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정치보다 빠르다” 일본 연극계 수장 와다 요시오
“문화가 정치보다 빠르다” 일본 연극계 수장 와다 요시오
  • 김우성
  • 승인 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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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힘 있는 한국 연극에 매료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대학로에 일본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노트> <나생문> <닥터이라부> 등 일본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부터 한일 공동 연출작 <야끼니꾸 드래곤>까지 국내 관객과 만난 작품이 올 들어서만 줄잡아 10여 편이 넘는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진중한 주제의식이 돋보인다는 것.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환문제를 다루는가 하면 생명윤리와 재일교포 문제 등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최근 퓨전공연과 개그콘서트 위주의 상업적 색채로 변해가던 대학로에 신선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관객들 역시 환영하는 눈치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굴곡과는 별개로 연극에서의 양국 간 교류는 꾸준히 있어왔다. 80년대에 이미 한국의 연극들이 크고 작은 연극제를 통해 일본에 소개되었고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공연되었던 연극 <세월이 좋다>(이윤택 연출)는 최초의 한일 협력 작품으로 기록된다. 영화와 방송 만화 등이 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서서히 물꼬를 텄다는 걸 감안해보면 상당한 진척이다. 연극이 상대적으로 ‘산업적 민감함’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때마침 양국 간 교류협의차 방한한 일본 연극연출가협회 와다 요시오(和田喜夫)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출발하여 인천 국제공항으로 이어지는 동선 속에 일본진출 연극배우 1호 나자명 씨의 통역으로 한일 연극 교류 확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각의 장소에서 한국 연극연출가협회 손정우 회장과 지한파 사진작가 미야우찌 마사후 씨가 참여한 릴레이 인터뷰였다.




일본에서는 ‘한류’, 한국에서는 ‘일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근 방송과 영화에서 양국 교류가 활발하다. 그런데 연극에서의 교류는 그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 진척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1992년 일본에서 <세월이 좋다>가 공연되었을 때부터 비공식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예산 문제로 난관에 봉착했다. 이후 조금 조금씩 공연들이 오가다가 97년도에 한일 양국의 공식적인 첫 교류가 시작됐다. 그전까지는 어딘지 서로 부담스러워하던 분위기였다. 그때 임영웅(소극장 산울림 개관대표) 씨가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를 해야 한다. 침략문제 등이 있지만 연극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다시 만들어가는 것이다”는 말을 했고 다들 공감했다. 이에 연출가와 배우를 모두 포함하는 ‘한국과 일본의 연극인 교류회의’라는 명칭으로 출범하여 매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번갈아 회의를 개최했다. 벌써 4기 집행부로 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교류에 있어 연극이 가장 더딘 느낌이다. (이 질문의 대답은 손정우 회장이 대신했다)

손정우) 공연 안에 담고 있는 내용과 정신은 좋은데 사람과 무대가 함께 오가려면 많은 예산이 든다. 양국 교류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질문은 자연스레 손정우 회장에게 넘어갔다) 지금 대학로에 나부끼는 ‘한국 연극 100주년’ 깃발을 봤다. 와다 회장의 이번 방한과 관련이 있는가?

손정우) 한국 연극 100주년이라는 게 사실 일본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의 신파극도 일본의 신파극을 가져온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근대극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지 100년’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향후 100년의 관계를 생각하려 한다. 문화적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 많다. 우선 내년에 한국 연출가의 작품을 일본 측에서 초청할 예정이다.

나자명) 일본은 우리보다 국제교류를 먼저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예술단체들에는 일본 스텝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고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국제교류의 중심에 서 있기에 정보가 상당히 빠르다. 당연히 고급 정보가 많이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일본과 교류를 하는데 있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정보가 있지만 일본을 통해서 얻는 정보도 상당하다.



다시 와다 회장에게 질문을 하겠다. 현재 한국에서 많은 일본 희곡이 공연되고 있다. 양국 간 문화적인 친밀성이 있다고 보는지, 또 하나 일본 연극인이 바라 본 한국 연극은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어떤 부분이 좋은지 개인적으로 잘 몰라 한국의 지인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일본 희곡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많이 다룬다. 그러한 복잡하고 섬세한 면을 한국에서 좋아해주는 게 아닐까”라고 말하더라. 한국 연극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예술계 전반에 표현의 제재가 있던 민주화 운동 당시 이윤택, 오태석(국립극단 예술감독) 연출가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소리라든지 춤을 넣어서 표현한 형식이 굉장히 풍요롭고 다양했다.





