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마음이 머무는 '집'으로의 회귀...연극 '작은 아씨들'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마음이 머무는 '집'으로의 회귀...연극 '작은 아씨들'
  • 주하영
  • 승인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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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8년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 원작 각색 연극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소설이 아닌 ‘연극’임을 강조하기 위해 마치 가(家) 자매들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례행사로 공연하는 ‘연극’을 공연의 시작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조가 쓴 극본은 모두 4편으로 흡혈귀 이야기, 해적 이야기, 스릴러 미스터리, 프랑스 귀족 이야기로 소개되며, 공연마다 '극중극'의 레퍼토리가 달라지는 특징을 지닌다./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소설이 아닌 ‘연극’임을 강조하기 위해 마치 가(家) 자매들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례행사로 공연하는 ‘연극’을 공연의 시작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조가 쓴 극본은 모두 4편으로 흡혈귀 이야기, 해적 이야기, 스릴러 미스터리, 프랑스 귀족 이야기로 소개되며, 공연마다 '극중극'의 레퍼토리가 달라지는 특징을 지닌다./사진=위클래식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우리에게 ‘집’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반적으로 ‘집’은 우리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을 지칭한다.

하지만 ‘집’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그 이상이다. ‘집’은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는 아련한 기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안식처가 된다. 물론 모든 이들에게 ‘집’이 안락한 곳은 아니겠지만 ‘집’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따스함과 편안함, 포근함과 안도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어에서 ‘집(home)’은 ‘영혼들이 거주하는 마을 혹은 장소’라는 어원적 뜻을 갖고 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플리니우스는 “집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고 말했고, 아일랜드의 소설가 세실리아 아헌은 “집은 장소가 아니라 감정”이라고 말했다. ‘집’은 우리의 애정과 사랑, 기억과 신뢰가 깃든 곳이고, 우리의 이야기가 간직된 곳이며,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마음의 장소이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마치 가(家)의 응접실은 자매들이 집을 떠날 때마다 각 인물을 상징하는 공간에 흰 천을 드리운다. '조'(최유하,오른쪽)는 세상을 떠난 베스가 '촛불'과 같은 존재였음을 에이미(박란주, 왼쪽)와 메그(신의정, 가운데)에게 말한다./사진=위클래식

지난 10월 대학로에서는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작은 아씨들’의 공연이 있었다. 연극 ‘작은 아씨들’은 2020년 5월 트라이아웃 공연 당시 전 회차 매진의 성원에 힘입어 2021년 3주 동안 무대에 올라 더 많은 관객들에게 소개되었다.

연극 ‘작은 아씨들’은 마치 가(家)의 네 자매와 어머니인 미세스 마치, 로리와 존 브룩을 중심으로 각 인물들이 객석에 있는 관객들을 향해 자신들을 소개하는 ‘인터뷰’ 형식을 적용하며 사건들을 전개해 나간다.

각색의 과정에서 ‘연극성’을 강조하고, 당대 여성에게 의무로 여겨지던 ‘결혼’에서 벗어나 ‘작가’의 길을 걸었던 올컷의 “주체적 선택”을 반영한 연극 ‘작은 아씨들’은 각기 다른 삶을 향해 움직이는 네 자매의 모습을 축약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구현한다.

연출을 맡은 송정안은 프로그램북에서 ‘독백’이 아닌 ‘인터뷰’ 형식을 채택한 이유를 “인물 개인의 역사와 속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또, 주인공인 네 자매가 각자의 뚜렷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성으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식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땡’하는 벨소리와 함께 조명이 비춰지면서 특정 인물의 ‘인터뷰’ 차례가 주어지는 구성은 “인물 개인의 역사와 속내”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조(최유하)'는 작가가 되고픈 자신의 꿈과 자매들의 연극 공연, 그리고 매주 발간하는 자매들의 '피크위크 신문'에 대해 설명한다./사진=위클래식

송정안 연출은 관객들이 150년 전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선택과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작가 자신도 전혀 흥행을 예측하지 못했던 네 자매의 성장 소설 ‘작은 아씨들’이 7개의 영화, 10개의 TV 시리즈, 브로드웨이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으로 각색되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팔리는 소설”로 여겨지던 자극적인 스릴러를 필명으로 쓰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돕던 올컷은 ‘작은 아씨들’의 성공에 대해 “전혀 자극적이지 않지만 단순하고 진실한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출간 몇 주 만에 초판 2000부가 모두 소진되고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러시아 등으로 퍼져나간 소설은 19세기 말 “소년들을 위한 책 베스트 20위”에 선정되었다. “소녀들을 위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출판업자의 요청이 못마땅해 집필을 미루다 자신이 아는 유일한 ‘소녀들’인 자매들의 이야기를 쓴 ‘작은 아씨들’이 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베스(정우연)'와 함께 바닷가를 찾은 '조(최유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 집필한 소설의 일부를 읽어준다. 베스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매들의 이야기를 계속 써 줄 것을 조에게 부탁한다./사진=위클래식

