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태릉선수촌장 이에리사 독신으로 사는 이유
[그때 그 인터뷰] 태릉선수촌장 이에리사 독신으로 사는 이유
  • 김두호
  • 승인 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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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는 내 운명, 탁구 못할까봐 이성교제도 안해 / 김두호



‘그때 그 인터뷰’는 1980년 26살 탁구여왕 이에리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명문 스포츠클럽인 ‘FTG 1847 클럽’에 스카우트되어 독일로 떠나기 전 필자와 단독으로 한 것이다. 그는 1976년 서독 국제오픈 단복식에서 우승해 그곳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였다-편집자주



[인터뷰365 김두호] 북경 올림픽 출전을 앞 둔 대표선수들에게 혼신을 다해 마지막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태릉선수촌 이에리사 촌장.

선수들에게 그는 엄격하면서도 한편은 부드럽고 자상한 어머니로 쉴 틈 없이 분주하게 살고 있다. 지금은 눈길이 모두 선수들에게 쏠려 있고 그들의 씩씩한 훈련 모습들이 화제의 중심에 있지만 인터뷰365는 잠시 대표선수들의 뒷전에서 소리없이 땀흘리는 이에리사 촌장이 세계 제일의 탁구 대표선수로 태극기를 휘날리던 시절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온 국민에게 희망과 기쁨을 채워주며 환상의 스타 플레이어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이 촌장을 떠올리면 선수들의 통쾌한 승전보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1973년 4월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강적 일본과 중국을 차례로 격파하고 우승했을 때 나라 안이 흥분에 휩싸였다. ‘구기사상 최초의 세계제패’ ‘단체전 19전 전승기록’ 등 화려한 기록들이 신화로 피어올랐다. 선배 정현숙이 수비를 맡고 19살 고3인 이에리사는 공격수였다. 서울 문영여중 3학년 때인 1969년에 국가 대표선수로 태릉선수촌에 처음 입촌했고 그로부터 수없이 많은 국제대회 우승기록을 세우며 선수촌을 드나들었던 이 촌장에게 선수촌은 그의 땀과 영광과 삶의 추억들이 구석구석 쌓여 있는 고향집 같은 곳이다.


3년째 태릉선수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금 54살이지만 아직도 미혼이다. 왜 그가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지 그때의 인터뷰를 통해 이유를 알 수 있어서 이 촌장의 ‘그때 그 인터뷰’는 매우 의미가 깊다.



26살이면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됐다. 언제쯤 생각하고 있나?

지금 생각할 틈이 없다. 언니들도 모두 늦게 결혼했고 나도 일찍 갈 생각이 없다.


교제중인 남자는?

없다. 기대에 어긋나서 미안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라켓을 잡아 쉬는 시간이 운동하는 시간으로 알고 자랐다. 어쩌다 프러포즈를 받으면 겁이 났다.


왜?

연애를 하다가 운동 못하면 어쩌나 하고 아찔한 생각이 들어, 사귀다가도 나를 이성으로 대하면 절교를 했다.


독일에서 멋진 남자를 만난다면?

부러지게 단언은 못하겠다. 지금 생각은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역시 바지차림이다. 외출 복장에 치마 입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소문도 따른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다리가 못나서 그렇다.


얼마나 못났기에?

서운하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것 같다. 사실은 습관이다. 공식적으로 입어야 할 때가 아니면 치마는 행동하기가 불편해서 안 입는다. 신경이 쓰인다.


화장도 안한다고들 한다. 정말인가?

얼굴이 건조할 때 로션 정도 바를 뿐 안한다. 있는 그대로 편하게 살고 싶다.


혹시 샤워도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기분 나쁘다. 화장 안한다고 신체관리까지 엉망으로 생각한다면.


오른쪽 입술 위에 점 하나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또 어디에 점이 있는가?

또 있다. 밝히고 싶지 않다. 좀 신나는 질문은 없나?



이에리사라면 알 만한 것은 모두 알려져 있다. 운동이야기는 더욱 궁금해 하는 것이 없다. 사생활 이야기도 너무 단순하고 그럼 뭐 정말 신나는 고백거리는 없는가?

하하하. 적반하장이다. 내가 뭐 탁구밖에 모르는 여자로만 아는가?


그럼 다른 장기라도?

연애도 잘 건다고 했으면 이야기가 푸짐할 텐데 그건 거짓말이고 탁구 말고 수영과 장기 두는 것도 좋아한다. 운동은 전부 좋아하고. 기분나면 음악을 잘 듣는다. 유쾌하면 팝송을 틀고 조용한 시간에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라켓을 잡으면 펄펄 나는 스태미너는 어디서 어떻게 샘솟는 건가?

선천적인 것 같다. 162cm 54kg의 체격도 탁구선수로 적합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탁구선수는 내 팔자에 쓰여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식성은?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한다. 그러나 갈비는 한자리에서 혼자 한 근쯤 먹는다.


에리사라는 이름이 세례명 같기도 하다. 누가 지은 것인가?

내가 태어날 무렵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해 한창 인기가 높을 때였다. 가족들이 그 이름에서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탁구로 여왕자리에 올랐으니 제대로 지은 이름 같다. 탁구를 시작한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버지(대전부시장을 역임한 이승규 씨로 당시 62세)가 대덕군수로 계실 때 집안에 탁구대 한 세트를 장만해 주셨다. 내가 3남 5녀 8남매 중 일곱째인데 가족들이 심심하면 게임을 즐겼고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 전국 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내 운명이 탁구와 함께 했다.


선수생활 중 감명 깊은 일화가 있다면?

난 원래 승부욕이 강하다. 그러면서 경솔하지 않고 신중한 편이다. 그동안 해외 원정 16차례, 국내외에서 받은 우승컵이 50여 개 된다. 그 경기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고 매번 이긴 뒤보다 이기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선수들은 저마다 터부 같은 게 있다고 한다. 별난 습관 같은 게 있는가?

시합 때 입는 유니폼이 따로 있다. 아주 낡은 것인데 그걸 입으면 느낌이 좋고 자신감도 생긴다. 또 경기를 앞두고 손톱 안 깎고 머리도 안 감는다.


일종의 미신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런 것이 습관처럼 된 것같다.


아끼는 물건이나 좋아하는 인물이 있다면?

5년째 사용하는 라켓이 있고 동전과 미니카도 수집한다. 좋아하는 인물은 농구선수였던 박신자 언니다. 재능과 인간미 모두가 마음에 들어 그 언니를 닮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정말 운동하고 결혼할 작정인가?

나도 여자인데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이성교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사춘기도 넘겼다. 마음 편하게 해주는 성격 좋은 남자를 만나면 결혼하겠다. 가정적인 남자가 좋다.


꿈은?

후회없이 탁구선수 생활을 해온 것 같다.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해도 같은 길을 가겠다. 결혼을 하게 되면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좋은 후배를 찾아서 밀어주고 키워주고 싶다.




필자가 단독으로 만났던 그 때 그 인터뷰에서 이에리사 촌장은 결혼보다 후진 양성에 더 꿈의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는 뜻한 대로 명지대에서 체육학 박사를 받고 용인대 교수로 활동하고 이제는 태릉선수촌 촌장으로 후배들에게 마지막 봉사의 열정을 바치고 있다. 결혼을 애써 포기하거나 피한 것은 아니지만 운동에 빠지고 후배와 제자들에게 빠져 살다보니 쉰 줄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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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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