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30년 만에 통기타 잡은 명MC 임백천 "뮤직비디오도 찍었죠"
[인터뷰365] 30년 만에 통기타 잡은 명MC 임백천 "뮤직비디오도 찍었죠"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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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 대학가요제 출신...1990년대 히트곡 '마음에 쓰는 편지' 인기
- 국내 최연소 전문 MC출신...40여년간 MC맹활약
- 30년 만에 4집 발표...시인 윤동주 시 모티브로 한 '새로운 길', '커피송' 등 수록
MC 겸 가수 임백천. MC로 활약하던 그가 30년만에 4집 앨범을 내놓았다.
MC 겸 가수 임백천. MC로 활약하던 그가 30년만에 4집 앨범 '새로운 길'을 내놓았다.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방송가 명 MC로 손꼽히는 임백천이 통기타를 들었다. 방송 진행자로 친근하지만 그는 사실 1978년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3집까지 낸 가수다. 현재도 명곡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음에 쓰는 편지'(1990)는 그의 대표곡이다. 

가수 데뷔와 동시에 방송 진행자로 두각을 보인 임백천은 1990년대 방송가를 주름잡으며 스타MC로 군림했다. '특종TV연예', '슈퍼선데이', '연예가중계' 등 당대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진행 뿐 아니라, '임백천의 뮤직쇼', '임백천의 골든팝스' 등 라디오 DJ로도 친숙한 이름이다. 

편안한 진행과 뛰어난 말솜씨로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프로그램과 라디오 진행을 맡으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가슴 한편엔 품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를 다시 통기타로 이끌었다. 

30년 만에 낸 4집 앨범 '새로운 길'에는 못다 한 그의 노래들이 담겨있다. 시인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길'을 비롯, ‘커피송’, '사랑한단 말없어도', '희망' 등 5곡이 수록됐다.  

가수 임백천을 KBS라디오 '임백천의 백 뮤직' 방송이 끝난 직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만났다. 

30년만의 새 앨범...MC에서 가수로 복귀 

- 1991년 '사랑할 수 없는 슬픔' 이후 30년 만에 내놓은 정규 앨범이다. '가수'로 돌아온 소감은.  

"늘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방송MC와 라디오DJ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시간이 벌써 30년이나 흘렀다. 더 나이가 들어 힘 빠지기 전에 앨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틈틈이 곡 작업을 하고 있던 중 낙원상가의 수십 년 된 단골 기타점에서 '사랑과 평화' 곡을 부르신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유지연 선배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러면서 앨범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이번 앨범에 프로듀서뿐 아니라 작사와 작곡, 편곡, 기타 연주까지 참여해주셨다." 

- 가수로 데뷔했으니, 어떻게 보면 '본업'에 복귀한 셈이다.

"수십 년 MC를 했으니 MC로 불리고는 있지만, 첫출발은 대학가요제였으니 가수가 맞긴 하다. 첫 앨범을 1980년에 국내에서 제일 큰 레코드 레이블이었던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했다. 제 자작곡도 있었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고(故) 장덕이 중학생 때 만든 곡도 수록됐다."

KBS '불후의 명곡'에서 '서울서울서울'을 열창하는 MC 겸 가수 임백천.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멋진 밴드와 무대에 오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 버킷리스트를 이뤘다"고 말했다. /사진=KBS

- 최근 KBS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전설의 명 MC특집'에 출연해 후배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시 "지켜보기만 해던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떨라고 감격스러웠다"며 뭉클함을 전했다. 

"그 프로에 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어서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겐 꿈의 무대였지만, 처음 섭외가 왔을 때는 거절했다. 나는 '전설'도 아니었고, 앨범을 낸지도 얼마 안 된 상황이어서 더 부담스러웠다. 운 좋게 우승까지 하게 되어서 굉장히 고마웠다."

- 당시 부른 곡이 가수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이었다. 록 스타일의 무대가 의외였다.  