형식, 이야기, 외적 요인, 기타 어떤 면에서든 한국 연극과 일본 연극 간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 연극에서는 ‘한’이라는 정서가 느껴진다. 연기적인 측면을 말하자면 한국 배우들은 좀 더 대륙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강하다랄까. 반면 일본 배우들은 좀 더 섬세하다는 생각이다. 연극뿐 아니라 영화 등에 있어서도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일본의 흐름이다. 멀리 떨어진 장소를 향해 말을 건네기 보다는 방 안에서 일어나는 정서를 풀어 가는 게 일본이라면, 한국은 밖으로 표출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러한 양국의 감각 차이가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지난해 한국은 뮤지컬의 풍년이었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 역시 평균적으로 뮤지컬을 포함한 음악극이 많이 늘어났다. 대사로 하는 연극은 세계적으로도 줄고 있다. 지금의 세계가 이념보다는 경제 중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대학로가 퓨전 공연 형태의 상업적 공연에 잠식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하며 순수 연극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에서도 ‘콘토’라 해서 개그, 개그, 개그로 관객을 웃기는 공연들이 문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연극을 위협할 정도의 괴물은 아니다. 일례로 오사카의 ‘요시모토 코교’라는 사람이 연예인을 모아 콘토 작품을 선보이며 여기저기 극장을 만들어서 크게 성공을 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상업적인 성공을 보고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극장을 새로 만들어가며 계획적으로 진행을 한다. 덧붙이자면 현재 일본은 잘 생긴 남자 배우들이(나자명 씨는 꽃미남이라 의역했다) 나오는 작품 쪽으로 관객이 몰리고 있다.



한국은 연극과 영화의 장르 간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연극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영화가 다시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연극과 영화 예술가들은 장르를 오가며 활약한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도 점차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던 중 와다 회장과 귀국길을 함께할 사진작가 미야우찌 마사후 씨가 합류했다. 한국에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공연 중이던 재일교포 연출가 정의신 씨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자명 씨의 소개에 의하면 그는 한일 문화교류를 처음으로 기록에 담은 사람으로, 1981년 소설가와 함께 첫 방한한 이래 한일 양국을 오가며 오태석 연출가, 김지하 시인, 전옥숙 전 시네텔서울 회장 등과 교분을 쌓아왔다고 한다.





오랜 시간 문화 교류의 핵심에 있던 입장에서 소회를 말해 달라.

미야우찌 마사후) 현재의 활발한 교류 움직임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던(정확히 그의 발언임을 밝힌다) 1990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공연을 한다고 하면 비자 발급이 안 될 정도였다. 공연 팀 10명이 간다고 하면 3명 정도는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갈 수 없었던 거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작품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더라도 누군가는 해서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 면에서 <레즈 시스터즈>를 번역하여 한국 무대에 올린 나자명 씨를 높게 평가한다.



인디언 출신의 세계적 작가 톰슨 하이웨이의 <레즈 시스터즈>는 1986년 캐나다에서 벌어졌던 인디언 소녀의 강간사건을 모티브로 소수 민족의 삶과 고난을 그린 작품이다. 2002년 일본 공연 당시 와다 요시오 회장의 연출로 나자명 씨가 주연을 맡아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이후 한국 공연에서는 나자명 씨가 번역, 제작, 연출, 각색, 연기 등 1인 5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났다.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면 일본 연극에서 재일교포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보는가.

미야우찌 마사후) 그렇다. 이미 <야끼니꾸 드래곤>이 그러하다. (연극은 일본 오사카 인근에 사는 재일교포 가정을 배경으로 자녀들의 결혼과 취업, 국유지 점거 등 재일교포들이 직면한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 부분에 있어 오히려 한국이 너무 모른다. 재일교포에 대해 ‘일본에 가서 잘 살게 된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실상은 정말 힘든 생활들을 하는데...



(와다 회장이 말을 이었다.)

<레즈 시스터즈>의 원작자 톰슨 하이웨이가 자신의 연극이 일본에 공연될 당시 재일교포 문제와 연계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에서 공연되는 <레즈 시스터즈>를 직접 보고나서는 “일본에서만 할 게 아니라 한일 동시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하며 굉장히 기뻐하더라. 그러한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게 되면 논쟁으로 흐를 우려가 있지만 문화를 통한다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2009년 6월 한일 연극 페스티벌을 준비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작품을 공연하고 일본에서는 한국작품을 공연할 계획이다. 한국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최근 인터뷰365에서 만난 영화감독 김성수, 세계여행가 김지희, 그리고 한국 연극연출가협회 손정우 회장에게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 문화의 국제적 교류를 위해 전방위에서 힘쓰는 그들의 생각은 한결같이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전하려면 다른 나라의 문화를 그만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갈수록 활발해지는 양국 간 교류를 통해 침체된 한국 연극이 일본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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