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오마주 서평 ①] 담장을 우아하게 뛰어넘는 법
[출판하는 동생들이, 출판하는 언니들에게] -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 - '가지' 대표 박희선 편 - '비평연대' 박소진·맹준혁이 띄우는 헌사
각자도생이 당연해진 시대, 1인 출판사를 창업해 십수 년을 버텨온 30년 업력의 대표 다섯 명이 모여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박희선·박숙희·전은정·최지영·이현화, 유유)을 펴냈습니다. 치열하게 자리를 지켜낸 '선배 언니'들을 향해, 현장의 젊은 출판인·비평가 그룹 '비평연대' 10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헌사와 답장을 보냅니다. 책을 평가하는 서평을 넘어, 각 대표에게 두 명의 '동생'이 마음을 전하는 특별 기획 '오마주 서평'을 매주 수요일, 총 5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아, 일단 기어오르자 / 박소진(책과삶 편집자, 비평연대)
고백하자면 저는 출판 일 하는 ‘언니’ ‘오빠’가 미웠습니다. 그들은 제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이 호시절이던 때의 기억을요. 신입 편집자 시절, 안 나가는 책도 기본 몇천 부씩 찍었다는 언니와 전국 서점에 책을 실어 나를 트럭이 인쇄소 앞에 줄을 섰다는 오빠의 이야기는 썩 멋졌지만 마음 깊이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초판을 1,000부 찍을지 1,500부 찍을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기획서를 쓸 때부터 (이번에도) 손익분기를 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시대에 사는데요. “요새 출판 옛날 같지 않다” “출판 진짜 망할 것 같다”는 말들에도 부아가 났습니다.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언니 오빠들은 10년 안팎이면 그만두실 거면서, 진짜 망한 업계를 감당하는 건 우리들 몫 아닌가, 나는 앞으로 못해도 30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그런 볼멘소리가 늘 입안에 거치적거렸습니다.
희선 언니의 이야기를 읽기 전에도 저는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출판이 좋았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 들려주는 또 하나의 공감하지 못할 무용담은 아닐까, 조금 삐딱하게요. 그런데 잡지사 기자로 일하며 쌓아온 모든 것을 내던진 다음, 마흔 살에 생초짜 편집자로 한 회사에 입사하며 시작된 출판 이야기는 제가 예상한 것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고작(잠재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젊음 하나를 담보로 맡겼을 뿐인 저는 민망해졌어요.
잡지사 기자에서 늦깎이 편집자로 직업을 바꾼 순간을 언니는 ‘담장 기어오르기’라고 덤덤하게 쓰셨을 뿐이지만, 저는 언니가 뛰어넘은 그 담장이 어릴 적 놀이터 빨리 가려고 훌쩍 타 넘었던 두 뼘짜리 담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대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나요. 담장 너머가 꽃밭일지, 바다일지, 낭떠러지일지 알지도 못하면서요.
그 담장을 기어오르고, 뛰어넘을 수 있었던 힘이 궁금했습니다. 책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그 선택을 설명해 주는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몹쓸 낭만”. 진짜 세련되지도 않고 쓸데없이 거창하고 엄청 멋쩍은 표현이지만, 저는 그걸 사랑이라고 고쳐 부르고 싶습니다. 이게 아니면 겨우 1,500여 명 남짓 사고 말 뿐인 이야기를 위해, 그 순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던져 책을 만드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사랑은 내 것을 죄다 털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항복’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녁이 있는 평일, 떼돈을 벌어다 주는 대형 프로젝트,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과 눈 돌아가게 좋은 복지,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두꺼운 원고지와 교정펜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자리를 내주고 마는 것도 항복이고, 사랑이겠지요. 키우는 강아지에게 좋아하는 계란 노른자와 야채의 아삭한 부분을 양보하고, 머리맡을 빼앗긴 채 불편하게 잠드는 것처럼요.
