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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라이브러리</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link>
			<description>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copyright>Copyright (c) www.interview365.com All rights reserved</copyright>
			<lastBuildDate>2026-09-04 16:46:26</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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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101' 숫자와 관련된 영화, 김희애의 '101번째의 프로포즈' (101)</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500</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영화 제목에는 종종 숫자들이 쓰이곤 한다. 101번째 칼럼을 맞아 &#39;101&#39;이란 숫자를 떠올리면, 대표적으로 한국영화로는 1993년 &#39;101번째의 프로포즈&#39;와 1996년 글렌 크클루즈 주연의 &#39;101마리 달마시안&#39;이 있다. &#39;101마리 달마시안&#39;은 2마리의 큰 달마시안과 99마리의 강아지가 나오는 영화로, 앞서 1961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으며 2000년에는 속편 격인 &#39;102 달마시안&#39;도 나왔다. 1993년 오석근 감독의 &#39;101번째의 프로포즈&#39;는 노총각 문성근과 첼리스트 김희애와의 결혼행진곡을 그린 작품이다. 소심하고 숫기 없는 만년계장 구영섭(문성근)은 99번이나 선을 보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노총각인 영섭은 100번째 선에서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첼리스트 정원 (김희애)을 만나게 된다. 정원도 순수한 마음에 끌리지만 약혼자의 그늘에 벗어나지 못하여 번]]></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1-02-16 15:50:59</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우리 영화의 고전 '춘향전'의 경쟁 과열과 동시 개봉 (100)</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397</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사에서 한 치의 양보가 없던 &#39;춘향전 열전&#39;을 떠올리면 4&middot;19 학생의거의 격랑을 거치면서 당시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양대산맥인 홍성기 감독과 신상옥 감독이 각각 자신의 안방마님을 동원해 만든 &#39;춘향&#39;이 있다. 1961년 당시 홍성기 감독은 김지미를 내세운 &#39;춘향전&#39;에 뉴 페이스 신귀식을 몽룡 역으로 캐스팅했다. 방자 역은 노련한 김동원이, 향단 역은 양미희가 출연했다. 영화는 1월 18일 설날 명절을 노리며 을지로 4가 국도극장과 광화문 네거리 국제극장에 동시 상영의 팡파르를 울렸다.그리고 10일 후인 1월 28일, 신상옥 감독이 최은희를 발탁한 &#39;성춘향&#39;이 충무로 3가 명보극장에서 후발주자로 상영됐다. 동시 상영한 &#39;춘향전&#39;은 1월 25일에 이미 국제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상태여서, 홀가분한 경쟁을 치를 수 있었다. 춘향 역의 최은희를 위시해 몽룡 역의]]></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1-01-28 14:44:27</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겨울의 상징 '눈'을 나타낸 우리영화 (99)</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325</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겨울의 빈객(賓客)은 뭐니 뭐니 해도 눈과 얼음일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 눈을 타이틀로 내세운 영화는 1958년 &#39;눈물의 여왕&#39; 전옥 원작을 하한수 감독이 연출한 &#39;눈나리는 밤&#39;이다.생활고로 두 아들을 버리다가 형사에게 붙잡혀 감옥을 가고 헤어진 아들(최명수)이 검사가 되어 기구한 사연으로 살인범이 된 어머니를 취조하나, 변호사가 된 양부의 변론으로 무죄가 되어 해후한다는 신파물이다. 이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하 감독은 &#39;자장가&#39;와 &#39;목포의 눈물&#39;을 연이어 내놓았다.11년이 지난 후 하 감독의 1969년 리메이크 작에서는 김진규, 조미령, 이순재 그리고 전편에서 아편쟁이로 나온 허장강이 출연해 연기자의 관록을 보여줬다. 1958년 &#39;초설&#39;은 당시 뉴페이스 김지미가 데뷔작 &#39;황혼열차&#39;와 &#39;장미는 슬프다&#39;에 이어 세 번째로 출연한 영화다.