 체중 80kg 혈액형 AB형. 이걸 근거로 얼마든지 우리가 재현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한창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기존의 소리 학설을 뒤집었던 경우도 있나요?

음. 30년 동안 보안이 유지되던 육영수 여사 피격 현장 자료가 공개되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과 함께 분석을 했어요. 결론은 육영수 여사는 절대 문세광의 총격에 의해서만 서거하지 않았다는 거였죠. 문세광의 총격 소음 사이에 아주 멀리서 두 방의 총소리가 들렸는데 한발은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의 것이었고 한발은 경호원이었을 것으로 추정해요. 지금은 이렇게 말씀드리지만 당시에는 정치교수냐는 비난이 엄청났습니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연구였네요.

그렇죠. 한 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한 직후에 국무회의를 주관하는데 장관들에게 얘기하는 톤이 전과 달라서 분석한 적이 있어요. 탄핵 전과 비교해보니 스트레스가 53%가 증가하고 여러 가지 강한 액센트라든지 화났을 때의 목소리 성분이 나와요. 나중에는 다시 안정되고 부드러운 톤으로 돌아갔어요. 노 전 대통령이 입이 크고 코가 크기 때문에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거든요. 그 목소리를 다시 찾은 거죠. 여하튼 그때는 또 다른 측에서 엄청나게 항의를 받았었죠. 하하. 저는 하다못해 학교에서 보직을 맡으라고 해도 사양합니다. 그런 걸 맡으면 연구를 못하잖아요. 원래 에디슨처럼 하루 종일 틀어박혀 연구하는 실험실 조수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박사도 아니고 조수요?

아버지가 한국전쟁 당시 폭격 맞아서 불에 탄 재봉틀과 축음기 같은 것들을 가져와 고치는 모습을 아주 어렸을 때 봤어요. 기름 냄새 흥건한 목장갑을 끼고 뚝딱뚝딱 작업을 하시는데 ‘아 나도 저거 한번 해봤으면’하는 생각을 했죠. 내가 여기서(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더라도 끝까지 연구실에서 생을 다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의 연구가 꽃을 피웠던 것은 지난해 발생한 70대 어부 살인사건이다.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용의자를 풀어줘야 하는 구속수사 3주째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그때까지의 수사로는 용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결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용의자는 처음과 달리 말을 바꿔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다. 유일한 증거는 배에 타고 있던 피해여성의 119 통화기록. 피해여성은 당시 네 번의 통화를 시도했는데 세 번째 통화까지는 장난전화로 오인되어 그냥 끊겼다가 마지막 네 번째 통화 기록이 다소 길게 남아있었다. 배명진 교수팀은 심한 잡음 속에 미세하게 섞인 “어디서 무전이니”라는 용의자 목소리를 포착해냈다.





가장 뿌듯했던 연구랄까요.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무엇입니까.

10년 전 이 무렵, 아내와 호주에 있는 킹스캐니언이란 곳에 갔었는데 산을 넘어 끝자락에 다다르니 서너 평 남짓한 곳에서 관광 상품을 팔고 있는 겁니다. 병뚜껑처럼 생긴 기념품에 동물의 소리를 담아놓은 걸 보고 ‘여행에서 남는 건 소리와 영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리 관광 상품은 없을까’하고 생각했죠. 딱 성덕대왕신종이 떠오르는 거예요. 이전에 여기저기서 팔던 조그만 에밀레종 상품은 단지 ‘땡땡’소리만 났잖아요. 아득하게 ‘에밀레~’하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거죠. 해서 분석을 했더니 중년남성의 목소리 톤이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경주라는 곳, 불국사는 석가가 사는 곳, 석굴암은 석가의 얼굴, 그리고 바로 이 성덕대왕신종이 석가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래서 이 종소리를 들으면 오금이 저릴 정도의 가슴 중앙에 떨어지는 감동을 받는 게 아닐까. 원래 종이 이렇게 크면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중국에 가면 비슷한 규모의 영락대종이라고 있는데 거기는 찢어지는 저음이 나와요. 근데 성덕대왕신종은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잖아요. 34년의 장인 정신이 발휘된 것이죠.


일종의 신화처럼 여겨지던 부분이 과학으로 풀린 셈이네요.

종 명문에 양각으로 ‘이 종소리는 둥근 소리(圓音)를 들려준다’고 써놓았어요. 불교의 원, 윤회사상을 뜻하는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승의 원음’은 승하차 할 때의 승, 즉 한 번 태워주는 거예요. 종을 치면 소리가 아래쪽으로 몰려서 빙빙 도는 소리가 바로 원음의 소리인 것이죠. 일승의 원음이라는 게 둥글게 돌아다니는 과학적인 의미를 뜻하는데 우리는 그걸 불교용어로 받아들이고 선조들의 과학적인 기술을 간과했다는 거죠.


이공계 기피현상이라고 하는 이때에 소리공학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킨다는 측면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계십니다. 특히 아이들과 학생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공학이라는 게 이렇게 재밌게 활용될 수 있다’하는 걸 몸소 보여주고 계신데요.

얼마 전 초등학교 캠프를 열어 소리체험을 했는데요. 아이들이 소리를 듣고 해맑게 웃던 표정이 연구실에 와서도 자주 떠오릅니다. 캠프를 마친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자기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학부형들이 전해오죠.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기술이 없으면 밥을 못 먹게 되어 있어요.


‘소리란 무엇이다’ 정의하신다면?

소리는 산소입니다. 갇힌 방에서 조용한 상태에 있으면 적막과 싸워야 합니다. 소리를 들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우주의 한 부분임을 느낍니다. 절에 가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오히려 공부가 안 됩니다. 공부 이전에 적막과 싸워야 하는 것이죠. 막상 소리가 없어지면 중요함을 알게 되겠죠.




1998년 6월, 배명진 교수는 일간지에 칼럼 하나를 기고한다. 첨단적이고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려면 기저기술력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응용기술 개발이 함께 장려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용을 강조하던 그의 생각은 10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상식적으로 풀 수 없는 과거의 역사적 소리는 물론 현대의 미스터리에 묻힌 소리까지 과학의 힘으로 분석해 내는 그의 소리연구는 앞으로 끊임없이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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