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연예인들, 사랑과 행복 그리고 눈물의 비화②
가족 연예인들, 사랑과 행복 그리고 눈물의 비화②
  • 김두호
  • 승인 20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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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내 이름으로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1983년 초여름, 서울신문사가 세종로 신사옥(프레스센터 건물)을 건축하면서 동대문 부근에 있던 서울사대부고 학교 건물을 임시 사옥으로 사용할 때 일이다. 아침 일찍 출근중인데 정문 앞에서 낯익은 노신사 한 분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필자를 보는 순간 대뜸 손길을 끌어 잡고 부근 커피숍으로 갔다. 원로배우 김진규였다.



“내가 지금 아주 입장이 곤란해요. 진아가 한 말도 중요하지만 내 이야기도 좀 들어줘야겠어요.”



그는 매우 긴장되고 흥분해 있었다. 김진아가 조명화 감독의 <다른시간 다른장소>라는 작품으로 막 데뷔를 준비할 때 인터뷰 중 “아빠와 엄마가 자주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아빠가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엄마와 자식들 문제로 상의를 하고 가시지요”라는 말을 하면서 ‘김진규, 김보애 재결합 하려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다음날이었다.



당시 김진규는 61살, 김보애는 45살, 딸 진아는 스무살로 미국 유학중 귀국해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활동을 않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홍파감독의 새작품 <외출>에 캐스팅되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로부터 11년 전 이혼했고 그 후 김진규는 한차례 재혼에 실패했다는 소문과 함께 잠실에서 독신으로 산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딸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 양쪽에 확인하는 절차를 가졌다. 그 때 김보애는 부정적이었지만 김진규는 “하하핫 그것참, 잘 봐주시오”라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농담으로 받아 넘겨 오해를 사게 했다. 김진규와 김보애의 이혼은 김진규가 영화제작에 나섰다가 실패하면서 비롯됐다.



“아빠 엄마가 헤어질 때 내 나이 9살 땐가 그랬죠. 그때 아빠가 나를 무릎위에 앉혀놓고 노래를 시켰어요.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이혼할 무렵 진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다. 부모가 헤어진 후에도 진아는 엄마와 함께 아빠의 체취가 묻어있는 한남동 주택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져 살았지만 딸에 대한 김진규의 애정과 관심은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딸이지만 딸에게 한마디도 꾸짖지 못하고 필자에게 달려와 해명 기사를 부탁해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적어온 편지를 내밀었다. 그 전문을 그대로 옮겼다.(영화 <아빠하고 나하고> 스틸사진 하단)





김진규는 필자를 통해 딸에게 자신의 간절한 심경을 담은 글을 밤새도록 써서 다음날 필자를 만나려고 달려온 것이다.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그 무렵 그는 ‘재결합은 있을 수 없는 입장’으로 밝혔는데 아마도 다시 만난 반려자를 곁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김진규는 얼마 후 그 마지막 반려자와 함께 제주도로 이주해 그곳에서 여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다.



김진아는 1990년 영화 <연산일기>의 장녹수 역을 끝으로 더 이상 연기자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5년 후인 1995년 KBS 2TV 드라마 <개성시대>를 통해 연기활동을 재개했다. 그런데 그 때 김진아의 컴백 동기가 “늙으신 아버지 격려에 연기자의 길로 다시 돌아왔어요” 였다. 노환으로 고생하는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제주도로 갔다가 아버지로부터 “너는 나를 닮아 평생 연기자로 살 사람인데 연기를 하지 않고 있다니 말이 되느냐”는 간곡한 설득을 받고 마음을 되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진아는 아버지와 사별 후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영화와 TV드라마 양쪽을 오가며 이제는 큰 연기자의 얼굴로 자리 잡은 허준호는 1950년대에서 1974년까지 활동한 영화배우 허장강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다르지만 연기자 선배이기도 한 허기호와 형제간이다. 허준호는 TV 드라마 <주몽>에 해모수로 출연, 이른바 ‘카리스마 연기’로 같은 시간대의 경쟁 드라마를 초반에 제압해 작가에게 그의 출연 수명을 연장시키게 만들어 화제에 올랐다. 그만큼 좋은 연기자로서의 개성과 저력을 평가받는 중견 배우로 섰다. 허기호도 연기에 대한 직업정신과 집념이 남다르지만 아버지 허장강처럼 주연보다 조연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 허장강은 평생 조연 연기자로 활동했으나 한국 영화 인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출중한 영화배우로 명성을 남겼다. 잘생긴 길쭉한 얼굴에서 표출되는 넉살과 익살, 때로는 거들먹거리며 빈정대는 말투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허장강의 독창적인 개성이었다. 그는 주로 조연배우로 영화마다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그의 역할로 인해 드라마에 생기가 돌고 흥미가 살아났다. 1954년 <아리랑>으로 시작해 <피아골> <종가> <연산군> <옹고집> <메밀꽃 필무렵> <토지> <분례기> 등등 자그마치 남긴 작품이 9백여 편을 헤아린다. <성춘향>의 방자역 같은 것이 바로 허장강의 일품 연기를 보여준 캐릭터다. 일본군의 앞잡이나 구두쇠 같은 악역도 많이 맡았지만 구수하고 소박한 머슴이나 방자역으로 특히 사랑을 받았다.



