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철중경구, 받아라 원술재영”
“떴다 철중경구, 받아라 원술재영”
  • 김다인
  • 승인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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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의 워너비와 장진의 페르소나 <강철중>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지난 19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영화 <강철중>에는 현재 한국 영화계의 기둥과 소금이 만난 효과가 역력하다.

그 시너지 효과는 지난 주말 관객 140만명 동원이라는 일차 결과를 낳았다. 이번 주말이면 관객 3백만을 돌파할 것같다니 1편의 3백만, 2편의 4백만 기록은 무난히 넘지 않을까 싶다. 영화계는 오랜만에 한국영화가 정상을 탈환했다며 좋은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영화계로서는 처음 있는, 1-1이라는 꼬리를 달고 나타난 이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2002년 흥행작 <공공의적>과 2008년작 <공공의적 2> 사이에 위치한다.

강우석 감독이 <공공의적 3> 대신 강철중을 앞세워 번외편 영화를 만들었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시리즈물의 연속성이 주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는 한편 공공의적 시리즈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 강철중을 더 클로즈업시켜 <공공의적> 시리즈에 핵융합을 일으킬 시도로 보인다.

강철중 이야기를 위해 강우석 감독이 파트너로 끌어들인 이는 장진 감독이다. 연극에서부터 출발해 이제는 한국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이 크게 박힌 영화로 시선을 모으는 감독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영화계 도제 시스템의 마지막 세대인 강우석 감독과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진 영화계에 뛰어들어 일가를 이룬 장진 감독의 만남은 고전적인 내러티브와 동시대적인 컨텐츠의 만남이라 볼 수 있다.



남자 영화에 강한 남자들


강우석 감독과 장진 감독의 영화적 공통점은 우선 남자 영화에 강하다는 점이다. 두 감독 모두 공교롭게도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거의 만들지 않았다.

왜 주로 남성 주인공 영화만 만드는가에 대해 오래 전 인터뷰에서 강우석 감독은 “여배우들과는 친해지기도 힘들고 말도 잘 못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계에 데뷔한 <겨울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이 ‘여배우들과는 거의 아줌마 수준으로 수다를 떤다’고 표현된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장진 감독도 <거룩한 계보>를 만든 후의 인터뷰에서 “여자를 잘 모르니까 남자를 다룬다”고 말했다.

여자는 잘 모르겠어서 남자를 다루는 두 감독이 만난 영화가 <강철중>이니 ‘남자 영화 ’따블‘’일 것이다.

거기다 두 감독의 또다른 공통점은 심각해지는 것에는 별 재주가 없다는 것, 그러니 두 사람이 만난 결과물로 내놓은 <강철중>은 ‘무척 재미있는 남자 영화’를 관객들에게 기대하게 만든다.





강우석의 워너비와 장진의 페르소나


강우석 감독의 남성성과 장진 감독의 남성성이 만난 영화 <강철중>에는 강우석 감독의 ‘워너비’와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가 만나고 있어 흥미롭다. 이들은 강철중 역의 설경구와 이원술 역의 정재영으로 강-장 감독의 ‘도원의 결의’를 영화 속에서 책임져야 할 막중한 사명을 띠고 한 프레임 안에서 만나게 됐다.

강철중을 강우석 감독의 ‘워너비’로 표현한 것은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감독이 여태까지 그려낸 그리고 앞으로 그려나갈 남성 캐릭터를 다중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강철중은 강우석 감독이 자신있어 하는 남자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다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강철중은 요즘말로 ‘똘끼’와 무대포 정신, 거기에 유치함과 이웃하는 천진함까지 갖추고 있다. 이 천진함은 여자가 드문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성’을 나타내는 장치다. 유약함과 통하기 때문이다.

강철중 캐릭터는 배우 설경구를 만나 비로소 ‘몸’을 갖게 되는데 이 둘이 천생연분이다. 설경구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 ‘작업복’을 갈아입듯이 강철중을 ‘입는다.’ 그리고는 그가 곧 강철중이 된다.

설경구는 얼굴 자체에 희노애락의 드라마가 있으며 곁들여 야비함, 천진함, 허무함 등이 곁들여진 보기드문 연기자다. 다른 영화에서도 그 많은 드라마 가운데 몇 개쯤은 늘 꺼내들지만 강철중은 그 모든 드라마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딱 좋은 역이다.





강우석 감독에게 설경구가 있다면 장진 감독에게는 정재영이 있다.

정재영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장진 감독 작품에 출연한 장 감독의 페르소나, 쉽게 풀자면 ‘분신’이다. 정재영은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영화 18편 중 8편에 출연했다. 그 중 <바르게 살자> <거룩한 계보> <아는 여자> <킬러들의 수다> 등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정재영이 영화에 출연한다면 감독은 장진 아닌가, 장진 감독 영화라면 정재영이 출연하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이들은 2인3각으로 활동해왔다.

장진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나 배우 정재영에 대한 ‘존경’을 거두지 않는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상의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는 그의 배우 역량에 마음을 굽힌다. 그런 정재영이 이 영화에서 악당 이원술 역을 맡았다.