캔자스 주립대 영문과 교수인 그레고리 아이셀라인에 따르면, ‘작은 아씨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질문하게 되는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지’와 같은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홀린스 대학 영문과 교수인 줄리 파이퍼 역시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던 다른 19세기 성장소설들과는 달리 ‘작은 아씨들’이 드러내는 보편적 주제가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청소년기가 정신적 무질서와 미성숙, 소외와 고통의 시기가 아니라 “변화의 시기”이자 “특별한 시기”임을 인식시켰다고 설명한다.

‘스미소니언 매거진’은 2018년에 출간된 앤 보이드 리우의 책을 인용하면서, 무엇보다 ‘작은 아씨들’은 “여성성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고 스스로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선택해 결정할 수 있음”을 구체화했다고 강조한다.

연극 ‘작은 아씨들’은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해 정치활동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1879년 미국 콩코드 지역 의회 선거에 최초로 등록한 여성이었고, 독신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던 올컷의 삶을 반영하기 위해 네 인물 중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조’에게 결혼이 아닌 ‘독립된 삶’을 부여한다. 또, 각자가 내면에 품었던 ‘꿈’을 강조하고 시대의 한계, 각 인물이 겪는 ‘변화’에 보다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대사들을 첨가하기도 한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작은 아씨들'은 원작 소설이 강조하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따르는 ‘순례자 놀이’와 남북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매들의 모습보다 어머니인 '미세스 마치(유연)'의 현명함과 굳건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마치 가(家)를 완성한다./사진=위클래식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따르는 ‘순례자 놀이’와 남북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자매들의 의지는 최소화되며 오히려 어머니인 미세스 마치의 현명함과 굳건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마치 가(家)를 완성한다. 이 때문에 이전 세대의 남성을 대변할 수 있는 미스터 마치와 옆 집 로렌스 씨는 ‘목소리’로만 존재하며 플롯 전개에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소설이 아닌 ‘연극’임을 강조하기 위해 마치 가(家) 자매들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례행사로 공연하는 ‘연극’을 무대의 시작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동네 아이들과 가난한 이웃들을 초대해 선보이는 공연을 시작하듯 마치 가(家) 자매들은 응접실 공간에 앉아 연극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한다.

피아노 한 대와 각 인물들의 공간으로 보이는 의자 몇 개, 소품이 놓여있는 마치 가(家)의 응접실 커튼이 활짝 젖혀지면서 조명이 밝아지고 자매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선다. 막내인 에이미는 관객들을 향해 “저희 공연을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후 마치 가(家)의 연극이 시작됩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에이미가 눈을 감고 “저는 한 번도 안 틀리게 해 주시고 조 언니는 3번 정도 틀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올리는 사이 객석 사이로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모자를 쓴 둘째 ‘조’가 등장한다. 마치 뉴욕에서 작가 생활을 하다 집으로 돌아온 ‘조’를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은 “드디어 나타났네요! 정말 말썽꾸러기가 따로 없네요!”라는 에이미의 대사와 함께 빨리 무대 위로 오라는 손짓에 맞춰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조가 회상하는 자매들의 역사’라는 구성을 만들어낸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로리(서동현)'는 오랫 동안 고대하던 자매들(왼쪽부터, 에이미(박란주), 베스(정우연), 조(최유하), 메그(소정화))의 극단에 '객원 배우'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사진=위클래식

올컷의 원작 소설과 2019년에 개봉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 보이는 연극 ‘작은 아씨들’은 마치 가(家)의 자매들이 관객들을 향해 선보이는 ‘극중극’을 통해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미리 제시한다.

연극에서 늘 남자 역할을 도맡아 하던 극작가이자 배우인 ‘조’는 ‘베니스의 해적’이라는 작품 안에 남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세상에 여자라는 이유로 제한되고 비하되는 상황과 ‘집’과 ‘가족’, ‘그리움’의 메시지를 구축한다.

