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오마주 서평 ③] 맨땅에 지도를 그리는 법
[출판하는 동생들이, 출판하는 언니들에게] -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 - '목수책방' 대표 전은정 편 - '비평연대' 이솔림·배희주가 띄우는 헌사
각자도생이 당연해진 시대, 1인 출판사를 창업해 십수 년을 버텨온 30년 업력의 대표 다섯 명이 모여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박희선·박숙희·전은정·최지영·이현화, 유유)을 펴냈습니다. 치열하게 자리를 지켜낸 '선배 언니'들을 향해, 현장의 젊은 출판인·비평가 그룹 '비평연대' 10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헌사와 답장을 보냅니다. 책을 평가하는 서평을 넘어, 각 대표에게 두 명의 '동생'이 마음을 전하는 특별 기획 '오마주 서평'을 매주 수요일, 총 5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한 줌의 독자로 숲을 이루는 법/이솔림(위고 편집자·비평연대)
저는 원래 유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트렌드를 좇으라’는 말이 여간 벅찬 게 아닙니다. 독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진정 만들고 싶은 책을 곰곰 떠올리다가도 ‘그곳의 독자는 한 줌’이라는 생각에 혼자 먼저 주춤하고 맙니다. 책은, 팔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나무 목(木)’, ‘물 수(水)’ 자를 붙여 만든 목수책방은 소위 말하는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입니다. 생태와 환경이라는 조용하고 오래된 영역에서 목수책방은 한 평씩 땅을 일구었습니다. 가뭄이 오는 날도 비가 달게 내리는 날도 있었겠지요. 그렇게 흐른 10년, 전은정 선배는 “정말이지 간신히 버텼다”고 말합니다. 그 10년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은정 선배는 정말로 식물을 좋아합니다. 꽃과 나무는 물론이고, 그 식물을 둘러싼 생태계 전체를요.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게 너무 많다”는 말을 보았을 때, 출판은 선배에게 업인 동시에 가장 즐거운 사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식물이라면 그저 내놓고 마음이 뜁니다. 사람 살기도 좁은 집에 세 뼘짜리 상추 텃밭을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출판 일이 힘들 때면 농사가 더 적성에 맞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절대 쉽게 볼 일이 아님을 목수책방의 책들을 통해 알았습니다. 목수책방은 이렇게 현실 감각도 길러줍니다).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면 닮아간다고 하지요. 은정 선배는 식물처럼 책을 만듭니다. 선배가 말하는 ‘식물’은 “스스로 자신의 먹을 것을 만들어 사는 ‘독립영양’ 생물”입니다. 자기가 뿌리 내린 자리에서 직접 양분을 만들지요. 내가 먹을 만큼만 풍족하게 만들고 그것이 곧 생태계 전체를 살립니다. 기획을 하다 보면 자꾸 숫자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떤 책은 처음부터 지는 싸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목수책방의 책들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어떤 책은 적은 수의 독자를 정확하게 만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좌충우돌 저연차 편집자인 저에게 은정 선배가 맨땅에서 일궈낸 이야기는 다정한 양분입니다. 그 양분을 받아 오래오래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고민도 불안도 있지만 대체로 즐거운 출판인으로요. 압도적인 판매가 보이지는 않아도, 내가 좋아서 만든 이야기라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겠지요. 독자가 와글와글 모여들었다는 곳에 어설프게 뛰어들지 않더라도요.
그러니 이제는 저도 조금 더 자신 있게 믿어보려 합니다. 안 팔릴 것 같지만, 팔리고 있다고. 이런 책은 정말로, 필요한 독자를 끝내 만나고야 만다고요.
■ 맨땅에 다시 지도를 그리는 법/배희주(프런트페이지 마케터·비평연대)
많은 사람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한 권의 책이 되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 출판계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도 많아 눈물도 났지만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그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었고, 아직도 매번 새 책의 판권면에 제 이름이 인쇄된 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입 때는 지금 연차까지 쌓이면 이 맨땅에도 익숙한 길이 생기고, 저도 어려움 없이 책을 팔고 나름 멋있을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니 연차가 쌓일수록 출판 일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아집니다. 여전히 지도 한 장 없이 걷는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아진다고 해야 할까요. 10년 뒤에는 제가 출판계에 있을까요?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제가 책을 덜 사랑하게 될까 봐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이런 걱정으로 길을 잃을 것만 같던 때 마침 은정 선배의 글을 만나게 됐습니다. 읽는 내내 선배가 그려온 지도를 따라가며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어요. 이리저리 부딪히며 만들어간 길이 결코 잘못된 길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말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나중에 보면 땅을 다지는 과정이었구나 싶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이죠. 그래서 저도 다시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출판 마케터이기 전에 독자로서 제가 책을 왜 사랑했고, 이 일을 하고 싶었는지, 이 마음을 오래오래 잃어버리지 말고 간직하며 나아가고 싶습니다.
길을 잃을 것 같을 때마다 은정 선배가 그려온 지도를 펼쳐보겠습니다. 저도 “종이책의 역할이 아직 있다고 믿고 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늘’ 이 일을 계속해 보겠습니다. 선배가 걸어온 길처럼 제 길도 누군가에게 지도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선배님처럼 한 걸음씩 또 걸어가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