이외에도 눈을 상]]></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1-01-21 11:11:06</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모녀' 배우가 동반 출연한 영화(98)</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227</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아들이 배우로 활약하는 &#39;부전자전 배우&#39;는 많으나 같은 영화에 공연한 영화는 비교적 드문 편이다. 특히 &#39;모전여전 배우&#39;로 활동하며 엄마와 딸이 함께 나온 작품은 더욱 희귀하다. 유현목 감독은 1956년 데뷔작 &#39;교차로&#39;에 이어 &#39;유전의 애수&#39;를 끝내고 새로운 작품을 찾던 중 1957년 유두연 시나리오인 &#39;잃어버린 청춘&#39;을 읽게 된다.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 유 감독은 최무룡을 주인공으로 선정하고 대본을 읽어보도록 했는데, 최무룡은 흡족해하며 영화 제작까지 참여했다. 영화는 어둡고 우울한 6&middot;25전쟁 후 서울의 변두리에서 셋방비도 못 낸 가난한 전기공(최무룡)이 돈 때문에 뜻하지 않게 살인을 하게 되고 과실치사로 쫓기면서 다방에서 일하는 정애(이경희)의 설득으로 자수하는 청춘상을 그렸다.최무룡은 대본에도 없는 장모(전옥)와 처(강효]]></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1-01-12 16:46:35</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신축년 '소'를 주제로 한 영화 (97)</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158</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신축년 소띠의 해를 맞았다. 신축년 원단의 화두로 열자(列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39;우공이산(愚公移山)&#39;이란 고사성어를 꼽고 싶다. &#39;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진다&#39;는 뜻으로, 성실하고 우직한 소가 떠오르는 말이다. 우리 영화에서 소를 주인공으로 했거나 소를 타이틀로 붙인 영화들은 10여 편이 있다. 특히 국내 대표적인 소띠 배우를 꼽자면 2018년 세상을 떠난 &#39;영화계의 전설&#39; 신성일 배우가 있다. 그는 1978년 영화 &#39;세종대왕&#39;에서 소띠인 세종대왕 역을 훌륭히 연기해 더욱 의미가 깊다. 1967년 이규웅 감독의 &#39;성난 송아지&#39;는 1958년 상영한 꼬마스타 마이켈 레니 주연의 미국 영화 &#39;눈물 어린 포옹&#39;의 스토리와 비슷하다. 홀어머니(김지미)와 가난하게 사는 정남(김용연)은 고리대금업자 허생원(허장강)에게 빚을 지고 유일한 재산인 송아지를 빼앗긴다.]]></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1-01-06 17:10:41</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서민의 보금자리 '반지하방'을 담은 영화 (96)</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052</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 연구가 = 우리 영화 100년 사를 결산한 2019년 봉준호 감독의 &#39;기생충&#39;의 출발은 &#39;반지하방&#39;이었다.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백수 가족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들어가면서 두 가족의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와국어상)의 영예를 안았다. &#39;땅 위&#39;로 올라가고픈 염원은 웃음, 공포, 슬픔을 둘러싼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전혀 다른 두 가족에게 예측 불허의 상황들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39;21세기 가족 희비극 오디세이&#39;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반지하방은 1970년대 남북 간의 긴장 속 전쟁 발발의 가능성에 대비해 새로 짓는 주택마다 방공호로 활용하기 시작해 1980년대 부터 생활이 넉넉지 못한 이들의 주거 터전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반지하]]></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2-28 17:48:29</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대한제국 명성황후를 연기한 영화 속의 여배우 (95)</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7005</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 101년 사를 통해 역사 시대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시기는 구한말 고종과 민비 그리고 대원군과 배정자의 4각 구도의 인물로 얽키고설킨 풍운의 대한제국일 것이다.그 시절을 배경으로 제작한 최초의 영화는 1926년 &#39;아리랑&#39;을 발표한 춘사 나운규가 선보인 1932년 무성영화 &#39;개화당이문&#39;이다.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의 &#39;3일 천하&#39;를 내용으로 사대파와 개화파의 갈등을 그린다. 일제강점기 속에서 은연 중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을 나타냈는데, 민비는 고종에 가려 배역이 없었다.명성황후 민비는 조선왕조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왕비이자 추존 왕비이다. 