가족이 진정 원하는 것은 ‘보물’이 아니라 “비워지지 않는 당신의 자리”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따뜻한 모닥불, 갓 구운 빵 냄새, 뛰노는 아이들, 달콤한 코코아, 푹신한 침대, ... 흔들리는 촛불”과 같은 따뜻한 ‘집’을 연상하게 만드는 단어들의 나열과 함께 1823년 H.R 비숍의 가곡 ‘즐거운 나의 집’의 노래로 이어진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나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라는 노래 가사는 연극 ‘작은 아씨들’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대저택에 사는 로리가 마치 가(家)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외롭고 엄격한 자신의 집과는 다르게 ‘따뜻함’과 ‘웃음’을 품고 있는 가정을 향한 열망 때문이다. 가난에도 불구하고 존 브룩과의 결혼을 결정하는 맏딸 메그의 선택은 어머니의 말처럼 “돈은 유용한 것이지만 한 남자의 마음을 차지하는 일이 그 자체로 기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조를 마음에 품었던 '로리(강상준)'는 청혼이 거절당하자 유럽을 방황하며 술에 취해 시간을 낭비하지만 에이미를 만난 뒤 '변화'를 느낀다./사진=위클래식

직업과 결혼에 있어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는 현실적인 에이미가 대고모님이 원하는 프레드와의 결혼이 아닌 로리를 선택하는 이유는 진정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연극 ‘작은 아씨들’은 당대의 코드와는 맞지 않지만 에이미가 로리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하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주체적인 선택’을 강조한다. 또, 다른 삶을 꿈꾸며 집을 떠난 자매들의 빈 공간을 홀로 지키던 베스가 약해진 심장으로 인해 임종에 이르는 장면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은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원작에서 에이미는 베스의 임종을 보지 못하지만 연극 ‘작은 아씨들’은 베스가 매일 상상하던 “이 집이 다시 시끄러워지는 순간”을 극의 마지막에 배치한다. 자매들이 모두 함께 지내던 시절을 꿈꿨던 베스는 자신을 보기 위해 돌아온 에이미와 조, 메그를 향해 말한다.

“나 혼자 생각했어. 왜 다들 떠나려고만 할까? 난 이 집이 좋은데. 혼자인 건 싫어. 그래서 내가 먼저 가는 거야. ... 이렇게 행복하게 보내줘서 고마워!”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베스(홍지희, 왼쪽)'는 자매들과 로리, 로리의 친구들과 함께 했던 바닷가로의 '소풍'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에이미(박란주)'는 영국에서 온 프레드에게 편지를 보내도 좋다고 허락한다./사진=위클래식

베스가 떠난 자리에 모여 앉은 자매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떠나려고만 했을까?”

연극 ‘작은 아씨들’은 성인이 된 메그와 조, 에이미가 지나간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과 행복, 꿈을 돌아보는 구조를 완성한다. 같이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잊고 영원히 되풀이 될 것이라 여겼던 추억은 베스의 죽음과 함께 네 자매의 마음속에 묻힌다.

“혼자서 집을 밝히고 있던 촛불”과 다름없는 베스는 자매들의 성장기가 끝났음을 알림과 동시에 앞으로 남은 길에 또 다시 ‘새로운 빛’을 만들어나가야 함을 인식시킨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자매들이 떠난 자리에는 '흰 천'이 드리워지고, 몸이 약한 '베스(홍지희)'만이 홀로 남아 피아노와 함께 집 안을 밝히는 '촛불'이 된다./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은 자매들의 미래 또한 변경한다.

메그는 쌍둥이인 데이지와 데미에게 ‘빛’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현명한 어머니가 될 것을 결심한다. 에이미는 대고모님이 물려주신 대저택을 학교로 만들어 ‘빛’을 전달하고자 한다. 조는 여주인공은 반드시 죽거나 결혼해야만 하는 당대의 코드를 무너뜨리는 “주인공인 여자가 죽지도 결혼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공표한다. 원작에서 대저택을 물려받아 학교를 세우고 베어 교수와 결혼하면서 작가의 길을 그만두게 되는 ‘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올컷이 원작에서 조를 베어 교수와 결혼하도록 만든 것은 로리와 조의 결혼을 고대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림과 동시에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여주인공은 반드시 결혼에 이르러야 한다는 결말을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성홍열을 앓은 뒤 심장이 약해진 '베스(정우연, 왼쪽)'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뉴욕에서 작가 생활을 하다 돌아온 '조(최유하)'는 자신의 "양심이자 천사"인 베스를 결코 놓을 수 없음을 토로한다./사진=위클래식

원작에서 조는 “글 쓰는 독신녀”를 자신의 미래로 내세우며 “펜을 배우자로, 쓴 이야기를 자녀로 생각하는 작가”로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올컷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은 조의 결심은 결혼과 함께 ‘가정’과 ‘학교’라는 길로 선회한다.

