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거장의 ‘삶’과 ‘음악’을 다루는 어려움...뮤지컬 '베토벤'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 - 2023년 초연작 서사와 음악 전면 재구성해 베토벤 '투쟁'에 집중한 새 버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2020년은 ‘음악의 성인(악성, 樂聖)’으로 불리는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위대한 음악가를 기리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와 음악회, 각종 행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이 기획되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음악평론가 제시카 듀첸은 2019년에 음악학자 리타 스테블린에 의해 제기된 ‘불멸의 연인’에 관한 새로운 증거를 기반으로 한 소설 '이모털(Immortal)'을 2020년에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베토벤-하우스 본 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는 “역사적 정확성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의 매력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놀라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베토벤 사후에 서랍장에서 발견된 두 통의 편지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듀첸은 '파이브 북스'와의 인터뷰에서, 베토벤이 두 동생에게 남긴 청력 상실로 인해 느끼는 극심한 고뇌를 담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와 수신자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열렬한 연애편지 ‘불멸의 연인’ 가운데, 후자의 진상을 밝히는 데 약 200여 년의 세월이 걸렸음을 지적했다.
베토벤이 사랑한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두 후보자인 안토니 브렌타노와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 중 ‘요제피네’와 베토벤의 수년간에 걸친 사랑을 조명한 소설은, 1900년대 사회 속 여성의 지위와 제약, 귀족과 평민에게 적용되는 다른 법 등의 장애로 인한 이별을 다루고 있었다.
듀첸은 요제피네의 언니이자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인 ‘테레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1799년 베토벤의 제자가 된 요제피네와 베토벤의 관계를 조명함에 있어, 요제피네의 후손들을 통해 전해진 베토벤 친필 편지들과 새롭게 발견된 테레제의 편지들로부터 입증된 스테블린의 연구에 근거를 두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2023년에 초연된 미하엘 쿤체 극작/작사, 실베스터 르베이 작곡/오케스트레이션의 뮤지컬 '베토벤; Beethoven Secret'을 새롭게 수정한 뮤지컬 '베토벤'의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2019년, 쿤체와 르베이 콤비는 공동 기자간담회를 통해 베토벤의 원곡을 사용한 ‘인간적인 면모’를 다룬 뮤지컬 창작에 관해 설명하면서, 베토벤의 유명한 두 개의 편지 중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첫 구상은 10년 전이지만 거장의 음악을 다루는 만큼 확신이 필요했다고 말한 두 사람은, 2023년 초연을 앞둔 라운드 인터뷰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차용하기보다는 원곡을 동시대와 연결하려고 했다고 피력했다.
클래식에 익숙한 관객은 뮤지컬에 관심을,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은 클래식에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두 사람은, 유럽에서 ‘신화’적 존재인 베토벤을 좀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곳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안토니 브렌타노를 ‘불멸의 연인’으로 주장한 메이너드 솔로몬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베토벤; Beethoven Secret'은, 예술가의 고뇌와 성장보다 불륜 서사에 집중한 불편함과 기악곡에 가사를 붙인 넘버들이 원곡을 훼손한 듯 느껴지는 어색함으로 인해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부제를 떼고 뮤지컬 '베토벤'으로 새롭게 돌아온 2026년 버전은,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청력을 점점 잃어가는 가운데 느끼는 중압감과 공포 속에서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베토벤의 ‘내면의 투쟁’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더불어 안토니 브렌타노(토니)를 ‘뮤즈’로 설정함으로써, 어둠 속에서 무너져가는 베토벤이 다시 작곡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여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하도록 이끄는 역할로 변경했다.
또 베토벤 원곡의 변주와 편곡 비중을 줄이고 르베이 작곡의 새로운 넘버들을 추가해 베토벤 음악과 하나로 섞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열정’, ‘월광’, ‘비창’, ‘템페스트’, ‘고별’, ‘발트슈타인’과 같이 잘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작품들이 주로 적용된 뮤지컬 넘버들은 피아노 협주곡 3번과 5번 ‘황제’, ‘코리올란 서곡’, 교향곡 3번 ‘에로이카’,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 6번 ‘전원’, 교향곡 9번 ‘합창’, 미사곡 C장조(Op. 86) ‘상투스’ 또한 포함한다.
초연에 비해 베토벤의 원곡을 살리면서도 뮤지컬 노래(넘버)로서 어색하지 않게 기능할 수 있도록 보다 자연스럽게 조화된 느낌이 있다. 느린 템포와 암울한 분위기를 많이 적용한 탓에 여전히 처지는 느낌은 있지만, 베토벤의 원곡에 익숙한 경우 원곡이 어떻게 넘버로 만들어지고 반영되었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베토벤이 이명(耳鳴)과 기이한 소음에 혼란스러워하며 주변 소리를 먹먹하게 듣는 청력 상실의 과정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음향에 반영한 점과,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실제 연주회장의 청중처럼 기능하도록 연출한 점은 흥미롭다.
