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아현동 마님’
떠나가는 ‘아현동 마님’
  • 김우성
  • 승인 200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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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사라지는 아현동 60년의 낭만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지하철 애오개역이 위치한 서울 아현동 일대는 지금 막 재개발이 시작되려 한다.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곳이 재개발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살았다”는 한 주민의 표현에서처럼, 아현동의 재개발은 서울에서도 가장 늦은 편에 속한다.





위치는 서울 도심 한 가운데지만 동네 풍경은 아늑하고 정겹기 그지없다. 팔도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산지가 벌써 60여년. 6.25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하나둘 모여 언덕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아현동을 이룬 것이다.

아현동은 신촌의 대학가를 지척에 두어 수많은 하숙, 자취생들이 거쳐간 동네이기도 하다.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해 언덕을 오르내렸을 젊은이들에겐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또한 여의도와 광화문을 잇는 길목으로 예부터 ‘귀빈로’라 불렸다. 최근 이슈가 된 용산도 언덕 너머고 지하철 2, 5, 6호선이 인접해 있어 요지중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재개발의 기대감으로 한창 뜨거웠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최근 특정 재개발 구역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간다. 사연인 즉, 아파트가 새로 들어선다 해도 도저히 입주할 방도가 없어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양가가 문제였다. 원래 살던 주민들의 집에 대해 3.3m²당 9백만원의 평가(보상)를 받았는데 아파트 분양가는 3.3m²당 1천5백여만원에 책정된 것이다. 시공사 측은 다른 구역보다 세대수가 많은 탓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대부분 작은 집에서 살던 주민들로서는 보상을 받는다 해도 가장 소규모인 82.5m²에 입주하려면 그 엄청난 차액을 감당해내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70년대 초반 53m²의 땅에 3층집을 지어 온 가족이 모여 살던 K씨의 경우 층수는 인정받지 못하고 건물에 대한 가치를 포함하여 2억6백만원의 평가를 받았다. 그는 가족이 많아 최소한 108.9m²에는 입주하려 했지만 3억이 넘는 차액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남들 좋은 집에 살게 하려고 내 땅 내주고 쫓겨난다”는 그의 하소연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혜화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쟁 직후 이곳에 정착했다는 이화순(72)씨는 기자에게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누구네 집에 밥그릇이 몇 개인지, 아들이 뭐하는지, 딸이 어디로 시집갔는지까지 다 알아요. 대문 열고 나가면 얼굴 보고 커피 한 잔 하고 웃고 인사할 수 있는 게 이 동네지요. 태어날 때부터 본 젊은이들까지 죄다 말벗인걸. 자식한테 못하는 말도 이웃들에게는 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곳으로 가면 치매가 올까 그게 두렵습니다.”





잠시 후 대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남편 안서두(77)씨가 말을 잇는다.

“내 고향이 평양이오. 능라도에 포탄이 빗발치길래 이러다 그냥 죽겠다 싶어 인민군에 입대했지. 그리고 다시 국군에 입대해서 특무상사로 제대했어. 그렇게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내가, 평생 남한테 피해 안주고 살아온 내가 이제 무슨 돈 욕심 같은 게 있겠소. 이렇게 내 집 있고 내 땅 있으면 그만이지. 죽기 전에 고향만 가면 돼.”





얼마 후 아현동은 최신형 주거단지로 탈바꿈할 것이다. 오밀조밀 사람 한 명 지나다니던 골목은 자가용이 달릴 것이고, 아이들이 뛰놀던 옥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집이 들어설 것이다. 그때, 이곳에 있던 이웃들이 다시 모여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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