희선 언니는 잡지사 기자로서 쌓은 것을 내주며 항복했고, 저는 다른 ‘망할 걱정 없는’ 업계에서 커리어를 키워 나갈 미래 대신 곡소리 나는 출판업계에 젊음을 쏟으며 항복했습니다. 모양은 달라도 우리는 책과 출판을 사랑한 나머지 저마다 다른 형태의 백기를 내밀었던 셈입니다. 이 공통점을 보고 나니 그동안 눈, 귀 닫고 보려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언니’ ‘오빠’의 백기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동안 미워했던 ‘언니’ ‘오빠’들의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동료 편집자나 마케터와는 자주 이야기하지만 출판하는 언니, 오빠들과는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과 나의 가장 큰 접점이 이 사랑, “몹쓸 낭만”에 있다는 걸 느낄 새도 없었지요. 이 애 같은 미움은, 언니 오빠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만 이해하면 눈 녹듯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빛깔로 작은 발자국을 새기며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누군가”가 이렇게나 많이 계셨군요. 무정한 건 저였고, 제 눈에만 우리가 달라 보였던 겁니다.
희선 언니의 글을 읽고 나니 제가 품고 있던 ‘출판이 망할지도 모르는 세대의 출판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두 가지 측면에서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첫째, 출판하는 ‘동지’들의 압도적 물량을 글에서 확인했습니다. 세대와 형태를 막론하고 이렇게 백기를 든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출판은 쉽게 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망하지 않도록 서로서로 책을 사 읽어 줍시다. 둘째, 망하면 또 어떤가요. 희선 언니가 그랬듯 저 역시 너머가 보이지 않는 담장이라도 붙잡고 기어오르면 될 텐데요. 희선 언니는 출판이란 담장을 뛰어넘기 전에도 숱한 담장을 뛰어넘어 왔겠지요. 제 앞에도 담장이 여러 개 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멀리 치워두고 우선은 내 눈앞의 담장부터 기어오르렵니다. 담장 너머가 낭떠러지인지 바다인지 불안해하며 자꾸 들여다보는 대신 일단 좀 이 벽을 올라가 봐야겠어요. 저 역시 우아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원래 담장 넘기는 우아함보다는 기세로 밀어붙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언니처럼 씩씩하게는 해보겠습니다.
■ 모두 파이팅입니다 /맹준혁(위즈덤하우스 편집자·비평연대)
“많은 출판인이 그렇겠지만, 나는 일과 삶은 같은 결로 흘러야 하고 혼자여도 우리를 생각하는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 방향과 속도를 지키면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정말 많은 선배와 동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솔직히 제게 이런 태도는 늘 숙제처럼 다가옵니다. 삶의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판이란 업을 지속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니까요. 다만 저는 이 일이 제 삶의 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변에 종종 말하곤 합니다. 단순히 흔히 말하는 ‘워라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출판’이라는 영역을 통해 내가 과연 어느 수준까지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을지 이따금 막막해지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성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실패로 남고 싶지도 않은데, 책을 만드는 일은 늘 확신을 주지 않은 채 그 중간 어딘가를 맴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출판은 더욱 외롭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혼자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작업이 됩니다. 선배가 말한 “함께 있지만 함께할 수는 없는 이런 업무 방식”은 조직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편집자가 마주하는 구조적 고독일 것입니다. 하지만 고독과 막막함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회의감이 밀려올 때, 나를 토닥이며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동력 역시 다름 아닌 ‘동료’입니다.
그렇기에 1인 출판사라는 짙은 고립의 한복판에서 다섯 언니들이 손을 맞잡았다는 사실은 제게 단순한 미담 이상의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각자도생과 무한 경쟁의 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내 책과 남의 책이 함께 잘되기를 바라는 그 ‘이상하고도 다정한’ 연대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불안에 떨지 말고 이 길 위에서 오래오래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책의 서두에 적힌 이 간절한 당부는, 결국 고립감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후배 출판인들을 향한 위로라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누군가는 굳이 그런 걸 생각할 필요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어차피 아무것도 없다고, 혹은 분명 무언가 있다고 말합니다. 당장이라도 업계를 떠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지요. 결국 우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 위의 외로움과 불안을 각자의 방식으로 감당해 내며, 그저 서로가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의지하고 응원을 주고받는 것 아닐까요. 모두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