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만든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만든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
  • 김두호
  • 승인 200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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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음악도 로맨스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 사진 유성희] 아내가 노랫말을 창작하면 남편은 운율을 살려 노래로 만드는 양인자 김희갑 부부. 일과 사랑에서 하모니를 이루며 그토록 이상적인 커플로 한 분야의 정상을 오래도록 지켜온 부부가 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될까? 얼마 전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을 가진 슈퍼스타 조용필의 탄탄한 노래의 저력도 천부적인 가창력과 함께 언제 들어도 느낌이 좋은 가락과 노랫말에 있다. 조용필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등이 김희갑 양인자 부부의 작품이다.


작곡 편수 3천여 곡을 헤아리는 김희갑 작곡가와 3백여 편의 노랫말을 지은 부인 양인자 작사가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최근 시문학과 대중음악을 결합한 신곡 창작과 공연활동에 깊이 빠져 산다.



두 분이 요즘 관심을 쏟는 가수나 작품 활동이 궁금하다.

김희갑 선생) 3년 전부터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만년에 남긴 시를 작곡하고 기념 공연도 해 왔다. 3년 전 처음으로 동리선생의 고향인 경주에서 기념공연을 요청해 해마다 한차례씩 공연을 했다. 그동안 <패랭이꽃> 등 7편의 시를 작곡해 이동원과 코리아나 리드싱어 출신 이애숙 등에게 부르게 하고 앨범도 냈다.

양인자 선생) 동리 선생은 대학시절(현 중앙대인 서라벌예대 문창과) 나의 은사 분이다. 문학적 업적이 큰 분인데 기념될 만한 그 분 이름의 상(賞) 같은 것도 없어서 기념 공연은 의미가 있었다. 이동원은 김 선생(부군)이 작곡한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불렀고 김 선생이 각별히 인정하는 가수다.

김) 시를 노랫말로 해 양 선생(부인)의 일거리가 바뀌었다. 그러나 공연에서 사회를 보고 앨범에서도 시낭송을 했다. 2010년 15주년 때는 경주가 아니라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제대로 된 시 음악 공연을 할 생각이다. 시를 음악으로 바꾸는 작업은 지금 우리들의 후반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과제로 삼고 있다.

양) 시는 2절이 없고 대부분 반복되는 언어도 없다. 또 시인의 글을 글자 한자도 수정할 수 없어서 음악화 작업이 까다롭다. 녹음과정에서 완성된 노랫말에 한 글자가 틀려 4차례나 수정해서 불러야 했다.



두 분이 집에서도 서로 ‘선생’으로 호칭하는가?

양) 하하하. 아니다. ‘자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관을 나서면 김 선생께서 직업인으로서의 인격을 존중해 주신다.


김 선생은 가수 이동원을 특별히 인정한다고 하셨다. 수많은 가수들이 두 분의 노래를 히트시켜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사랑의 미로>를 부른 최진희를 비롯해 이선희 양희은 혜은이 김국환 임주리 이승재 박건 유열 등등.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에 노래를 준 것이 아닌가?

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신곡이나 새로운 패턴의 노래에 대한 확신을 못 가진 가수도 많다. 가수도 창의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개가 신곡을 요청해올 때 이미 히트한 누구누구 노래와 비슷한 것을 부르게 해달라는 식의 주문을 한다.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개성을 모르고 또 음악에 대한 안목이나 자신감이 없어서다. 이동원은 자신이 선택한 노래의 정서를 자신의 개성과 목청 속에 용해시켜 부를 줄 아는 몇 안 되는 재능의 가수다. 노래에만 애정이 있고 다른 욕심이 없어서 안정된 생활기반을 갖지 못한 것이 활동에도 흠이 되긴 한다. 서울 올림픽 주제곡을 불러 한때 가요무대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이애숙도 여전히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

양) 조용필의 뛰어난 점은 가사와 곡에 대한 선택이 대담하고 스테디셀러가 될 만한 노래 선별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노래는 가사가 길어 방송에 걸림돌이 되므로 용기가 필요했다. 대중가요를 3분 예술이라고 하는 데, 길게 부를 수 없는 한계가 따른다. 우선 노래의 주요 대중 보급 창구인 방송국 등 전파매체에서 곡이 길면 제약을 받게 된다.

김) 조용필이 가져간 우리 노래 중에는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라는 19분짜리도 있다.


두 분이 바쁘게 활동하던 시기에는 신곡을 받기 위해 유 무명을 망라한 많은 가수들이 줄을 섰다.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양) 신경 쓰이는 질문이다. 일일이 누굴 거명할 수도 없고 또 기억나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도 떠오르지 않는다. 필요할 때 열심히 찾다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면 아쉬웠을 때의 일을 잊고 사는 것이 가요계만이 아닐 것이다.

김)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일단 어렵게 곡을 발표하면 그때부터 가수는 한눈을 팔지 않고 사방으로 뛰어야 산다. 히트하고 성공을 하면 더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래서 인기인은 뒤를 돌아보며 살 수가 없는 것인데 그러다가 또 필요한 일이 생기면 다시 찾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잘 되면 바빠서 잊어버리고 안 되면 미안해서 연락을 못하게 된다.

