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소녀의 편지

2026-08-13     김지수 칼럼니스트

소녀의 편지/ 김지수

오빠야 잘 있나
아부지 어무이도
건강하시고?

내는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배가 아파가 잠깐 쉬면서

아프니까
가족이 더 보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

송충이보다 더 징그러운
일본군놈 들어오기 전에
얼른 써야 된다

가족들이 억수로 보고 싶다
하얀 쌀밥이 죽도로 먹고 싶다
한글을 배워 내 마음을 술술 쓰고 싶다

머리로 쓰는 편지가 아니라
종이에 쓰는 편지니까

내는 못가도 편지는 우리 집에 갈끼다

내는 가지 못해도
편지는 집에 갈 수 있을끼고
가족들은 편지를 내 보듯
눈물로 반가워해 줄끼다

머리 뜯겨 단발이라도
얼굴 맞아 멍들었어도
배가 불러 남산이라도

- 캘리그라피 특별전 '우리는 기억합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2023)

아픔은 시간이 지나며 무디어질 수 있어도,
슬픈 역사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쪽의 시선에 머물지 않는
수평적인 기록이 필요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또다시 반복됩니다.

반성과 함께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