인현왕후의 생부인 민유중의 후손으로 아명은 자영이다. 1851년 11월 17일생으로 1895년 10월 8일 43세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본격적으로 민비 역을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은 1959년 재일]]></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2-22 19:44:44</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어린시절과 청춘시대를 연기한 배우들 (94)</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906</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소년&middot;소녀시절 당시 인기 배우와 멋모르게 영화를 찍었던 아역 배우들이 청년이 된 후 이들과 재회해 다시 호흡을 맞춘 사례들이 꽤 있다. 영화 &#39;황진이&#39;의 조긍하 감독이 1957년 메가폰을 잡은 &#39;가거라 슬픔이여&#39;는 6&middot;25 전쟁으로 혼란한 사회상 속에서 부모를 잃고 고생하는 어린 소녀의 눈물 어린 고행을 그린 멜로물이었다. 소녀 역을 맡은 김영옥은 당시 10세였다. 김영옥이 부산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국제시장과 광복동 골목을 누비는 껌팔이 소녀의 모습에 스태프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제가를 만든 박시춘 작곡가는 영화에 감동한 나머지 슬픔을 참으며 창작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영화에서 소녀는 엄마(최은희)가 폐병으로 죽자 할머니품에서 자란다.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껌팔이를 하던 소녀는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이고, 병원에 싣고 간 중년 신사는 소녀가 간직한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자신의 친]]></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2-15 14:28:51</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영화주제가와 함께 출연한 최무룡 (93)</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802</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1950년대와 60년대 올드팬들은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수려한 외모의 배우 최무룡(1928~1999)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찍이 KBS 라디오 성우 출신으로, 신협의 연극 &#39;햄릿&#39;의 주연으로 활약하다 1954년 &#39;탁류&#39;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39;젊은 그들&#39;, &#39;유전의 애수&#39;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1958년 유현목 감독의 &#39;잃어버린 청춘&#39;에서 명연기를 선보이면서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39;나뭇잎이 푸르던 날에/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끝없이 퍼져나간/젊은 꿈이 아름다워&#39;최무룡은 &#39;하숙생&#39;의 김석야 작가의 라디오 드라마 최초 작품인 &#39;꿈은 사라지고&#39;를 영화화한 동명작품에서 손석우 작곡의 주제가를 불러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영화 중 최초로 권투 장면이 등장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39;꿈은 사라지고&#39;]]></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2-07 18:55:40</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본명과 예명, 두 개의 이름으로 활동한 영화감독 (92)</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740</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영화감독 중 본명 이외에도 예명으로 활동한 이들이 있는데, 두 번이나 이름을 개명한 권녕순 감독(본명 권영계)이 대표적이다. 권 감독은 영화계에서 두주불사로 정평이 나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오로지 영화 콘티에만 집착하는 호방한 성품이었다. 필자와 동향인 안동 출신 감독이기도 하다. 1923년생으로 일본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엘리트였던 그는 해박한 지식과 실력으로 당대 영화인의 &#39;리딩 히터&#39;로도 활약했다. 본명 권영계로 활동하던 그는 해방 후 1949년 윤용규 감독의 &#39;마음의 고향&#39;의 연출부 기록을 담당하며 감독으로의 꿈을 키웠다. 6&middot;25 전쟁으로 3년 간의 공백을 깨고 1956년 역사극 &#39;옥단춘&#39;으로 정식 메가폰을 잡은 그는 &#39;나는 너를 싫어한다&#39;와 &#39;오해마세요&#39;에서는 권녕향으로 개명했다.