"나는 포크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통기타는 전기 사운드가 아니라 나무로 된 통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다. 그 점이 좋아서 어렸을 때부터 통기타만 쳤다. 그래서 통기타 음악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밴드와 함께 록음악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도전이었다. 멋진 밴드와 무대에 오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 버킷리스트를 이뤘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무대였다." 

- 오랜만의 앨범 작업은 어땠나. 

"힘들었다. 연습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연습을 아무리 해도 녹음실에서 녹음이 시작되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노래도 생각만큼 안 되고, 요즘 트렌드에 맞는 건가 고민도 됐다. 그 와중에 여름엔 코로나까지 걸려서 이틀을 심하게 앓기도 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 4집 앨범을 낸 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

"'새로운 길'과 '커피송' 반응이 좋다. 이 나이에 뮤직비디오를 찍는다는 게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제 '커피송'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12월 중순쯤 공개될 예정이다. 쇼케이스도 마련했다. 저와 함께 했던 밴드들과 같이 무대에 오른다. 1,2부로 나눠서 토크콘서트와 신곡 발표를 한다. 오는 15일 홍대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개최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방역 조치에 따라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새 앨범 내고 할 건 다 하는 거다. 하하. 방송에서 소개하는 입장에만 있다가 내가 노래하는 주체가 되어 뮤직비디오도 찍고 쇼케이스도 하다니 힘들지만 행복하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4집 앨범에 수록된 '새로운 길'은 윤동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곡이다. 새로운 도전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행로와도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그는 "새로운 길은 도전하는 제 마음 상태일 수도 있고, 모두가 힘든데 노력 분발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는 그런 느낌으로 불렀다. 요즘 모두가 힘든 시대에 위로를 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새로운 길'도 그렇고 '커피송'도 편안하면서도 힐링을 주는 곡이다.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을 가지고 작곡가들이 다양한 곡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 곡이야말로 시어에 가장 적합한 멜로디와 편곡이 아닐까 생각한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불러도 좋은 곡이지만, 허스키하게 불러도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이 곡이 유명해지면 많은 가수들의 목소리로 불려졌으면 한다." 

- 리메이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 건가.

"희망한다. 많이 불러줄수록 좋다. '마음에 쓰는 편지'도 R&B 가수 문명진 씨와 '옥상달빛'이 부르기도 했다. 수많은 노래들이 있는데, 후배 가수들이 선배 가수의 곡을 리메이크해준다는 건 영광이다. 후배 가수와의 콜라보 작업도 좋다." 

- 타이틀곡 '커피송'은 어떤 곡인가. 한국어와 함께 영어 버전도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데.

"'커피송'은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해 / 내게 주어진 시간들 얼마나 감사한지 / 진한 커피향에 내 마음 덩달아 행복해지는 순간...'이런 가사다. 마스크 없이 커피 한잔하며 수다 떨고 술 한잔 마시고 살았던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 몰랐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대이니, 세상이 영화처럼 되어 버렸다. 노래로나마 힐링을 드리고 싶었다."  

- 기성 가수들의 신곡 무대를 볼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쉬움도 있을 텐데.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굉장히 많은 반면, 가수들이 신곡이나 히트곡을 부를 만한 무대나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방송국으로서는 직무유기라고 본다. 젊은 친구들 역시 살인적인 경쟁률을 뚫고 가수가 됐는데 설 무대가 없으니 답답할 거다. 방송사도 수익성만 쫒지 말고 그런 프로를 만들어야 한다.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만들면 방송사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돈이 따라오지 않겠는가. 

특히 유튜브나 1인 방송을 하는 젊은 가수들에 비해 중견가수들의 입지는 굉장히 없다. 그래서 가수들도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예술을 업그레이드해 사람들로 하여금 찾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대중문화의 주역은 10~20대다. 물론 우리도 그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자신들이 주역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감각이나 스타일을 시대에 맞춰서 자꾸 '버전업'을 시켜야 한다. 제 음악 역시 포크음악이긴 하지만, 들어보면 가야금과 플루겔혼 연주도 있다. 코드 진행이나 편곡 등에 최신 트렌드를 녹이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잡은 기타...배철수, 노사연, 심수봉 '대학가요제' 동기

MC 겸 가수 임백천. MC로 활약하던 그가 30년만에 4집 앨범을 내놓았다.
MC 겸 가수 임백천 

-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키웠는가.

