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무명 신인이었던 세계적 스타 성룡
충무로 무명 신인이었던 세계적 스타 성룡
  • 김갑의
  • 승인 200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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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성공 뒤에 한국연인 있었다 / 김갑의



[인터뷰365 김갑의] 세계적 액션스타 성룡이 한국에 처음 알려진 것은 합작영화를 통해서였다. 70년대 중반에 홍콩 대만의 무협영화들이 영화팬들의 구미를 돋우기 시작했는데 특히 이소룡 왕우가 나오는 영화는 극장에 붙였다 하면 관객이 몰려들어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소룡 왕우의 영화가 그리 흔하지 않았고 이소룡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그 자리를 메워야 할 대타가 있어야 했는데 당시 홍콩무협영화의 대부 격인 장철 감독이 재빨리 대타로 내세운 배우가 바로 성룡이었다.



장철 감독은 원해 영화평론가였다. 감독으로 데뷔한 것도 마흔이 넘어서였다. 그는 무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배우 기용과 무술감독 활용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또한 영화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상당한 영화지식은 드라마 연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철 감독은 자신의 프로덕션을 세우고 기계체조선수 출신이며 스턴트맨이었던 성룡을 과감히 주역으로 내세웠다. 그때 성룡의 나이 갓 스물이었다. 첫 영화는 한국과의 합작 <당산비권>이었다. 성룡은 1년에 5,6개월은 합작영화 촬영차 한국에서 살았고 그러는 동안에 한국인 애인도 생겼다. 열심히 한국말도 배워서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문제없이 하는 편이었다.





성룡은 주연을 하면서 무술감독을 겸했다. 성격이 낙천적인 데다가 일은 누구에게 뒤질세라 지독히도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촬영에 임하면 아무리 하기 힘든 장면이라도 불평 한마디 없이 끝까지 참고 해냈고 매우 위험한 연기에도 결코 대역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해냈다.



장철 감독 밑에서 합작영화로 배우를 시작할 무렵의 성룡은 거의 무명이었고 받는 개런티도 보잘 것 없었다. 한국인 애인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못 사준다고 마음 아파할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다. 합작영화 몇 편을 통해 그의 능력이 인정되기 시작했고 형편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성룡은 교만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운동을 했고 자기 멤버들과 무술을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가 <취권>으로 기성 스타들을 압도적으로 제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룡의 출세는 당시 한국의 ‘으악새(70년대 액션 활극의 별칭)영화’ 배우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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