이후 1958년에 또다시 권녕순으로 개명한 그는 희극 영화 &#39;5부]]></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1-30 14:16:51</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총각'과 '처녀'를 지칭한 우리 영화 순례 (91)</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654</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사에서 선남선녀를 가리키는 &#39;총각&#39;과 &#39;처녀&#39;를 지칭한 영화는 의외로 많다. 사전적 의미의 총각은 상투를 틀지 않은 남자란 뜻으로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말하며, 처녀는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로 낭자와 처자로도 일컫는 말이다.우리 영화에 처음으로 이 제목이 붙은 영화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상영된 신경균 감독의 &#39;처녀도&#39;다. 목장에 휴양차 내려왔다가 목장주인 딸과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청순가련한 김신재와 김경이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당시 세트 촬영장에서 벗어나 서울 근교의 한 목장에서 연기를 펼쳐 보였다고 한다.8&middot;15해방과 6&middot;25전쟁을 겪은 후인 1956년에는 유치진 원작의 &#39;별&#39;을 영화화한 &#39;처녀별&#39;이 상영됐다. 당파 싸움에 희생된 아버지의 원한을 복수하는 내용의 한국판 &#39;로미오 줄리엣&#39;으로, 남장여인]]></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1-21 22:43:20</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동일한 세 단어로 조합된 영화 타이틀 (90)</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596</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 100년 사를 통해 수많은 작품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살려 내건 타이틀은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일한 세 단어를 중복해 타이틀로 내세운 영화는 극히 희소하다. 같은 세 단어를 엮어 제목을 선보인 영화는 1968년 김기영 유현목 정진우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39;여여여&#39;가 있다. 이 영화 제목이 공개되었을 당시엔 왜 하필 여자를 지칭하는 &#39;계집녀(女)&#39;가 세 번이나 붙여 나열하느냐는 조롱이 있기도 했지만, 3명의 예술파 감독이 연출한 유명세로 감히 논란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6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 신성일을 놓고 정진우 감독의 &#39;시정(詩情)&#39;에서는 문희가, 유현목 감독의 &#39;환상&#39;에서는 김지미, 김기영 감독의 &#39;의식&#39;에서는 최은희가 호흡을 맞췄다. 영화는 머리카락을 테마로, 가발 공장을 거쳐 6&middot;25 전쟁으로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가발을 돌려]]></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1-12 19:33:17</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자매가 출연한 한국영화(89)</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522</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한국영화 100년 사에 걸쳐 자매가 영화에 출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그동안 고전적인 배우만을 선호하는 대중성에서 탈피해 1957년 &#39;황혼열차&#39;로 데뷔한 서구적 이미지의 김지미의 등장은 스크린을 새롭게 채색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김지미는 &#39;별아 내 가슴에&#39;와 &#39;산 넘어 바다 건너&#39;의 인기를 몰고 1958년 홍성기 감독과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결혼식에 참석한 교복 입은 김지미의 여동생 김지애를 청첩인 전택이 배우가 눈여겨 보았다.전택이는 이듬해 김말봉 원작 &#39;푸른 날개&#39;를 감독하게 되고, 영화 기획으로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부인 노경희 스타와 숙의해 그녀를 배우로 픽업했다. 이 작품은 청년 교사를 사이에 둔 여류 피아니스트와 중년 여인과의 삼각관계를 그린 통속극으로, 극 속 김지애는 여류 피아니스트로 출연했다. 영화는 졸속 선전과 중량감 있는 남배우의 부재로 박재란이 부른 &#39;]]></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1-07 00:14:47</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우리나라 영화계의 형제 감독(88)</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437</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 100년사에서 &#39;토오키(talkie, 유성영화)&#39;기술은 획기적인 위업으로 꼽힌다. 