20세기 페미니스트들은 이 점에 유감을 표했고, 로리와 조의 결합을 원했던 팬들은 실망했지만 올컷의 자서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매티슨은 ‘작은 아씨들’이 시대를 넘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치 가(家)의 자매들이 과거에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실제로 얻지는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배우를 꿈꿨던 메그는 새로운 가정의 어머니로서 자리하고, 파리에서 화가로 살아가기를 꿈꿨던 에이미는 로리와 결혼에 이른다. 베스는 죽음에 이르고 조는 작가로서 성공을 이루는 대신 교육에 헌신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로리 역시 자신의 재능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한다.

올컷의 소설은 모든 젊은이들이 자신이 어릴 적 꿈꾸던 바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의무와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유를 갈망하고 “자신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숙에 이르게 된다는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보여준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대고모님과 함께 유럽으로 떠난 '에이미(박란주)'는 화가가 되기에는 재능이 부족함을 인식하고 부유한 프레드와 약혼할 결심을 하지만 로리와 우연히 만나게 된 뒤 잃어버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의 ‘꿈’과 자신의 ‘길’을 찾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추지만 어린 시절의 꿈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의 실패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메그는 존과의 결혼을 인정하지 못하는 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꿈과 내 꿈이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너에게 정답인 것이 모두에게 정답인 것도 아니야. 나는 내 집과 내 가족을 갖고 싶을 뿐이야. 그게 어디든 나는 신나게 싸워나갈 거야.”

언니가 떠나는 게 싫을 뿐이고 어린 시절이 끝난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조에게 메그가 말한다.

“어린 시절은 어떻게든 끝나게 되어 있잖아!”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메그(소정화)'는 "한 남자의 마음을 차지하는 기적이 돈보다 훨씬 가치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풍족하지 않은 생활을 할 것을 알면서도 '존 브룩(김우진)'과의 결혼을 선택한다./사진=위클래식

자신의 재능을 탐험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어린 시절은 언젠가 끝에 이르기 마련이다. 붙잡고 싶어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놓쳐버리고 마는 어린 시절의 아련함은 로베르트 슈만의 ‘어린이 정경’의 곡들로 의미를 더한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리는 음악이자 “어른들을 위한 한 어른의 생각”이라고 슈만이 말했던 13곡으로 구성된 ‘어린이 정경’에서 연극 ‘작은 아씨들’이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곡은 총 9곡이다. 클라라와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 꿈꾸며 행복한 미래를 그리던 슈만의 감성과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선율로 구성된 곡들은 올컷이 평가한 자신의 소설의 특성과 닮아있다.

마치 가(家)의 응접실은 네 자매 중 한 인물이 집을 떠날 때마다 그들 각자를 상징하던 공간에 흰 천을 드리운다. 쓸쓸하고 차갑게 비어가는 공간은 잊혀져가는 추억과도 같고, 미래로 인해 사라져가는 과거와도 같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 자매의 에피소드 사이로 ‘땡’하는 벨소리와 함께 조명이 비춰지면서 특정 인물의 ‘인터뷰’ 차례가 주어지는 구성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는 가운데 당시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심리 상담과도 같은 느낌을 더한다.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사진=위클래식
연극 '작은 아씨들' 공연 장면. 원작에서 에이미는 '베스(홍지희, 가운데)'의 임종을 보지 못하지만 연극 '작은 아씨들'은 베스가 매일 상상하던 “이 집이 다시 시끄러워지는 순간”을 극의 마지막에 배치한다./사진=위클래식

관객들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의 삶 속에 그들과 유사한 경험이나 생각을 품었던 때를 떠올린다. 누군가와 동일시하고 그 인물만을 응원하기 보다는 모든 인물 각자의 속내와 일치하는 감정, 느낌, 혹은 기억을 떠올리게 될 때, 자매들의 어린 시절은 더 이상 오래 된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 나의 추억이 된다.

영국의 시인 찰스 스웨인은 “집은 애정이 소환되는 곳”이고 “마음이 세운 신전으로 채워진다”고 노래한다.

“마음이 피어나는 곳”인 마치 가(家)의 응접실은 관객들을 각자 마음의 ‘집’으로 데려간다. 아련함, 향수, 따뜻함, 그리움,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 관객들의 마음은 미세스 마치의 말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된다.

나의 길, 나의 선택,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연극 ‘작은 아씨들’은 ‘촛불’이 되어 잊혀진 모든 것을 비춘다. ‘집’을 향한 향수는 순수함으로의 회귀,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한 미래의 다짐을 이끈다.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 네이버TV '위클래식' 채널 공연 실황 온라인.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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