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l 무거운 한국소설, 달라지고 있다
Book l 무거운 한국소설, 달라지고 있다
  • Crispy J
  • 승인 200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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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깊이 있는 내용으로 탈바꿈 / Crispy J



[인터뷰365 Crispy J] 한국 소설은 무겁다. 한국 소설은 의미심장해야 한다. 한국 소설은 꼭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한국 소설은, 한국 소설은...” 이런 정의는 이제 벗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실, 하루키를 시작으로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 등 일본 소설이 우리 서점가에 가득 들어찰 즈음.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는 나 역시, 한국 소설을 많이 읽고 있지 않았다. 소설을 읽고 무거운 마음을 갖기 싫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니어도 우리에게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두 동강이 난 나라의 현실도 ‘우리나라는 원래 그래’라는 식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 같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는 착해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하며 삶에 있어 진지해야 한다는 교훈 같은 것을 무겁게 깔고 들어가는 한국 소설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책 대신 재미있는 거리를 찾았다. 책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넘쳐났다. 영화, 드라마. 심지어 리얼리티 쇼프로그램까지. 나를 울고 웃길 것들은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소설은 나를 웃기기보다는 울리거나 혹은 좀 심각한 상상을 이끌었다.



드라마 천국, “아줌마들은 드라마만 좋아해” 하는 말도 어쩌면 이런 것에서 핑계를 대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의 서점에 가면 순수문학은 물론 추리소설, 로맨스, 과학소설 등 다양한 책들이 서점에 한 가득이다. 정말 부러웠다. 드라마가 아니어도 책 한 권으로 재미있는 상상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가끔 선진국 사람들은 지하철은 물론 해변에서도 책을 읽는다고, 뭔가 다른 사람들 마냥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런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쯤 밟아주고 넘어가려는가. 그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한번 보기라도 한 건가... 한없이 가볍고 재미있는데다 야한 소설을 해변에서 읽고 있으면, 그럼 그것이 ‘선진국형 스타일’인 것인가? 물론 좋은 양서를 읽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다양한 선택의 폭이 있다.



하지만, 우리 소설은 좋은 소설이 많지만 대신 너무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순수문학을 어렵게 지켜나간 작가 분들에게 누가 되는 말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그 소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공유할만한 장르가 함께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공지영 은희경 김훈 박완서 등의 소설가가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 안에서 버티고 있어 주는 것 같아 한국 소설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한국 사람이 저자인 책은 순전히 실용서만 살아남는, 그런 시대가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두 여류작가의 이름으로 그나마 이겨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힘을 보태기 시작하는 소설들이 하나 둘 머리를 들고 나타났다. 첫 번째 그 힘을 느낀 것은 박민규의 소설에서였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처음 읽었을 때 그동안 일본 소설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재미와 깊이가 보였다. 어쩌면 이 소설이 한국 문단에서 첫 안타를 날려 주어 다음 타자들이 힘을 내어 홈런도 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으면서 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우울한 전쟁의 상처, 좌익 배경으로 인한 아픔 등이 없어도 우리 소설이 되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박현욱의 소설이 더 반가웠던 것은 2001년 읽었던 <동정 없는 세상>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우리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남자들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존 성의 틀을 깨는 행위 및 가정을 일구는 핵의 자리 등을 여자로 바꾸어 보여주고 있다. 골드미스, 연상녀 연하남 커플 등을 뛰어 넘는 이야기로 현실을 오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시각이 더욱 흥미롭고 새로웠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입장에서 '아내가 결혼했다'는 슬프기도 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남자와 결혼한 아내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은, 지금까지 남자들이 그래 온 것이기 때문에.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일본 소설을 이겨낼 만한 힘이라고 본다. 누구나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색다른, 비밀스런 탈선을 보여준다. 게다가 드라마에 빠져 있던 독자들을 다시 책 앞으로 불러 모은 책이 아닐까. 어쩌면 정이현이 시원한 홈런을 쳐 주어, 영화와 드라마 앞에 있던 독자들이 '뭐지? 뭐지?'하면서 다시 책에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꾸준한 안타를 쳐주고 있는, ‘문단계의 이효리’로 불리는 조경란, 신데렐라처럼 화려하게 등장한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등도 역시 한국 소설을 다시 반갑게 해준 주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소설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가뿐히 올려놓고 각종 매체에 이슈가 되게끔 한 책은 <완득이>와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지영의 책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워낙에 잘나가시는 분들이 아닌 새롭게 떠오르는 신예작가다.)



김려령의 <완득이>는 새롭고 또 감탄스럽다! 책을 읽는 내내 소리 내어 웃지 않을 수가 없었고, 책을 덮은 이후에도 완득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득이는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무게를 잡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팔랑거리는 듯. 재미와 사고하게끔 하는 소설의 핵을 동시에 갖고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만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까지 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모든 매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게 했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라는 것은 없지만. 이 소설은 한국 소설이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맛보기로 보여준 것 같아서 더욱 신나고 흥미롭게 만든다.



세 글자 제목의 소설이 뭔가 되는 걸까? <스타일> 역시 요즘 만난 한국 소설의 즐거운 미래다. 화려한 도시 여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욕망, 일, 인간미 등이 담겨져 있어 책을 덮는 순간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무겁지 않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 같다. 음악으로 치면 스타카토 기법으로 딱딱 끊어주듯 음을 들려주다가 결국엔 부드러운 멜로디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듯한 소설이랄까. 재미있고 재치있기만 한 소설은 아니다. 재미와 재치 안에는 우리가 겪어야 하는 갈등을 조심조심 다루고 있다.



이 밖에, 거론하지 못한 대단한 신예들도 많다. 새롭다 못해 소주 한잔 마신 듯한 소리를 내게 하는 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 소설도 결국 허구임을 말하듯 진지한 농담을 구사하는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한아의 <달의 바다> 등등



혹자는, 너무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최근 소설 시류에 대해 걱정을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한국 소설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날씨에 맞게 가볍게 옷을 벗은 것뿐이다. 한국의 문학에 겨울은 갔다. 이제 따뜻한 봄이 왔고, 여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날씨에 맞게 입은 옷을 보고 노출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대는 따뜻한 태양아래에서 나근나근하게 누워 썬탠 한 번 즐기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문학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지, 우리가 문학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로, 문학에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가 즐기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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