양) 맞는 말씀이다. 아사다 지로의 <천국의 계단>에 나오는 엄마 얘기가 생각난다. 늘그막에 못사는 아들과 살고 있는 엄마가 잘 살면서 찾아오지 않는 아들을 두고 한 말 중에 “못살면서 함께 있는 아들보다 잘 살고 바빠서 안 찾아오는 아들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하는 곳이 다른 분야와 좀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솔직히 있다. 스승인 동리 선생의 생전에 명절 인사를 가면 일주일쯤 술상이 벌어진다. 그냥 인간적인 관계로 알고 있는 친구 후배 제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 것을 부럽다고 생각하는 시대도 지났지만 간혹 여자의 마음으로는 서운한 사람이 있다. 가수 중에는 무명 때와 유명해진 후의 이중적인 태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 한두 곡으로 성공을 해서 술 마시고 골프 치며 오만에 빠져 노력을 하지 않다가 다시 인기가 시들해지면 찾아와 곡을 달라는 친구도 있었지만 더 이상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선생에게는 공부 잘하고 노력하는 학생이 제일이듯이 가수도 노력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예쁘게 보인다. 어쩌다 성공해도 노력이 없으면 무너진다.



김희갑 양인자 선생 부부는 나이 차이도 있지만 서로 주고받는 눈빛이나 배려하고 포용하는 모습이 아주 정다운 오누이처럼 보인다. 서로 의견이 달라질 것 같다가도 절대로 부딪히지 않고 융합이 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을 부부의 예의인 듯이 서로의 생각을 어느 순간 아주 편안하게 융화시켜 간다. 두 사람의 음악 작업도 쌍방이 서로 전문성을 존중하는 데서 명품 명곡들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김희갑 작곡가는 2006년 4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50여년 음악인생을 정리하는 <그대 커다란 나무>라는 주제의 ‘작곡가 김희갑 헌정 음악회’를 화려하게 가졌다. 고희로 접어든 가요계의 거목과 작사가 양인자의 만남은 운명적인 데가 있었다.

두 분이 부부로 만나기 전 필자는 신문기자 시절 간혹 양인자 선생을 만났다. 양 선생은 미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필자 누님과 대학 동기 관계였기도 했지만 인기 있는 방송작가로 취재 대상이기도 했다. 당시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던 양 선생이 작가 생활을 접고 작사가로 활동을 바꾼 것부터 예기치 않은 엉뚱한 변화였고 그것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진행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가요계는 일과 사랑을 함께한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의 노래만 부르면 히트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1961년 부산여고 시절 <돌아온 미소>라는 소설을 발표해 천재 문학소녀로 주목을 받았던 양 선생은 그 후 소설을 쓰다가 친분이 있는 김수현 작가의 권유로 1974년부터 TV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부부만세> <제3교실> <혼자 사는 여자> 등의 드라마로 인기를 누렸지만 작곡가 김희갑 선생과 만나 1985년께부터 ‘작사가 양인자 시대‘를 꽃피워왔다.



두 분이 그 동안 작사 작곡한 노래는 몇 편인가?

김) 나는 약 3천여 곡으로 추산하고 있다.

양) 3백여 편 된다. 제대로 목록을 만들어 두지 않아 결국 추산 편수는 몇 년 전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방송 드라마를 쓰면서 언젠가는 소설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그 길을 가다가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다. 길을 못찾겠더라. 돌이켜 보면 방송 드라마는 소모성 노동이지 문학도 예술도 아니었다. 지금은 해외도 나가고 재방도 하지만 과거에는 한번 지나가면 모두 사라졌다. 그러다가 노랫말에 매달려 23년째를 맞았다.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쓴 두 분의 작사 작곡만 100여 편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 아무리 많아도 그건 하나의 드라마이므로 한 곡으로 봐야 한다.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양) 역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언제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김) 크게 히트한 곡들이라면 저절로 애정이 간다.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분의 가정생활이 궁금하다. 워낙 바쁘게 사시는 분들이라 식탁은 매일 어떻게 준비하는가?

양) 김 선생은 양식을 좋아 하시고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하지만 서로 가리지 않고 적절하게 조화 시켜 해결한다. 나는 일찍 일어난 김 선생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아침 9시쯤 천천히 그리고 로맨틱하게 잠에서 깨어난다. 깨어나면 음악이 귓전에 흐른다. 최근에는 재즈 연주를 시작해 좀 귀에 설지만 아침에 듣는 음악은 하루의 시작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함께 커피를 마시며 바나나와 고구마, 과일로 간단하게 식사를 대신하고 아침밥을 겸해 점심을 준비하는 것이 요즘 일상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탁을 마련한다. 스테이크 외식을 하거나 가락시장에서 준비해온 해산물로 파티를 연다. 그 시간이 해피하다.


자녀분들은?

양) 딸(김수나/ 37세)은 노랫말도 짓고 드라마도 쓰며 엄마를 따라 나섰고, 아들 (김성헌/ 34세)은 프로 골퍼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김) 시와 음악을 접목해 대중가요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공연과 가수 발굴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고 싶다. 그 꿈을 이루려면 우리 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랫말이 될 수 있는 주옥같은 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시 노랫말의 좋은 점은 내용과 형식이 다양하고 음악적 표현도 그만큼 변화의 폭이 광활하다는 데 있다.

양) 최근 신문에서 연재된 현대시 100선을 보면서 정지용의 <향수> 못지않은 좋은 노랫말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대중음악이 다양한 변화의 시대를 가고 있지만 좋은 노래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일종의 시음악은 현대 대중음악의 재발견과 함께 시 문화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올 것으로 본다.




인문과학 분야의 학술 자료집에는 <작가 양인자론> 논문도 있고 ‘사랑과 인생에 대한 달관의 시선’이란 목차도 들어 있다. 거기에 쓰인 ‘달관의 시선’은 아마도 노랫말에 나타난 지은이의 다양하고 아름답고 깊이 있는 언어를 함축해서 표현한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노랫말이더라도 문학적 운율을 음악적 리듬으로 살려내지 못하면 좋은 노래가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양인자 작사가와 김희갑 작곡가 부부는 환상적인 커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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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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