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9) 금빛으로 빛나는 읽는 여성의 역사

- 최현미 저 '읽는 여성의 역사'

2026-07-30     천지수 칼럼니스트

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열 아홉 번째 책은 '읽는 여성의 역사'(최현미 저, 어크로스)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읽는 여성의 역사'의 저자 최현미 작가는 여성 읽기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일간지 기자로 출판과 북 리뷰, 문화부 데스크를 거치며 책과 관련된 많은 일을 해왔다. 이 책은 ‘여성들은 언제부터 읽기 시작해, 어떤 시간을 거쳐,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인류의 첫 여성 독자를 발견하고 여성 읽기의 역사 속 중요 인물, 인상적인 장면, 상징적인 사건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 매우 흥미롭다. 지금이야 성별을 구분해서 책 읽기를 금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오랫동안 책과 학문은 권력의 상징이자 수단으로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책 읽는 여성은 위험하다’는 통념 아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의 독서를 금지하고 경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읽기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순간에도 책을 읽어온 여성 독자들은 작가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책이라는 세계의 중심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15세기부터 18세기에는 교황청이 지정한 '금서목록'으로 여성의 읽기와 사유를 차단했고, 여성 지식에 대한 공포를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낸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마녀의 증거 중 하나가 여성의 지식과 비범함이다. 권력자들은 자신들만이 지식을 갖고 통제해야 한다는 자만심, 새로운 지식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성의 능력은 모두 악마의 짓이라고 몰아갔다.

내가 그 시대의 여성이었다면, 마녀사냥 리스트에 꽤 앞번호로 자리하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식이 풍부하거나 비범하지는 않지만, 책을 읽고 얻은 영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이 책을 읽어보세요’라고 정기적으로 알리고 다니니 말이다. 매우 ‘마녀다운’행동이다.

‘도대체 책이 무엇이기에 인간이 목숨까지 거는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화씨 451'의 주인공 몬태그는 책을 찾아 불태우는 것이 직업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질문을 품게 되는 사건이 있다. 책 읽기가 불법이 된 미래사회에서 한 노부인이 집 안 곳곳에 책을 숨겨두고 홀로 탐독하다가 단속반에게 들키게 된다. 그녀는 “하느님의 은혜로 결코 꺼지지 않는 촛불을 켰다”라고 읊조리며 스스로 책더미에 불을 붙여 그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 일을 목격한 몬태그는 그날 이후 노부인의 집에서 몰래 가져온 책을 읽으며 ‘독서라는 저항’의 여정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화씨 451도는 종이가 타기 시작하는 온도라고 한다. 나는 태운다는 것의 의미와 태워도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지식, 사상, 표현의 자유가 응집한 ‘책’은 종이로 만든 물건이지만 정신의 상징이다. 책에 불을 붙이면 타서 재가 되겠지만,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과 접속하고 자신의 우주를 발견하던 열정적인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쌓인 열정은 힘이 세지고, 종종 마술 같은 일로 점화된다.

내 캔버스에 마녀의 장난 같은 마술을 부려보자. 캔버스에 화씨 451도에 태워질 금서(禁書)들을 그린다. 불태워질 운명에 처한 책들이 쌓여있다. 정말 내가 마술을 부릴 줄 아는 마녀라면, 책에 불이 붙는 순간, 불에 타지 않는 금서(金書)로 바꿔버릴 것이다.

금으로 바뀐 책을 보며 권력자들이 앞다투어 달려들면, 책들은 이미 금빛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재들은 날아서 어디로 갔는가? 캔버스를 거꾸로 돌려본다. 나의 눈엔 쌓여있던 책들의 형태가 하트모양으로 보인다. ‘마음Heart’ 태워지지 않는 것은 책 읽기를 사랑한 여성들의 마음이다. 변하지 않는 GOLD같은!

그림의 제목은 ‘Golden Heart’이다. 날아가는 금빛 재를 보니, 문득, 전 세계를 휩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노래 ‘Golden’의 가사가 생각난다.

Oh up, up, up, It’s our moment .You know we are glowing. Gonna be gonna be golden.

우린 위로,위로,위로 올라가. 우리의 순간이야. 우리는 함께 빛나고 있어. 황금처럼 될 거야.

Oh up, up, up, with our voices 영원히 깨질 수 없는 Gonna be gonna be golden.

우린 위로,위로,위로 올라가. 우리의 목소리로 영원히 깨질 수 없는 황금처럼 될 거야.

세계 곳곳에서 독서율이 역대 최저라는 경고가 나온다고 한다. 한국은 가장 심각하게 독서하지 않는 국가로 추락 중이다.

“21세기 초, AI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여성들은 더 많이, 더 깊이, 더 열렬히 읽었다. 여성들은 책의 세계를 떠받친 아틀라스였다.”

먼 훗날 어느 보고서에 쓰이길 바라는 저자의 이러한 염원처럼 k-독서가 날아올라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