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의 포교, 멈추지 않은 고찰 도리사
아도화상의 포교, 멈추지 않은 고찰 도리사
  • 김철
  • 승인 200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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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600여년 신비 간직한 전설의 해동최초가람 / 김철



[인터뷰365 김철] 사람들은 ‘도리사’라는 사찰 이름은 몰라도 ‘아도화상’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을 것이다. 국사를 배웠다면 그가 승려의 신분으로 고구려에서 몰래 신라로 숨어들어와 불교를 처음 전파했다는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찰 이름보다 사찰을 세운 승려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 구미시 해평면 태조산에 위치한 도리사다.





사찰보다 더 유명한 아도화상

1천600여 년 전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해동최초가람’으로 유명한 도리사는 지금도 아도화상의 숨은 포교가 계속되고 있다. 아도화상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 도리사를 찾는 탐방객들이 연중 멈추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도 도리사에 남은 아도화상의 전설적인 흔적은 변함없이 사람들을 산사로 끌어당기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도리사에는 아도화상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불교문화유산이 있다. 도리사의 문화유산을 처음부터 제대로 체험하려면 산 중턱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오른쪽 위로 난 가파른 등산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편하게 걸어가는 것보다 숨을 헐떡이며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운동도 되고 한결 운치가 있다. 아름드리 노송과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험난한 구도의 길로 들어선 것 같은 착각에 젖어들기도 한다. 운 좋은 날 눈이 밝은 사람은 나무 밑에 숨어있는 버섯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도화상의 전설이 깃든 좌선대

그렇게 숲길을 오르면 절간 못 미쳐서 아도화상이 도를 닦았다는 ‘좌선대’를 만나게 된다. 큼직한 4개의 자연석 기단 위에 혼자 앉자 참선을 하기에 알맞도록 사각으로 평평하게 바위를 쪼아 만든 좌선대는 발을 딛고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게끔 발판을 다듬어 놓은 것이 이채롭다. 아도화상이 여기서 어떤 화두를 잡고 수행을 했는지 물론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이곳에서 좌선을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만으로도 신비로움이 감도는 곳이다. 도리사를 답사하는 나그네라면 빠뜨리지 말고 가 보아야 하는 곳이 좌선대다. 신라 땅에 처음으로 도리사라는 사찰을 건립하고 본격적으로 포교의 깃발을 치켜든 아도화상의 체취가 스며있는 불교문화의 성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좌선대를 거쳐 경내에 들어서면 보통 절간에서 보는 일반적인 탑과는 다른 특이한 양식의 석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두 5개 층으로 된 석탑은 맨 아래층인 탑을 받치는 기단 위로 2개 층이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塔身部)를 이루고 있는데 몸돌이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지붕돌 역시 벽돌과 흡사한 구조로 된 이 같은 석탑은 국내에서 유형을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양식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문화재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도리사에서 발견된 부처 사리

지난 80년대에 건립된 근래의 건축물이기는 하나 도리사의 적멸보궁과 석가여래사리탑은 아도화상의 또 다른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적멸보궁이 있는 절간이 여러 군데 있다. 통도사 상원사 정암사 법흥사 봉정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적멸보궁에는 아도화상에 의해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지 한참 지난 뒤에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을 나누어 봉안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6년 도리사에서 발견된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호) 안에 들어있던 부처 사리는 언제 봉안됐는지 유래를 알 수 없으나 도리사가 아도화상이 세운 신라 최초의 가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탐방객을 기다리는 불교문화재

아버지가 위나라 출신으로 불교가 성했던 양나라의 예불의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아도화상이 어쩌면 이들 나라에서 구한 부처사리를 포교용으로 들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종모양의 세존사리탑 속에서 발견된 금동육각사리함과 부처의 사리는 현재 직지사에 소장되어 있다. 도리사에는 이 밖에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극락전과 그 안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그리고 아도화상사적비 등 불교문화재가 여러 점 있다.



도리사를 답사하고 난 뒤 시장기를 느낀다면 주차장 모퉁이에 있는 허름한 움막을 찾아 칼국수를 청할 일이다. 절간에서 수십 년간 공양주로 일했다는 할머니가 즉석에서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옛날식 칼국수를 평상에 걸터앉아 먹는 맛은 덤으로 즐기는 추억여행이 될 것이다. 주차장 좌판의 동동주와 산채 등도 나그네의 구미를 당긴다.





아도화상의 공덕은 도리사의 힘

도리사를 탐방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인근 도개에 있는 ‘모례장자터’와 ‘모례장자샘’이다. 아도화상이 묵호자라는 이름으로 모례라는 지방 부호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집에서 숨어 지내며 포교를 했다는 전설적인 장소다. 화강암으로 다듬은 돌이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여 있는 모례장자샘은 아도화상이 머물던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샘으로 지금도 맑은 물이 솟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리사를 찾는 탐방객들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불교의 영역을 넓히는 데 직간접적인 도움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순전히 아도화상의 공덕이라고 봐야 한다. 그가 남긴 신비스런 발자취는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포교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곧 도리사의 힘이다. 아도화상의 전설적인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도리사의 힘은 쉬지 않고 떨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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