"사실 대학가요제를 나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기타를 쳤다.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니 잘하는 줄 알았다. 어디 가서 기타를 치면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재수할 때 대학가요제 소식을 접했는데, 대학생만 가능하다길래 부랴부랴 공부해서 대학을 갔다." 

- 그러면 대학가요제에 참석하기 위해 대학을 간 건가? (임백천은 1978년 2회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고영선 함께 참가한 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 말도 맞는 얘기다. 하하. 내가 2회 출신인데, 경쟁률이 880대 1이었다. 나가면 대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기타 좀 친다는 애들은 다 나왔다. 그래서 2회 때 스타들이 많이 배출됐다. 그 당시 배철수, 노사연, 심수봉이 나왔다.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현역 아닌가." 

- 가수로 데뷔했지만 MC로 더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MC로 '전향'한 계기가 있었나. 

"노래보다는 전문 MC가 내 적성에 잘 맞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내가 경쟁해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잘하는 것을 죽을 때까지 한번 해보자 했던 게 전문 MC였다." 

- MC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 1학년 때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후 2학년 때 TV와 라디오에서 MC를 맡게 됐다. 아마 1979년도 당시 국내 최연소 전문 MC였을 거다. 그 때가 20살 정도였으니까. 이듬해 첫 앨범을 내고 대학 4학년 때까지 방송을 했다. 졸업 후엔 전공(건축학)을 살려 6년 가까이 건설사에서 일을 하다 전문 MC가 되고 싶어서 회사를 나왔는데, 나를 써주는 곳이 없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게 노래였다. 내 정체성을 보여주고 이름이 알려지면 MC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절실한 마음에 두 번째 앨범을 내게 됐는데, 그 때 발매한 곡이 '마음에 쓰는 편지'(1990)였다. 그 곡이 히트를 쳤다. 이를 발판으로 전문 MC로 입문할 수 있었다."

- '특종TV연예', '슈퍼선데이', '연예가중계' 등 1990년대 당시 유명 예능프로그램 MC를 도맡아했다. TV를 틀기만 하면 나왔던 기억이 난다.

"수도꼭지 같았다. 하하. MBC '특종TV연예'라는 프로를 맡으면서 진행자로 고공행진을 하게 됐다. ('특종TV연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한데, 임백천이 데뷔 무대 당시 MC를 맡았다.) 1990년대 당시 맡고 있던 프로가 많았다. 굉장히 열심히 방송을 했다. 요즘 방송에서는 제게 '90년대 유재석'이란 표현도 하더라. 

40여 년간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결

- 말솜씨 비결이 궁금하다.

"들어보면 주어 동사 목적어를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진행자로서의 첫 번째 조건이 정확한 발음 발성이다. 말을 할 때 잘 들려야 한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한다'식으로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런 훈련을 나름대로 많이 했다." 

- 현재도 KBS라디오 '임백천의 백 뮤직'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기간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스타 마인드'가 아니라 '스태프 마인드'로 일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스타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진행자는 스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공기반, 소리반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되, 꼭 있어야 하는 역할이 좋은 진행자라고 생각해왔다. 

스타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고, 스타인 척 살고 싶지도 않다. 지금도 지하철을 즐겨 탄다. 빠르고 편하고 걸을 수도 있고. 직업은 연예인이지만, 내 생활은 분리한다. 재미 삼아 가늘고 길게 살자는 말을 하곤 하지만, 지금까지 스태프 마인드로 일한 게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TV에서 여섯일곱 살 어린이가 이선희 씨의 노래를 자유자재로 부르더라. 노래든, 연기자든 지금도 끊임없이 스타들이 나온다. 어디 가서 노래 잘한다고 잘난 척할 이유가 없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연예계는 부침이 심한 동네 아닌가. 지금도 이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게 굉장히 기적 같은 일이고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

- 연기 활동도 해왔다. SBS시트콤 '똑바로 살아라'(2002), KBS '달콤한 비밀'(2014), 영화 '복수혈전'(1992), '라디오 스타'(2006) 등에도 출연했다. 최근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가2'에서 깜짝 출연해 능청스런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연기에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조연이나 카메오로 출연하며 연기는 쭉 해왔던 것 같다. 지난 30여 년간 사실 노래와 비교하면 연기를 더 많이 했다. '발연기'지만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할 생각이 있다. 

