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7인의 여성을 상징한 '럭키 7' 타이틀의 영화 (69)

- 한국 영화 최초의 합동 결혼식을 담은 영화 '딸7형제' - 일곱번째 딸의 구국혼을 담은 '7공주' - 트로이카 여배우의 불꽃 튀는 스케줄 전쟁 '7인의 숙녀'

2020-05-29     정종화 영화연구가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행운을 상징하는 '7'은 '럭키 세븐'으로 통칭되는 숫자로 일곱 명의 여성을 상징하는 영화 타이틀로 사용되곤 했다. 

1955년 상영된 '7인의 신부'는 남자 형제만 일곱인 집안을 배경으로 장남을 제외한 6명의 형제들이 납치해온 아가씨와 정이 들어 결혼하는 라스트 신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1962년에는 율브리너 주연의 '황야의 7인'이 총잡이 건맨들의 남성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 영화에서 처음으로 '7'의 숫자를 넣어 영화화한 작품은 1958년 '딸 7형제'다. '신라의 달밤'과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작곡한 박시춘이 제작과 감독은 물론 영화음악까지 맡았다. 영화에서 김승호는 구두 수선으로 홀로 딸들을 키우다 6·25 전쟁으로 피난을 간 부산에서 아들만 일곱 있는 친구 이종철을 만나게 되고, 장성하면 한번 사돈을 맺자는 언약이 세월이 흘러 현실로 된다는 스토리다.

김승호의 딸로 출연한 박시춘 작곡가의 아내 김연을 위시해,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의 꾀꼬리 가수 백설희와 영화배우 이민자, 이빈화, 조향랑, 도리화, 이옥주가 나와 풍성한 볼거리를 자아냈다. 이종철의 아들로는 큰 아들 최봉을 필두로 황해, 김희갑 ,구봉서와 가수 박경원, 도미 ,박응수가 저마다의 색깔로 스크린을 수놓았다. 특히 황해와 백설희는 진짜 부부로 이채를 띠었다.

(사진

'장희빈'으로 사극 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구축한 정창화 감독은 1962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음모를 그린 '7공주'를 내놓았다.

딸만 여섯인 신라왕(김승호)은 왕후(주증녀)가 또 딸을 낳자 대노한 끝에 핏덩어리인 제7공주를 신하에게 내다 버리라고 명한다. '7공주'로는 60년대 초 기라성 같은 여배우인 문정숙과 이빈화, 전계현, 방성자, 차유미, 김명희와 엄앵란이 출연해 연기의 경염을 보여주었다. 7공주의 막내, 엄앵란은 충신으로 등장하는 변기종-황정순 부부의 손에 무사히 자라 애인(신영균)과 함께 악당(허장강) 일당의 흉계로 위기에 처한 왕가를 구한다는 옥화공주의 구국혼을 펼쳐 보였다. 

1970년대는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충무로의 풍운 삼국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불꽃 뛰는 연기 각축을 벌였다. 

이형표 감독은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출연하는 '7인의 숙녀'로 매스컴의 큰 주목을 받았다. 거미줄처럼 얽힌 이들의 스케줄을 빼내기 위해 태창영화사 김태수 사장은 우선적으로 '7인의 숙녀' 촬영 스케줄을 내놓는 여배우에게 유현목 감독의 '분례기'의 타이틀 롤인 '똥례'로 낙점하겠다고 밝혔는데, 세 명의 여배우는 매너저를 통해 불꽃 튀는 로비로 점입가경을 이루기도 했다. 

1971년 국도극장 신정 프로로 확정된 '7인의 숙녀'는 이들의 스케줄과 청춘스타 신성일까지 합세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촬영을 마치 군사작전처럼 감행했다. 3명의 트로이카 여배우를 위시해, 전양자, 김창숙과 가수 이영숙, 신숙으로 엮어진 촬영 현장은 여배우를 보려는 구경꾼으로 40일간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영화

1965년 이만희 감독의 '7인의 여포로'는 반공 영화로 내놓았으나 검열에 만신창이가 되어 제목마저 '돌아온 여군'으로 변경됐던 군사시절의 수난도 있었다.   

1976년 김수형 감독은 '7인의 말괄량이'로 여대생의 꿈과 우애를 그렸으며, 2011년 '써니'는 7공주파 여고생 강소라, 민효린, 심은경, 김민영, 김보미, 남보라, 박진주를 통해 21세기 신세대의 맥을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