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 감독과 배우의 형제애 (67)

- 형제 영화인 이장호 감독과 동생 이영호 배우 - '어제 내린 비',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복 형제 스토리 - 은행 강도의 비극적 종말을 그린 파행적 연출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 1970년대 고도성장 속에서 전개되는 서울 변두리 엘리지 '바람불어 좋은날' - 영화 '낮은 대로 임하소서', 형 이장호 감독의 연출력과 동생 이영호 배우의 연기혼

2020-05-14     정종화 영화연구가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한국 영화 100년사에서 형제 영화인인 감독과 배우를 살펴보면, 세 번이나 '유관순'을 연출한 윤봉춘 감독과 동생 윤상희 연기자, 청년 문화의 상징 '바보들의 행진'의 하길종 감독과 하명중 스타가 있다. 하명중은 후에 '땡볕'을 내놓아 감독으로 변신했다.

이번에 다룰 이장호 감독과 동생 이영호 역시 극적인 영화 인생을 산 대표적인 형제 영화인이다. 이장호 감독은 당시 학생이었던 이영호의 등록금으로 최인호 소설인 '별들의 고향'의 영화화권을 입수했는데, 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해준 수훈갑이었던 셈이다. 

'별들의 고향'으로 1974년 서울 국도극장에서 48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작품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대박을 친 이장호 감독은 이 상승세를 몰아 두 번째 영화 역시 최인호 작가의 '어제 내린 비'를 선택했다. 그는 영화 속 이복형제 역할로 형 김희라와 연기에는 생소했던 동생 이영호를 과감히 기용해 배우로 출연시켰다.

이 감독의 적절한 연기 지도와 동생 이영호의 감각적 순발력은 주효했다. '어제 내린비'는 가수 윤형주의 감성어린 주제가와 함께 한 여자를 사랑 하는 비극적인 이복 형제의 어긋난 사랑을 보여줬다. 형과 놀아난 여인(안인숙)을 차에 싣고 격분을 참치 못해 질주하는 동생(이영호)의 라스트 신은 선열한 여운을 남겼다. 

이후 뜻하지 않게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이장호 감독은 3년간 영화 활동을 못했고, 프랑스 문화원을 전전하며 낭인으로(?) 보내면서 영화 연출을 기다렸다. 1979년 풀려난 그가 연출한 영화는 직접 시나리오까지 쓴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였다.

이종배(박일)와 문도석(이영호)은 교도소 동창생이다. 둘은 은행을 털면서 점차 강도 행각에 빠져 급기야 살인 행각도 서슴지 않는다. 이 감독은 마치 3년간의 연출 휴면기 동안 응집된 집념을 훌훌 털어내려는 듯 두 사람의 반사회적 행각을 스크린에 화인시켰다.

은행 강도 행각과 경찰에 쫓겨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설정은 당시 너무 충격적이고 반사회적인 묘사라 하여 영화 검열에서 10분이나 삭제됐다. 만신창이가 된 영화는 상영을 못하고 있다가 3년 후 개봉했지만 평가 절하를 받았다. 동생 영호도 은행 강도 역과는 외모와 연기력에 부합되지 못한 미스캐스트였다.

이장호

심기일전한 이 감독은 최일남 원작 '우리들의 넝쿨'을 1979년 '바람 불어 좋은날'로 내놓아 격찬을 받았다.

중국집 배달원 덕배(안성기), 보조 이발사 길남(이영호), 여관 종업원(김성찬) 등 가난한 시골에서 상경한 3명의 청년을 통해 70년대 고속성장의 서울 변두리의 풍속도를 펼쳐 보인 이 감독의 연출력은 프랑스 영화 '목로주점'을 능가하는 리얼리즘의 개가였다.

특히 이 영화는 아역 영화로 인기를 끌다가 성장기 이후 10년간 영화 공백기에 있던 국민배우 안성기를 성인 배우로 각광을 받게 해준 풍향계가 되었다. 안성기는 중국집 배달원의 연기를 익히기 위해 5일간 중국집에서 기거했다. 그는 말까지 더듬으며 어눌하게 연기한 보람을 이장호 감독 연출력의 힘이었음을 자랑으로 여겼다.

유지인·김보연·임예진의 당시 내로라할 여배우들의 출연, 그리고 1955년 우리나라 최초의 키스 신인 '운명의 손'의 이향 원로 연기자의 깜짝 출연도 일품이다. '전원일기'의 회장 최불암의 신흥 졸부 연기도 인상 깊다.

'당신의 육체적 고통은 신의 영원한 저주인가?'

이 감독의 영화 '낮은 대로 임하소서'에서는 아버지가 목사(신성일)인 요한(이영호)은 신학 대학에 입학했다가 휴학하고 미군 부대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위해 서둘러 결혼한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병마인 눈의 실명으로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지만 그때 찬란한 빛의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경이로운 체험을 한다.

그는 서울역 근처에서 구두닦이 소년과 함께 기거하며 전도와 자활에 힘쓴다. 뉴욕의 헬렌 켈러 재단의 후원으로 맹인학교를 운영해 교회를 개척하며 낮은 자리에서 봉사와 선교로 몸을 바친다. 이 영화에서 영원한 청춘스타 신성일과 국민배우 안성기가 출연했으나, 함께 공연한 장면은 없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