이 기술을 개발해 16년간의 무성영화 시대를 마감하고 1935년 본격적인 발성영화 시대를 개척한 이필우와 이명우 형제를 잊을 수 없다.일찍이 형제의 부친은 구리개(지금의 을지로 입구)에서 시계포를 운영하며 점포명을 &#39;이필우 시계포&#39;로 달았는데, 이필우와 다섯 살 아래 동생인 이명우를 남겨 놓고 1904년 세상을 떠났다. 형제는 환등기와 일제 활동사진기를 만지고 외국영화를 보며 영사기사와 촬영기사의 꿈을 키웠다.형 이필우는 1920년 무성영화 &#39;지기&#39;와 1926년 &#39;장한몽&#39;을 찍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촬영기사가 된다. 동생 이명우도 1927년 &#39;운명&#39;으로 촬영을 맡아 영화계의 형제로 등극하게 된다.두 형제는 1935년 동생이 감독하고 형이 촬영과 녹음 및 현상을 담당해 10월 3일 단성사에서]]></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0-29 16:45:02</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 OO부인'으로 호칭한 여성 영화 (87)</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357</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한국영화 100년 사를 통해 여성을 호칭하는 &#39;부인&#39;을 영화 제목에 붙인 영화는 27편으로, 속편과 리메이크 그리고 시리즈까지 더하면 46편에 이른다.이전까지 미망인과 선생님, 여사로만 불리다가 본격적으로 부인이란 호칭이 알려진 계기는 1956년 정비석 원작의 신문소설을 영화화한 한형모 감독의 &#39;자유부인&#39;으로, 선풍적 인기를 모으면서 효시가 됐다.극 중 뉴 페이스 김정림이 대학교수 부인 선영 역을 맡았는데, 선영은 이웃집 청년(이민)에게 춤을 배우며 따분한 대학교수 남편에서 벗어나 춤바람으로 가정파탄을 일으키지만, 남편의 관용으로 개과천선 하는 스토리다. 당시 사회적 파문의 후유증은 &#39;자유부인&#39;이란 유행어를 낳기도 했으며, 이후 김지미, 윤정희, 고두심까지 6편이 리메이크됐다.&#39;부인&#39; 호칭이 붙은 타이틀 중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는 1982년 정인엽 감독이 무명의 안소영을 타이틀롤로]]></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0-20 11:06:10</pubDate>
			</item>
			<item>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가황 나훈아의 영화 인생 (86)</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292</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39;가황&#39; 나훈아가 최근 방송된 &#39;2020년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39;에서 2006년 이후 14년 간의 은둔(?)에서 벗어나 2시간 40분 동안 자신의 히트곡 29곡을 부르며 무대를 휘어잡았다. 나훈아는 1966년 &#39;천리길&#39;로 데뷔해 3년 간의 무명가수로 지내다 1968년 &#39;사랑은 눈물의 씨앗&#39;으로 명성을 날렸다. 나훈아가 본격적으로 영화배우로 스크린에 선보인 작품은 1971년 정진우 감독이 직접 제작을 겸한 &#39;풋사랑&#39;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1967년 &#39;형수&#39;로 데뷔한 라이벌 남진이 37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청춘스타 신성일 다음 가는 &#39;노래하는 스타&#39;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때까지 나훈아는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평소 나훈아의 야생적인 모습을 눈여겨봤던 정진우 감독은 나훈아를 &#39;미워도 다시 한번&#39; 4편격인 대완결편에서 &#]]></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10-13 18:45:39</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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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가장 치열했던 추석 영화의 경쟁 (85)</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185</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명절 추석 극장 무대에 미친개 두 마리만 올려놓아도 손님이 꽉 찬다."&#39;영화의 메카&#39; 충무로에서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이런 우스개 말이 한 때 통용됐던 적이 있다.50년 전 만해도 한국 최대 명절인 음력 설날과 한가위는 영화 제작자나 외국 영화 수입업자들에게 1년 장사를 노리는 골든 타임이었다. 58년 전 추석이었던 1962년 9월 13일, 그해 추석 시즌 극장가는 사극물 전성기였다. 1962년 2월 세계적인 화제작 &#39;벤허&#39;가 대한극장에서 70㎜ 대형 화면으로 상영하며 장장 7개월 간 흥행을 휩쓸었다. 