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도 모르는 천도교의 성지 ‘수산리’
주민들도 모르는 천도교의 성지 ‘수산리’
  • 김철
  • 승인 200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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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교주 최시형이 숨어 살던 경주최씨 집성촌 / 김철



[인터뷰365 김철] 저수지를 앞에 두고 마을 뒤로 우뚝 솟은 삼각형 산이 이채롭다. 산 아래 마을이 ‘수산리(水山里)’이다. 행정구역상 예천군 풍양면 고산 1리에 속한다. 마을 앞 들판에서 땅을 파면 어디서든 물이 솟는다고 해 마을 이름을 수산리라고 부르게 됐다는 두메산골이다. 30여 가구에 주민 6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작은 산마을이 한때 동학교주 해월 최시형이 관의 탄압을 피해 은신한 곳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이다.

해월은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이름났다. 그는 오늘날의 천도교인 동학교의 2대 교주다. 동학교가 천도교로 명칭이 바뀐 것은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했던 의암 손병희 3대 교주 때부터다. 의암은 해월의 수제자다. 해월이 어떤 이유에서 수산리로 숨어들어 은신하게 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발자취를 잠시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해월이 동학교 창시자인 초대 교주 수운 최제우에 이어 교주가 된 것은 철종이 돌아가던 해인 1863년의 일이다. 그의 나이 36세 때다. 수운과 해월은 같은 경주 출신으로 본관도 같은 경주최씨다. 해월의 본관이 경주라는 점은 해월이 수산리로 은신하게 되는 중요한 단초가 되고 있다.

교주가 된 해월은 고종1년인 이듬해 동학운동의 탄압으로 수운이 체포되어 처형되자 관헌의 감시를 피해 태백산과 안동 울진 등지로 전전하며 지내게 된다. 지하포교를 겸한 피신이었다. 천도교사에 따르면 울진 죽변리에 있던 해월이 예천 수산리로 거처를 옮긴 것은 1867년 2월이다. 어떤 계기로 동해안의 작은 어촌 죽변을 벗어나 수산리로 가게 됐는지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다만 수산리가 경주최씨 집성촌이라는 점에서 혈연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를 따르는 주변 사람 중에서 수산리와 연고가 있는 교도가 은신장소로 추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산리는 전체 가구 중에서 경주최씨를 제외한 타성은 세 가구뿐이다. 대대로 경주최씨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전통적으로 가문과 혈연을 중시하는 풍토를 감안할 때 같은 종친인 주민들이 그를 보호했을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가 은신하기에는 적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수산리 주민들은 최시형의 이름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수산리 마을이장 최광락(60) 씨는 “5대 조부 때부터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분이 우리 마을에 은신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70대 후반의 마을 어른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후에 해월을 은닉했던 사실이 탄로 나면 관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해월의 신분을 감추고 보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해월의 은신 사실은 당시 극비에 붙여지고 구전으로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해월이 1년 정도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진 수산리는 마을 앞으로 도로가 뚫리기 전인 70년대까지만 해도 외부와 접촉이 없던 외진 산간마을이었다. 지금도 여느 산골의 농촌마을과 다를 게 없다. 주민들은 모두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 중에는 담배농사를 짓는 가구도 있다. 마을 한가운데는 세월의 무게를 힘겹게 견디는 재래식 낡은 엽연초 건조장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마을 앞에는 1917년에 만들었다는 꽤 큰 저수지도 있다. 이름이 풍천지다. 이따금 저수지에서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우는 것을 제외하면 마을을 찾는 사람이 없는 전형적인 고요한 농촌이다. 저수지 너머 고산2리의 고천리도 한적한 산간마을이기는 같다. 고산이라는 지명은 고천리와 수산리를 합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140년 전 해월이 수산리의 어느 집에서 머물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마을에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흙벽돌로 지은 전통가옥이 아직 10여 채 남아 있어 수산리가 오래된 두메산골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동학이라는 민중운동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려 했던 선각자 해월의 흔적은 비록 찾을 수 없다고 하나 수산리는 동학이라는 명성과 함께 천도교의 성지이자 역사의 현장으로서 그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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