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희진, 나이 잊은 관록의 '벚꽃동산'...40년 만에 다시 맡은 '라네프스카야'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 제11회 늘푸른연극제 선정 연극인 배우 장희진 출연 - 라네프스카야의 우아함과 나약함, 슬픔 섬세하게 표현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제11회 늘푸른연극제 선정 연극인 배우 장희진의 ‘벚꽃동산’(안톤 체홉 작, 주요철 연출)을 7월 31일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씨어터 202에서 관람했다.
82세의 장희진 배우는 50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아름답고 우아했다.
평소에도 젊고 건강해 보였지만 무대에 선 그의 자태에서 배우의 나이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최은희 대배우가 이모인 장희진 배우는 안양예고 교사로 재직 중 길명일 연출의 부조리 연극 ‘대왕 죽어가다’에 왕비 역으로 무대에 섰고, 극단 신협 배우와 배우극장 대표(1978~1988)로도 활동했다. 1982년 ‘노녀들의 발톱’으로 제19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이후 TV드라마와 영화 등 매체에서 개성적인 캐릭터를 맡아왔다.
장희진 주연의 이번 ‘벚꽃동산’은 그동안 보아왔던 고전적인 사실주의 연극과 많이 달랐다.
연출가 주요철은 프로그램북의 연출의 글에서 “전통극의 공연 개념에서 벗어나 표현주의와 극장주의의 미학적 공연 양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무대를 표현했다”고 밝혔다. 절제된 대사와 퍼포먼스, 음악의 선율, 몸동작으로 내재적 완성미도 추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몇 년간 안톤 체홉의 마지막 희곡 ‘벚꽃동산’을 여러 연출가 버전으로 관람하고 리뷰를 썼다.
기억나는 연출가를 꼽자면 이우천(2020), 최영환 김광보(2023), 호주 출신 연출가 사이먼 스톤, 전훈(2024), 문삼화(2025) 그리고 올해 주요철이었다.
주요철 버전의 특징은 무대미술(임창주)과 장치였다.
여러 무대에서 벚꽃동산을 특징 있게 디자인했지만 이번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벚나무 등걸을 중심으로 만개한 벚꽃을 표현했다. 특히 2막 야외장면에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동산에서 꽃잎이 날리는 장면이 멋졌다.
원형 거울과 스크린도 설치해 영상도 보여줬다. 연출은 ”시간적 이중성과 심리적 동시성“을 강조했는데, 첫 장면 로빠한이 원형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라스트에 스크린에 벚꽃동산이 불타는 모습을 보는 로빠한의 연기가 특이하기는 했다.
두 번째는 연기파 배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몰락해 가는 귀족 라네프스카야 장희진을 비롯해 오빠 가예프 역에 이승철. 하인 피루스 역에 여무영, 이웃 빠쉬크 역에 이봉규, 농노의 아들로 벚꽃동산을 인수한 신흥재벌 로빠한 역 배상돈, 큰딸 바라 역 이제신, 작은딸 아냐 역 서지유, 만년 대학생 빼쨔 역에 서태성, 하인 두냐샤와 집시여인 역에 최임경 등이 출연했다.
배우들은 물고 물리는 감정 연기보다는 캐릭터 특징을 살리는 연기를 보였다.
세 번째는 필자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안톤 체홉의 작품에 체홉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출은 체홉 원작에서 주요한 대사와 장면들을 선택적으로 보여주었다. 막간의 경계도 없애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캐릭터의 특징만 살려내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변화하는 시대상이나 귀족의 장원에서 풍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찾기 힘들었다.
여러 장면을 생략한 대신 둘째 딸 아냐와 가정교사 빼쨔의 2인극을 통해 사랑과 미래, 변화와 희망을 보여주려고 했다.
표현주의와 극장주의 미학을 모색했다고 하는데 어떤 배우의 연기는 사실주의에 가까웠고, 특히 이 연극에서 돋보인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최경희)은 고전적인 멋을 풍겼다.
라네프스카야 역 장희진, 딸 아냐 역 서지유, 로빠한 역 배상돈의 의상 변화는 볼거리였다.
네 번째 특징은 무대 전체의 조화와 배우들의 움직임이 조명(김종호)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미장셴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2막 동산의 미장셴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벚꽃이 휘날리는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인간의 모습이 왠지 슬퍼보였다.
3막과 4막을 이어붙여 속도감을 낸 점은 이해됐으나 경매 소식을 기다리는 라네프스카야의 불안과 초조함을 춤과 음악으로만 표현한 점이 필자는 좀 와닿지 않았다. 4막 로빠한의 광란 연기도 기대만큼 폭발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딸 아냐(서지유)를 통해 라네프스카야(장희진)가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그려낸 연출은 공감이 갔다.
필자는 40여 년 전 장희진 배우가 했던 ‘벚꽃동산’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이번 무대에서 본 라네프스카야 장희진 배우의 연륜과 관록에서 풍기는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관객의 시선을 끄는 에너지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