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도전 당당한 연기, 배우 장영남
겁 없는 도전 당당한 연기, 배우 장영남
  • 김우성
  • 승인 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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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연기로 입지 넓히는 무서운 그녀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 사진 정경미] 석고인형으로 굳어버리는 섬뜩한 ‘엄마’(헨젤과 그레텔), 용의자와 줄타기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여검사’(박수칠 때 떠나라), 교통사고 당하는 ‘사고녀’(아는 여자)... 장영남은 흔히 말하는 ‘국민 배우’가 아니다. CF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적지 않은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건만 레드카펫 위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는 장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선보이는 배역마다 오랜 잔상을 남기며 스크린 밖 관객들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오는 중이다.



장영남은 최근 대학로에 있었다. 올 초 장진 감독이 연출한 연극 <서툰 사람들>에서 집주인 ‘유화이’역을 맡아 매진행렬을 이어갔던 그는 18일 끝난 연극 <포트>(극단 골목길)에서 불우한 환경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성 ‘레이첼 키츠’로 열연했다. 장영남은 원래 연극계에서 오래 다져진 배우이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거쳐 95년 극단 ‘목화’에 입단했고 2006년 출연한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는 별도의 분장 없이 연기만으로 일곱 살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1인10역을 소화해내며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오태석(국립극단 예술총감독) 선생님을 뵙고 오느라 늦었다”며 허겁지겁 달려 온 그를 대학로 카페에서 만났다.




다시 연극무대에 오르셨는데요.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도 영화 출연이 계기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모든 배우의 로망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라는 게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주어진 곳 어디든 가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세상의 많은 것을 알아가듯, 배우로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제자리걸음’을 느꼈던 적도 있으셨다죠? 그게 정확히 언제였나요?

서른 살 초반일 듯. 서른 둘 셋 넷? 무척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극복을 하셨죠?

사실 처음에는 극복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후에 지나서 드는 생각이 계속 작품을 했기에 나름대로 극복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며 그 안에서 자꾸 새로운 무언가를 더 찾으려 했었죠.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고 도전했어요. 영화가 그랬고 방송이 그랬고. 가장 큰 계기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통해 새로운 용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는지를 물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사실은 두려웠어요. 이것을 하는 게 옳은 것인가. 젊은 나이에 모놀로그(등장인물이 특정의 상대에게 들려주기 위해 대사를 하는 게 아닌 혼자만의 대사를 하며 이끌어가는 극)를 한다는 건 폭탄을 들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껴졌죠. 배우로서 수명이 끝나지 않나 불안했습니다. 관객들은 끊임없이 ‘저 사람’에게 다른 연기, 다른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는데 모놀로그는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저 사람’의 모든 걸 보여주게 되면 한계가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려웠죠.



그럼에도 선택을 했던 이유는 모험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연기를 X판을 쳐서 완전 밑바닥으로 확 떨어지든지, 아니면 또 다른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든지. 사실은 후자를 바라면서 도전을 했습니다. 결론은... 좋았고요.(웃음) 배우로서뿐 아니라 영남이로서, 인간 장영남으로서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한 시간 반 동안 혼자서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는 게 벼랑 끝에 달랑달랑 매달린 느낌인데 그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죠. 그러한 두려움을 겪으면서 ‘사람이 조금 더 강인해져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전 사실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사람이거든요.



연극에서 영화와 방송 등 영역을 오갈 때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도 하나요?

그렇죠. 연극은 무대 한 덩어리 안에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데 영화나 방송의 경우 카메라 앞에 선다는 건 나에게 너무도 새로운 일이니까요. 연극이 좀 더 강렬하고 굵직한 걸 더 원하는데 반해 카메라 안에서는 섬세한 내면을 중요시하는 듯해요. 연극도 섬세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걸 좀 더 강력하게 표현하는 거죠. 매너리즘을 방지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도 되기도 하고요.



연극으로는 대중들과 친숙해지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중들과 친숙해지기 어렵다기 보다 ‘대중적으로’ 친숙해지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연극이라는 게 유럽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공연을 보러 온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요? 독일에 갔을 때 보니 주말에 맥주 마시면서 공연보고 그러더라고요. 아주 일상화되어 있었죠. 생활의 한 부분처럼 맥주 마시다가 “우리 공연 보러 가자”가 되는 거예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정말 여유 있는 사람들이 공연 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빡빡한 요즘 세상에서. 하하. 연극이라고 하면 보통 아주 가난한 곳이라고 인식하면서 한편으로는 비싼 티켓 값 때문인지 관람하는 것 자체는 ‘부르주아’로 여기는 양면성이 있어요.





누구보다 무대공연의 매력을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생생함! 현장감이죠. 같이 함께 만나는 것. 또 한 가지는 연습, 전 연습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 기간이 있기 때문에 공연이 한 작품 올라가고 매일매일 또 다른 관객들과 만나고, 새로운 호흡을 얻어가고, 발전해가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스스로 느껴가고. 그러한 과정이 누구에게나 큰 매력이거든요.



그래서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계신 건가요?

배우가 다른 배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쉬는 기간이 필요하다고들 하잖아요. 여행도 필요하고. 전 또 조금 다르게 봐요. 내가 어차피 완성된 배우가 아닌데, 여러 다양한 역할을 해보면서 그 배역 안에서 가끔 얻어지는 몇 가지 것들을 내 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에 다른 공연을 했을 때 그걸 다시 완성시키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털어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에 표출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배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계기라는 게 아마 나를 발견했던 때였을 것 같아요. 내 발견. 저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었거든요. 내성적이고, 어디 가서 손도 잘 못 들고, 바보 같고, 자기 표현도 잘 못하고. 그런데 연극을 해보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입이라도 뻥긋대는 게 신기하고 좋더라고요.



스스로를 발견하며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죠. 친구들과 함께 아기자기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데 연습과정도 상당히 재밌는 거예요. 겉으로는 화려한 것 같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소박함이 좋았죠.





영화 자주 보실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후배의 권유로 이냐리투 감독의 <아모레스 페로스>라는 작품을 봤는데요. 세 개의 스토리가 옴니버스처럼 구성되어 있는 영화인데 관점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거든요. 상황이나 씬 연결이 정말 너무 잘 찍은 거예요. 거칠면서도 섬세하고. 그걸 보면서 ‘아 여기서 작은 배역 하나에도 너무 행복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콤플렉스가 있다면요?

목소리요. 제 목소리가 평이하지가 않잖아요. 얼굴은 못 알아보시고 “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라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그러면 나는 속으로 “목소리가 한결같은 배우가 안 좋지 않나..”하고 생각하죠. 하하. 약간 그로테스크하게 들리시나 봐요.



차기작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MBC드라마 <달콤한 인생>에 1,2회 잠깐 나오기로 했는데 9회부터 다시 나오게 되어 촬영 중이고요. 김지수 씨 이하나 씨 출연하는 <태양의 여자>라는 드라마에 방송작가로 출연해요. 영화는 장진 감독님 준비하고 계신 작품에 함께 하기로 되어 있고요.



팬들에게 어떤 배우로 알려졌으면 하나요?

배역 때문에 그런지 강한 배우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길게 호흡할 수 있는 사람, 길게 달려가고 싶거든요.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으니까요.





그는 인터뷰를 마치기 무섭게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으로 향했다. 두 시간여 뒤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완성되지 않은 배우라고 말하던 그는 그렇게 주어진 무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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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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