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엄마가 뿔났다> 작가 김수현의 옛날이야기
[그때 그 인터뷰] <엄마가 뿔났다> 작가 김수현의 옛날이야기
  • 김두호
  • 승인 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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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작가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방송작가 김수현’이라면 다른 호칭보다 거리낌 없이 ‘천재 작가’라는 한마디로 표현함이 마땅하다. ‘방송작가 김수현’의 천재성 기량은 라디오 전성시대였던 1969년, 문화방송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시작된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이야기가 됐다. 한 때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고, 출판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역시 그녀의 창작 세계가 빛을 발한 주 무대는 TV 드라마였다.



김수현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TV 드라마는 대부분 대박 수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시청자를 드라마의 포로로 만들었다. 출연 연기자는 황금의 스타로 떠오르고 프로듀서도 스타가 된다. 심지어 죽어 있던 노래들도 드라마에서 소개되고 나면 히트곡으로 되살아나고 대사 속의 말들은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작가의 막강한 파워도 틈틈이 뉴스거리가 된다. 엄청난 고료를 받는다든가 캐스팅에서 출연 연기자의 연기 표현까지 입김이 미친다는 소문이 꾸준히 흘러나온다.



1972년 8월 31일부터 시작한 MBC 드라마 <새엄마>는 자그마치 411회 연속 기록을 남겼다. 이어서 나온 <신부일기> <안녕> <강남가족> <여고 동창생> <청춘의 덫> <행복을 팝니다> 등이 모두 30여 년 전의 히트 작품들이다. 최근의 <내남자의 여자>, 지금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엄마가 뿔났다>까지 김수현 작품은 작가의 이름이 곧 ‘재밌는 드라마’로 통하고 성공과 최고 시청률을 보증하는 안방극장 인기 드라마의 역사를 대변해 왔다.



그녀의 작품 성공 요인은 시청자의 상상에 허를 찌르는 변화무쌍한 사건 설정과 시대적 분위기를 살려내는 리얼리티,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토해내는 시원한 감정 표현, 그리고 감칠맛 나는 대사에 있다. 홈드라마라는 것이 주로 안방이나 밥상 앞에서 일어나는 가족들의 애환을 소재로 한 것들인데 김수현은 가족들의 미묘한 느낌이나 섬세한 심리까지 버리지 않고 흥미 있고 감동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천부적인 드라마 이야기꾼이다.



빅히트 TV드라마 <청춘의 덫>의 인기 여진이 남아있던 1979년 김수현 작가는 287페이지짜리 산문집 <미안해 미안해>를 펴내고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했다. 귀여운 딸 하나와 살던 38살 때였다. 10여 년간의 방송작가 생활을 잠시 돌아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힘들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쓴 그 산문집은 소문대로 소신이 분명하고 자존심 강한 작가의 면면을 스스로 적나라하게 고백한 수기집과 같았다. 당시 서울신문사 주간국 취재1부에서 필자와 함께 기자생활을 한 박안식 선배기자(10여 년 전 타계)가 김수현 작가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간추려 옮겼다.





당신도 열등감을 느낄 때가 있는지?

비교적 열등감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다른 사람이 쓴 썩 좋은 작품을 읽거나 마주칠 때 심한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면 ‘나는 벌레야’하고 자문자답을 한다. 최근엔 아라요시 사와코 여사의 소설 <복합오염>을 읽고 내가 벌레로구나 했었다.



처음 받아 본 월급은 얼마였나?

21살 때 월간지 회사에 입사해 한 달간 일했다. 편집부에 자리가 없어서 광고 일을 하게 되어 성과는 없었지만 눈물을 짜내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광고부장이 월급날 주는 첫 봉투를 열어보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아 분을 참지 못했다. 5백원 짜리 여섯 장이 들어 있었다. 그걸 찢어 12장으로 만든 뒤 봉투에 넣어 되돌려 주고 나왔다. 그날 버스비도 없었고 자취방엔 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이상적인 남자(남편)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첫째는 가정에서 자상하고 다정하며 친절하고, 둘째는 사회에서 유능한 직장인이며, 셋째는 남자로서 매력 있고 성실할 것. 그러나 남편들은 다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아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부가 일심동체(一心同體)라기보다 각심각체(各心各體)라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는 것이다. ‘아빠 일찍 들어오세요’한 뒤부터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고 저녁에 대문 벨을 누르는 순간부터 다시 아빠로 돌아온다고 여기면 무난하게 살 수 있다고 본다. 남자들이란 언제 어디서나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작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매우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 서울 수색에서 보증금 2만원에 월세 1천5백 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다. 세 끼 식량도 모자랐다. 딸을 업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10원어치 과자를 사주러갔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빨이 뿌드득 갈리는 슬픔과 처참함을 맛보았다. 초등학교 6학년 된 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 재미있다고 깔깔 웃는다. 딸의 재미있어 하는 모습에 나도 재미있어 심심하면 우리 모녀의 대화 레퍼토리로 등장하지만 나는 웃음과 함께 쏟아지는 눈물도 참지 못한다.



당신은 초능력자가 아닌지? 책에 보니 예시와 관련된 꿈 이야기도 나왔다.

하하하. 나는 글 쓸 때마다 죽을 고생을 한다. 일주일 연속극 대본을 시간 두고 나누어 가며 쓰면 좋으련만 내내 뭉개다가 마지막 날 밤샘을 하며 쓴다. 꼭 노름하고 난 사람처럼 초주검이 되어 일어난다. 그런데 꿈은 이상하다. 신통하게 맞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임신한 친구의 꿈을 꿨는데 배가 꺼져 있었다. 물어보니 아들을 낳았는데 죽었다는 거다. 며칠 후 그 친구를 실제 만났는데 꿈 내용이 그대로였음을 알고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꿈이 맞을 때가 많다.



김수현 작가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히 코멘트를 거부한 부문도 있었다. 딸과 혼자 사는 이유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그 후에도 많은 기자들과 만났지만 헤어진 남자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비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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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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