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영화’로 쓰러진 배우 김승호①
‘빨치산 영화’로 쓰러진 배우 김승호①
  • 김갑의
  • 승인 200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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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영화 이끈 불세출의 스타 / 김갑의



[인터뷰365 김갑의] 김승호는 1960년대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톱스타였다. 당시 한국영화는 세계적 수준에는 미흡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선두를 지켰고 그 선두를 이끌어나가는 배우가 김승호였다.

김승호의 마지막 작품 <사화산>은 빨치산을 소재로 한 반공영화였다. 중앙정보부에서 제작지원을 해주었으나 김승호의 당시 경제적 사정은 연이은 제작실패로 엉망이었다.

소재가 ‘빨치산’이었기 때문에 출연배우도 보통영화의 몇 배가 넘었고 한 번 촬영을 하려면 스탭들까지 70~1백여 명의 인원이 움직여야만 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여건의 김승호에게 결정타를 안겨준 것은 설악산 촬영의 완전 펑크였다.

고영남 감독을 비롯하여 박노식 등 스탭 캐스트 80여명이 촬영차 설악산에 도착했다. 여관에 짐을 풀고 촬영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설악산의 기후는 변덕이 심했다. 비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닌 안개비, 시골에서는 흔히 여우비라고 하는 날씨가 계속됐다. 그런 날씨가 계속해서 일주일간을 잡아먹었다. 이제나 저제나 해 뜰 날만 기다리다보니 한 컷도 촬영을 하지 못한 채 준비해온 경비는 바닥이 났다.

박노식 최창호 지용남 등 출연자들은 하루 종일 술 마시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었고 스탭들도 여관방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작이나 화투밖에는 할 일이 달리 없었다. 여우비는 일주일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고 원망과 한숨으로 여우비를 지켜보던 김승호 입에서는 마침내 “하늘이 김승호를 버리는구나”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결국 여관비와 식대를 다 갚지 못해 김진 제작부장을 볼모(?)로 잡혀두고 촬영팀들은 서울로 돌아왔다. 김진 부장이 여관에서 풀려난 것은 그로부터 15일 뒤였다.

얼마 안 되는 여관비 잔금이었지만, 그 돈을 만들기에도 15일씩이나 걸릴 만큼 김승호의 경제적 사정은 악화된 상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김승호는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불세출의 명우 김승호가 남긴 생애 마지막 대사는 그의 굵직하고도 화려한 인생의 라스트 신의 대사에 걸맞은 ‘하늘이 김승호를 버리는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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