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 매닉스 밴드의 리치 제임스①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 매닉스 밴드의 리치 제임스①
  • 이근형
  • 승인 2008.07.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문대 출신 밴드의 브레인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1967년 12월 22일 영국 웨일즈의 블랙우드에서 태어난 리처드 제임스 에드워즈 (Richard James Edwards, 이하 리치 제임스) 는 1986년 웨일즈의 명문 대학교인 스완지 웨일즈 대학교에 입학, 정치학과 사학을 전공했다. 리치 제임스는 명문대 출신답게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했고, 자신이 존경하면서도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는 사람으로 알베르 카뮈,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았다. 음악적으로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나 섹스 피스톨즈, 건즈 엔 로제스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만큼 리치 제임스는 자신이 전공하는 학문에서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음악에서 뚜렷한 자신만의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매력적인 외모와 특출한 패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리치 제임스는 1986년 결성된 웨일즈의 록그룹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멤버들과 알음알음 알게 되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리드 기타이자 보컬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 또한 시사에 관심이 많고, 좌파적 정치 성향을 띤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리치 제임스와의 연결이 비교적 수월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리치 제임스는 악기를 다루는데 서툴렀으므로, 시작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이동 차량을 운전해주고 스케줄 및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로드매니저에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멤버들은 리치 제임스가 음악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작사 실력을 갖춘 것을 알고 얼마 안있어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정식 멤버로 올려줬다. 이렇게 해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 (보컬, 기타), 리치 제임스 (리듬 기타), 니키 와이어 (베이스), 션 무어 (드럼) 이렇게 4명으로 최종 결성되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에서 작곡이나 작사는 팀의 리더이자 보컬, 기타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가 주도하고 있었다. 그에 못잖은 지식을 지닌 리치 제임스의 등장으로 인해,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리치 제임스는 서로 힘을 합쳐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두 사람 모두 유명한 책벌레였고, 혁명적인 사상을 지닌 진보주의자였다. 이들은 혁명, 개혁, 사상 전파, 자유를 노래하는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1992년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1집 Generation Terrorists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7~80년대 강성했던 펑크 록의 부활이라는 말과 함께 평단에서 ‘충격적이다’라는 찬사를 받았고, 또한 진보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 사상가들의 메시지를 투입시켜 내실이 아주 탄탄한 앨범으로 각광받았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각종 음악 전문 방송과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1집의 히트곡인 Motorcycle Emptiness를 연주하며 팬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쉴새없이 가사를 내뿜었고, 장신의 베이시스트 니키 와이어는 괴기한 복장으로 나와 열심히 베이스 기타로 뒤를 받쳐줬다. 그리고 드러머 션 무어는 힘차게 퍼커션을 두들겼다. 그런데 리치 제임스의 역할은 미미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공연할 때, 리치 제임스도 리듬 기타를 들고 가세하긴 하지만, 그가 밴하는 일은 기타 연주의 빈 틈을 메워주고 기본 멜로디를 첨가시키는 일뿐이다. 주지하다시피 리치 제임스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작사나 앨범 재킷 디자인을 맡았지만, 록 아티스트로서 악기를 다루는 데는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리치 제임스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무대 밖’ 이었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멤버들은 초창기 시절 일본과의 교류가 잦았을 때, 한창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유행했던 비주얼 록 (화려한 치장을 하고 나와 팝 록, 메탈을 하는 장르) 스타일로 옷을 갖춰 입었다. 이때 리치 제임스는 타 멤버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이 섀도우, 찢어진 상의, 창백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메이크업, 그리고 초췌한 느낌이 나는 웨이브 머리로 비주얼 록의 모습을 제대로 구현했다.


이 때문에 영국의 평단에서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철지난 비주얼 록을 하려 한다며 타박했고, 어떤 기자는 화려하게 치장한 리치 제임스에게 대뜸 다가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추구하려는 음악이 도대체 무엇이냐?” 며 물었다. 이때 리치 제임스는 주저없이 왼팔을 걷어올리더니 칼로 ‘4 REAL (For Real)' 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 기자는 기겁했고, 리치 제임스의 이 자해 사건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단호한 가치관과 음악성을 증명하는 에피소드가 됐다.


마침내 리치 제임스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최고 명반이라 불리는 1994년 3집 The Holy Bible에 수록된 가사의 70퍼센트를 작사하는 공을 세웠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이 The Holy Bible이라는 앨범으로 인해 영국의 모던 록, 브릿팝의 최정상에 올라섰다. 비록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최종 6위를 기록했지만, 이 앨범이 지니고 있는 음악성이나 밴드의 가치관, 그리고 정치적 색깔은 여느 영국 록그룹의 일반적 앨범보다 더 가치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앨범에는 급진 좌파의 목소리를 실감나게 담았으며,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내용들로 가득찼다. 게다가 섬뜩하게 밀어붙이는 기타 리프, 거기에 숨겨져있는 감수성 풍부한 멜로디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가 표현하려는 모던 록의 정신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리치 제임스는 밴드의 무대 공연에서는 리듬 기타로서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박식한 지식과 혁명적 마인드, 그리고 뛰어난 작사 실력으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소프트웨어 강화에 앞장섰다. 그의 박식한 정치 지식과 역사 지식, 그리고 급진적인 좌파의 두뇌에서 튀어나오는 혁명적인 마인드는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뛰어난 가창력과 헤비한 일렉트릭 기타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하나의 노래로 재탄생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노래를 최종 작업하여 앨범에 수록하고, 그 앨범의 재킷을 디자인할 때도 리치 제임스가 주도했다. 리치 제임스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에서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함께 팀의 브레인이었다. (계속)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관심가는 이야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