1975년 가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새마을돕기 연예인축구대회에 출전, 모처럼 과격한 운동을 하다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허장강의 슬하에는 3남 2녀가 있다. 장남인 허기호의 어머니는 2남 1녀를 두고 남편과 결별했고 새로 맞이한 부인이 허준호와 딸 하나를 낳아 5남매를 키웠다. 아버지 허장강은 매우 보수적이고 근엄했으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가풍을 만들어 재혼 후에도 5남매를 탈없이 뒷바라지 했다. 기호 준호 형제도 어머니가 다르고 12살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았다. 형 기호는 동생 준호가 어릴 때 함께 살 때는 형을 따르고 좋아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별세하면서 모계가 다른 형제간에 이산가족이 되는 불행이 찾아오면서 차츰 소원해지게 된 것을 마음의 상처로 간직하고 있다.





이쯤에서 가족 연예인들, 특히 연기자 2대를 이어가는 그 밖의 이름들을 대충 열거해 보자. 무대에서 ‘오빠’의 열기를 업고 영화 <돌아이>시리즈로 역시 바람을 일으켰던 전영록은 액션 명우 황해의 아들이고,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탤런트 조형기도 영화배우 조항의 아들이다. 가정과 연기생활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한 배우로 인기 수명을 지켜온 안성기도 아들보다 더 미남인 배우 출신 아버지가 살아계신다. 아버지 안화영은 영화사 사장도 역임했으나 1960년대에 활동한 잘 생긴 미남 배우였다.



2006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은 김희라는 <마부>의 명배우 김승호의 유일하고 귀한 혈육이다. 김승호라면 주로 가족영화나 토속영화의 구수하고 인정어린 아버지 역으로 한 시대 관객들을 눈물바다로 이끌고 다닌 명연기자였다. 김승호는 연기자로서의 탁월한 활동 공적을 남겼지만 가정생활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모든 애정과 사랑은 오로지 영화와 촬영장에 있었다. 가족들은 가장에게 만족할 수 없었고 아들 김희라의 성장과정도 꿈과 사랑보다 가난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요즘 연기보다 TV 연예프로에 얼굴을 많이 내미는 배우 박준규는 액션영화에서 톱스타 호칭이 따르는 박노식의 아들이고, 독고영재도 독고성의 연기 개성을 이어받은 2세 배우다. 지금은 활동을 않고 있으나 남성미 넘치는 매력으로 사랑을 받던 최동준은 영화계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배우 최성호의 아들이다. 지금은 활동이 뜸하지만 탤런트 주용만도 선이 굵은 성격파 연기자였던 주선태의 아들이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에게 ‘당신이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녀 다같이 ‘연예인’을 꼽는 경우가 드물었다. 필자가 재직한 매체의 조사 결과를 보면 드문 정도가 아니라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직업인을 부부로 만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주로 여자 연예인들은 사업가나 전문직 아니면 유학생을 선호했다. 실제 결혼 상대나 교제 상대로 그런 직업인들이 빈번하게 등장했으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연예인이 인기 직업인으로 떠올랐고 연예계의 결혼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대학입시에서부터 대중문화 관련 학과가 크게 부각되는 세태로 변했다.





또한 유동근 전인화, 최수종 하희라, 손지창 오연수, 채시라 김태욱 커플 등 연예인 부부가 줄줄이 탄생하고 중진 탤런트들의 자녀들이 부모의 뒤를 따라 영화 방송 연극학과를 거쳐 무대로 앞다투어 달려 나왔다. 이영하 선우은숙의 아들 이상원은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 연예인이 됐고, 남성우 김용림부부의 아들 남성진도 ‘전원일기’의 복길이 김지영을 가족으로 선택해 연예인 부부를 대물림했다. 개그맨 서세원과 모델출신 배우 서정희 부부는 아들 서동천을 가수로 내보냈고, 그밖에도 고 추송웅의 딸 추상미, 고 김무생의 아들 김주혁이 열심히 아버지의 연기 업을 받들어 꿈을 펴고 있는 등 가족 연예인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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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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