그 와중에 6월 10일 화폐 개혁이 단행되면서 600환 하던 관람료는 60원으로 평가절하 되었지만, &#39;벤허&#39;의 인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39;벤허&#39;의 흥행으로 사극물이 전국을 강타하자 한양대학교 계열 한양영화공사는 재빨리 당시 3000만 원이란 거액을 투입해 &#39;진시황제와 만리장성&#39;을]]></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09-30 01:26:06</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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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악기' 명칭이 타이틀인 영화 (84)</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136</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우리 영화 100년 사에서 음악의 동반자, 악기를 넣어 지어진 영화 제목들이 있다. 영화에서 이 악기들은 생활 전선의 도구로 그려지면서 기구한 인생역정을 겪은 1960년대 춥고 배고픈 지난 시절을 담아내곤 했다. 1963년 강찬우 감독은 이민자와 엄앵란 주연의 멜로물 &#39;피리 불던 모녀고개&#39;로 당시 일명 &#39;고무신 관객&#39;으로 폄하됐던 여성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해 전국적인 흥행을 하자, 이듬해인 1964년에는 &#39;모녀키타&#39;를 내놓았다.필자가 군인이었던 당시 휴가를 나와 남대문 시장안에 위치한 자유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는데, 엄마(이민자)가 기타를 연주하고 딸(태현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모녀는 "정처 없이 하염없이 뜬 구름 따라 굽이 굽이 흘러온 길 아득하구나"며 징용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기구한 사연을 노래로 협연한다. 1958년 &#39;모정&#39;의 시나리오 작가 조진구가 작사]]></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09-24 14:42:27</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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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식모 3형제'와 '이복 3형제' (83)</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6023</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한국 영화 1세기에 숱한 영화들이 저마다의 타이틀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흥행에 도전한 에피소드는 천일야화를 무색할 정도다.영화 타이틀에서 보통 형제나 자매를 지칭하는 2인칭 제목은 많았다. 그러나 50~60년대 제목에는 그 숫자가 크게 늘었다. 산아 제한이 없던 그 당시 자식은 &#39;다다익선(?)의 상징&#39;이 아니었을까?1958년 작곡가 박시춘이 감독한 &#39;딸 7형제&#39;가 최다 타이틀이었으나 1964년 임권택 감독의 &#39;10자매 선생&#39;이 이 기록을 깨트렸다. 1962년에는 엄앵란이 막내 공주로 출연한 &#39;7공주&#39;가 선보이기도 했다. 1969년 김화랑 감독은 &#39;식모 3형제&#39;를 선보였는데, 6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인기를 떨쳤던 &#39;흑맥&#39;의 문희, &#39;유정&#39;의 남정임, 그리고 문예영화 &#39;갯마을&#39;로 독보적인 청순미를 보인 고은아가 합세해 60년대 말 사]]></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09-16 13:41:27</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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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모든 군인상을 다룬 이만희 감독 (82)</title>
			<link>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95952</link>
			<description><![CDATA[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원로스타 신영균이 스크린에서 육&middot;해&middot;공, 그리고 해병대의 군인상을 연기하며 제복 입은 늠름한 모습을 각인시켰다면,([관련기사] ▶모든 군인상과 인민군을 연기한 신영균) 이만희 감독은 51편의 영화 중 11편을 전쟁 영화와 함께했다.이 감독은 6&middot;25 전쟁 중 통신 부대에서 암호병으로 근무했는데, 함께 복무했던 방송인 송해, 편거영 감독과 영화계에서 재회했다. 그는 1975년 4월 13일 44세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당신은 포탄 속을 묵묵히 포복하는 병사들 편이었고 좌절을 알면서도 인간의 길을 가는 연인들 편이었고 그리고 폭력이 미워 강한 힘을 길러야 했던 젊은이의 편이었다"는 이 감독의 묘비명에 써진 글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이 감독의 출세작은 그의 여섯번째 영화인 &#39;돌아오지 않는 해병&#39;(1963)이다. 당시 타이틀이 문제가 되었는데, &#39;돌아오지 않는 해병&#39;이라면 모두 죽]]></description>
			<author>정종화 영화연구가</author>
			<pubDate>2020-09-09 15:33:59</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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