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김금분 시인의 ‘고추장’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추장 / 김금분
사는 게 어줍짢고 메슥거릴 때
매운 고추장 한 숟가락 썩썩 비벼보아라
혓바닥을 점령하라
땡볕에 약이 오른 고추들
툭툭 꺾어서 듬뿍 찍어먹어라
눈물 콧물 다 쏟아라
혀를 내두르거나 아무 바닥에나 문질러대고 싶을 때
헤헤 휘저어라, 물 먹은 자루처럼
침이 흐르는 낭떠러지를 지나
광활한 바람을 맞받아치게 하라
덥썩 깨물었다가 매운맛을 보고야 마는
모든 끝이 뾰족한 이유를 적어라
만만한 맛이 어디 있더냐
그렇게 한 판 거는 거다
- '강으로 향하는 문' (푸른사상, 2021)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이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합니다. 35년 넘게 시를 써온 김금분 시인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과 외로움,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1955년 춘천에서 태어난 김금분 시인은 1990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며 '화법전환', '사랑, 한 통화도 안 되는 거리', '외로움이 아깝다', '강으로 향하는 문', '아름다운 립스틱, 저녁놀' 등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공동 수필집 '바람의 뿌리' 등에 참여하며 오랜 시간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국민포장(國民褒章)을 수훈하고 여성가족부장관상, 한국예총공로상, 강원문학상, 강원여성문학상 대상 등을 받은 그는 창작 활동과 함께 지역의 문학과 문화예술을 가꾸는 일에도 오랫동안 힘써왔습니다. 김유정문학촌장과 강원예총 수석부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원도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사)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김유정의 문학 정신을 이어가고 지역 문학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금분 시인의 작품에는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쉽게 물러서지 않는 힘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사랑과 외로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바라보는가 하면, 자연과 역사 속에 남겨진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특히 김금분 시인의 '고추장'은 일상적인 소재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만만한 맛이 어디 있더냐 / 그렇게 한 판 거는 거다”라는 마지막 구절에서는 삶의 쉽지 않은 순간마저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시인의 시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문학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는 시인. 김금분 시인의 작품에는 오랜 시간 삶을 바라보며 얻은 따뜻한 시선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그의 시에서 또 어떤 사람과 풍경, 어떤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