평소 연기 공부를 위해 영화를 많이 본다. 한 이틀에 세 편 정도 본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하지 않나. 장르 관계없이 최신 영화 위주로 본다. 영화를 보면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다."

- 늘 트렌드를 고민하는 것 같다. 

"문화 쪽에 일하는 사람이 '꼰대' 의식을 가지면 안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젊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시대 트렌드에 맞춰가야 젊은 감각을 잃지 않는다. 나 역시 트렌드를 이끌 수는 없지만,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아이가 부모에게 "'생파'할 때 '생선'은 뭘로 줄 거야?"라고 물어보는데 "생파는 뭐고, 생선은 뭐니"라고 하면 대화가 안된다. "국어가 망가지니 그런 말 쓰면 못써"라고 하면 소위 '꼰대'가 되는거다. 물론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말처럼 경륜이나 경험치는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면 '뒷방'신세가 되는 거다. 젊은 층에 맞춰나가야 한다." 

스타 MC부부..."아내 김연주, 굉장히 현명하고 용기있는 사람"

MC 겸 가수 임백천. MC로 활약하던 그가 30년만에 4집 앨범을 내놓았다.

- 동료 MC 출신인 아내 김연주(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 씨의 얘기를 안 들어볼 수가 없다. 당시 스타MC커플의 결혼 소식은 큰 화제였다.  

"당시에 "왜 김연주가?" 아내가 너무 아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하." 

- 그 말에 상처 받지 않았나.

"전혀. 당시 아내가 톱스타였고, 나보다 나이도 8살이나 어렸다. 결혼 후엔 아내가 육아 문제로 경력 단절이 되어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미국에 머무르며 애들도 키웠다. 아들이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3년 만에 졸업해 지금 군대에 있다. 아내는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토론배틀에 나가 대변인단에 들어갔다. 용기 있는 행동이다" 

- 아내가 '토론배틀'에 나간다는 말에 어떤 반응이었나.(김연주 부대변인은 지난 7월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 배틀에 참여해 3위로 국민의힘 대변인단에 합류했다.)

"나도 아들도 적극 찬성했다. 아내는 굉장히 현명한 사람이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응원했다. 사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올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여성 참가자 중 아내가 제일 나이가 많더라. 아내는 열심히 준비해서 대변인단에 합류했고, 현실 정치에도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책도 내고 박사 학위도 받았다." 

-본인도 정계 입문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들었다.  

"두 번 국회의원 출마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잘할 자신도 없고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요즘엔 연예인을 공인(公人)이라고들 하지만, 인기와 돈, 명예를 추구하는 사인(私人)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공인 의식은 필요하다. 연예인은 공적인 책무가 있지만, 나라의 녹을 먹으며 공적인 일을 하는 공인은 아니라고 본다."

-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는데. 말다툼도 하나.  

"연예인이라고 해서 부부의 삶은 다르지 않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똑같다. 말다툼하면서 제가 이긴 적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투지 않는다. 우린 소소한 스타일에서부터 언행이나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얼굴 붉힌 적이 없다.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우리가 1993년에 결혼했으니 결혼한 지 28년 됐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올해 음반을 발매했으니, 올해 우리 모두 참 열심히 산 것 같다." 

- 새해 계획이 있다면.

"몇십 년전부터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오늘 방송이 마지막 방송이라는 생각으로 유쾌하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 시도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더 늦게 전에 한 달 정도 트레킹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내와 함께라면 더 좋겠지만, 시간이 안된다면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라도 좋겠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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