베토벤 내면의 혼란과 불안, 고독, 두려움을 표현주의 회화나 환상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한 미장센도 인상적이다. 다만 장면 단위로 끊기는 듯한 느낌과 서사가 매끄럽지 않은 측면이 있고, 토니(안토니 브렌타노)와 베토벤의 관계를 ‘친구’라는 단어로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요제피네가 ‘불멸의 연인’이라는 주장과 근거가 훨씬 우위에 서게 되면서,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인 프란츠 브렌타노와 그의 아내 안토니(토니)가 베토벤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프란츠는 예술을 경시하며 ‘돈’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변호사 피초크와 함께 베토벤을 이용해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을 구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실 1810년을 기점으로 한 뮤지컬 '베토벤'의 서사는 전기적 사실과 시간적 배경이 일치되지 않거나 실제와 다른 부분들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뮤지컬에서 토니(안토니)가 제안한 것으로 설정된 실러의 시는 베토벤이 1793년부터 곡을 붙이기로 마음먹고 1811년에 서곡으로 작업할 것을 메모로 남긴 경우에 해당한다.
또 킨스키 공작이 개최한 연주회에서의 소동은 1806년 리히노프스키 공과의 갈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출생의 우연 덕에 귀족이라는 지위를 누리는 후원자를 향해 베토벤이 “앞으로도 공작은 수천 명이 나오겠지만 베토벤이란 사람은 오로지 한 명 밖에 없다”라는 말을 한 것은 리히노프스키 공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였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서 살아간 최초의 음악가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온 것 또한 나폴레옹 전쟁 여파로 인한 연금 지급 중단과 오스트리아 화폐의 가치 하락, 1812년 킨스키 공의 사망 등이 이유였다.
다니엘 슈타이벨트와의 피아노 즉흥연주 대결은 1800년 이후 이루어진 적이 없는데,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의 저서 '왜 베토벤인가'에 따르면, 두 번째 대결을 끝으로 슈타이벨트는 다시는 베토벤과 만나려 하지 않았으며, 베토벤이 참석하지 않는 연주 대결만 수락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베토벤이 처음으로 의사를 찾아가 청력 이상을 확인한 것은 1798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의사에게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했고, 1801년 7월에 이르러 청력의 60퍼센트를 잃었다.
이듬해인 1802년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지만, 2주 후 활기를 되찾아 변주곡 두 곡을 완성했다. 베토벤이 나머지 청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1814년~1816년으로 추정되는데, 1810년 5월에 베토벤은 친구 베겔러에게 “귀속의 악마”로 인한 불행을 언급하면서 자살을 생각한 적 있지만 극복했다는 편지를 보냈다.
음악학자 필리프 A. 오텍시에는 베토벤이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가장 깊숙한 곳밖에는 도움을 청할 데가 없다. 외부에는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라는 글귀를 남긴 것으로도 전한다.
뮤지컬 '베토벤'은 이 글귀와 편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서 언급된 베토벤의 심정들을 넘버의 가사들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생 카스파의 결혼을 반대했던 베토벤이, 1815년 폐결핵으로 사망한 카스파의 아들 카를의 양육권을 두고 제수 요한나와 4년간의 법정 다툼을 벌인 사실을 의식한 듯, 카스파가 죽기 전 형제애를 회복하는 것으로 그린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다고 여기는 베토벤에게 동생 카스파가 형을 많이 사랑했다고 말하는 맥락을 부여하고, 술에 취해 폭력을 행한 아버지로 인해 힘든 삶을 산 형을 안타깝게 여기며 항상 걱정했다는 설정을 더한 뮤지컬은, 베토벤이 카스파와 토니(안토니)로 인해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역경을 딛고 인류애로 나아가게 되는 깨달음의 ‘여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베토벤을 위기로 몰아가는 프란츠와 피초크의 서사를 통해 ‘예술이 권력이나 돈보다 우위에 있다는 믿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을 끝까지 밀고 나간 ‘거인’으로서의 베토벤은 그가 남긴 음악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레브레히트는 베토벤이 “이전의 어떤 음악가보다도 인간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들었”고, 일반 청취자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지점에 멈추지 않고 “더욱더 굴을 파고 들어갔”으며, “이전의 모든 음악을 능가하는 곡을 썼다”라고 평가한다.
레브레히트는 음악가로서 최악의 장애라고 할 수 있는 ‘청력 상실’을 딛고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베토벤의 업적은 독보적이다”라고 단언한다.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베토벤의 음악은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고양을 느끼고, 빠져들며, 귀담아듣고, 놀라움의 탄성이나 깊은 감동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거장의 삶을 그리는 일도, 악기로 연주되어야 할 거장의 음악에 가사를 붙여 뮤지컬 넘버로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거장이 남긴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역시 수차례의 수정과 실패를 딛고 긴 시간 후에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으니, 뮤지컬 '베토벤'의 미래 역시 기대해 봐야 하지 않을까? 8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