철중경구와 원술재영의 맞장


영화는 어떤가.

감독 두 명의 연합전선 아래 철중경구와 원술재영이 판을 펼치는 이 영화는 기대만큼은 재미있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지는 않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은 것은, 단순애국심이 아니다. 재미있으리라 기대했던 한국영화가 그 기대감을 우선은 충족시킨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가 기대만큼 재미있다는 것은 ‘꼴통 형사’ 강철중이 기대한 바대로 꼴통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그 꼴통 노릇은 다양도 해서 고등학생 조폭 잡을 때는 양아치 같고 딸(매력적인 캐릭터다) 앞에서는 구겨진 휴지 같고 엄반장 앞에서는 징징대는 아이 같고 은행에서는 노숙자 같다. 그리고 이원술 앞에서는 형사 같다.

영화 속에 일관하는 강철중의 꼴통 노릇을 보는 것은 <공공의적 2>의 검사 강철중에 대한 실망을 딛고 <공공의적1>의 형사 강철중을 기대하던 관객들을 만족시킬 만하다. 거기에 1편의 노래방 사장이 된 산수(이문식)와 정육점 주인이 된 용만(유해진)의 출연은 진한 양념 역할을 한다. 또 있다. 태산 역으로 한 장면 등장하는 문성근(처음에는 누군가 했을 정도로 얼굴이 많이 부은 것같은)도 반갑다.

반면 정재영이 연기하는 원술은 요즘 새롭게 영화 속 트렌드로 떠오른 정상적인 가장 조폭 역을 성실하게 한다. 전라도 억양도 내가 전라도요 하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말투 속에 특유의 리듬이 배어있어 여유롭다. 양복을 빼입은 폼은 이성재나 정준호의 댄디함이 아니라 그의 전 출연작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신부 찾아 떠나는 노총각 만택 모습과 더 비슷하다.

만약, 아주 만약에 강우석 감독이 연출하고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이원술>을 만든다면 그가 조폭이 된 사연은 다른 조폭들과 달리 폼나지도 않고 어정쩡하기까지 할 것같은 모습이다.

영화 내내 ‘성질’을 발산하기보다는 죽이며 연기를 하던 원술은 주말농장에서 철중과 붙을 때, 태산 찾아가 담판 지을 때 등에서 근성을 드러낸다. 의도적으로 발산하지 않은 연기를 한 것같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 중 한번쯤은 내재돼있던 조폭의 근성이 시원하게 폭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는 1, 2편과 다르게 캠퍼스에 파고든 폭력을 다루고 있으며 초반에는 긴장감이 높다. 거성그룹에 들어간 고교 짱이 교실에서 살해되는데, 회상 장면에서 교실 안의 의자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범인을 단죄하기 위해 묶어놓았던 폐교 교실 안의 의자를 언뜻 연상시킬 정도로 긴장감을 더한다.

기대 같아서는 이같은 긴장이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졌으면 했으나 이들 학생 조폭들의 살인사건은 살아남은 세 명이 깡충깡충 웃으며 껴안는 것으로 끝난다.





마지막으로 강철중과 이원술의 인천 부둣가 결투는 영화 중간 교정에서 벌어졌던 고교 짱끼리 싸움의 성인판이다. 상처 부위까지 ‘맞춰’가며 도구 하나 없이 맞장을 뜬 결과 코피가 난 건 이원술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무리는 전세자금 빌려달라는 철중의 말에 도망가려는 산수의 몸짓에서 끝난다. 다시 강철중이 등장한다면 아마 전셋집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두 감독의 연합은 성공적이었으나 가끔 이건 강우석 감독, 저건 장진 감독 하는 식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은 아쉽다. 장진 감독 특유의 장면과 대사맛이 살아난 부분과 강우석 감독 특유의 코믹 코드가 강조된 부분이 제각각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우선 관객들의 욕구에 충실하려는 자세로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반응을 얻었다는 데서 상업영화의 목적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던 한국영화계가 다시 고개를 쳐들게 하는 데 힘이 됐다.

하지만 꼴통 형사 강철중에게 새 생명을 준 강우석 감독은 앞으로 이 꼴통을 어떻게 한국영화의 명물로 만들지 더욱 고민해야만 하게 됐다. 강철중은 우리 영화계에서 등장인물 캐릭터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관객들의 기대 이상을 충족시키며 나이가 들어가는 철중경구를 계속 봤으면 한다.



PS=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평소 느끼지 않던 이상한 현상을 느끼지 않았는지. 혹시 뒤통수가 얼얼하고 유난히 고기가 당기지 않았는가.

영화에는 유난히 뒤통수 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소리도 빡, 빡 세게 입혀져 있다. 그런 장면이 여러번 반복되다 보니 마치 내가 뒤통수를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때가 때여서 그런지 한우 고기를 여러번 굽는 강철중을 보고 하다못해 돼지갈비라도 구워 먹어야 되지 않을까, 영화 본 후의 메뉴가 저절로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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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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