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기 고교야구 빛낸 '미평찬가'…전국이 주목한 응원의 품격
[신향식의 365칼럼] - 관중석 함성 넘어 선수들 심장과 하나 돼 - 부담은 용기로, 압박감은 침착함으로 바꾸며 - 선수단·재학생·동문 모두의 '집단 마음치유'로 승화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일부 고교야구 경기에서 부적절한 응원 구호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청주 세광고는 품격 있는 응원 문화로 신문과 방송의 주목을 받았다. 상대를 조롱하는 대신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선수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 중심에는 선수와 재학생, 졸업생, 동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응원가 '미평찬가'가 있었다.
1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결승전. 세광고와 경북고가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경기 내내 야구장은 하나의 거대한 합창장이 됐다. 1,000여 명의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가 한목소리로 '미평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응원석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였고, 목동의 하늘에도 우렁찬 노랫소리가 메아리쳤다. 응원은 졸업생 김낙수(세광고 야구후원회장) 씨가 이끌었다.
이 장면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소개되며 그동안 세광인들만의 노래였던 미평찬가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이날 세광고는 경북고를 6대2로 꺾고 창단 71년 만에 처음으로 청룡기를 품에 안으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모범적인 응원" 신문·방송도 주목
미평찬가는 찬송가 38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의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하고, 가사만 학교법인 세광학원에 맞게 새로 붙인 노래다. 기독교 계열 미션스쿨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1989년 말 학교가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서 서원구 미평동으로 이전하기 전에는 노래 이름이 '대성찬가'였다. 학교 이전 후 지명이 바뀌면서 '미평찬가'로 명칭이 변경됐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미평동에 자리 잡은 이 세상의 빛
굳건하게 싸울지라 청주 세광아
반세기의 전통 위에 세워진 학원
영원히 빛나리
영광 영광 영광 세~광
영광 영광 영광 세~광
영광 영광 영광 세~광
영원히 빛나리”
목동야구장을 울린 미평찬가는 선수들에게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며 긴장을 가라앉히고 자신감과 집중력을 북돋워, 평소 갈고닦은 실력을 온전히 펼치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 미평찬가는 응원석의 함성을 넘어 선수들의 심장과 하나가 되었고, 부담은 용기로, 압박감은 자신감으로 바꾸며 청룡기를 향한 마지막 한 걸음을 밀어준 보이지 않는 열두 번째 선수였을 것이다.
선수들의 심장과 하나 된 미평찬가
노래는 소리이면서 기억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래는 시간을 저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 창고다. 한 소절의 멜로디는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 잊고 살던 교실과 운동장, 친구의 얼굴, 선생님의 목소리까지 한순간에 불러낸다. 미평찬가 역시 그렇다. 세광인들에게 미평찬가는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에 흩어져 있던 추억을 하나로 엮는 '기억의 열쇠'다.
목동야구장을 가득 메운 동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머리가 희어진 선배와 교복을 입은 후배가 한 공간에서 같은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작은 물결처럼 시작된 노랫소리가 관중석을 타고 번져간다. 한 줄, 두 줄, 그리고 수백 명의 목소리가 겹치면서 하나의 거대한 강이 된다. 응원 수건이 바람을 가르고, 선수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그라운드를 바라본다. 마치 야구장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 속 클라이맥스 장면 같다. 노래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에서 피어올라 하늘로 번져간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세광고에서는 교가보다 미평찬가를 더 자주 부른다고 한다. 입학식과 졸업식보다 체육대회와 야구 응원, 각종 학교 행사에서 더 많이 울려 퍼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교가가 학교를 소개하는 노래라면, 미평찬가는 학교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교가가 학교의 역사라면, 미평찬가는 학교의 심장이다.
교가보다 더 자주 울려 퍼지는 응원가
심리학에서도 함께 노래하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여러 사람이 같은 박자와 같은 호흡으로 노래를 부르면 심리적 동조가 일어나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어 있다. 함께 노래하는 과정에서는 스트레스가 줄고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감이 높아지는 효과도 관찰된다. 그래서 군가는 전우애를 만들고, 응원가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으며, 합창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준다. 미평찬가 역시 세광인들에게는 일종의 '집단 마음치유' 역할을 하는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노래가 사람을 과거로만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도 걷게 만든다는 점이다. 목동야구장에서 미평찬가를 들은 선수들은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뒤에는 수십 년 동안 같은 노래를 불러 온 수많은 선배가 있다는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응원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이다.
'미평'은 이제 더 이상 지도 위의 지명이 아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과 우정, 도전과 열정이 켜켜이 쌓인 마음의 고향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다시 열일곱 살이 된다. 운동장 흙냄새가 떠오르고,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잊고 있던 꿈이 다시 가슴을 두드린다.
'응원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깊은 인상
그래서 미평찬가는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다. 상처를 덮어 주는 붕대이고, 선수들의 지친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심폐소생술이며, 흩어진 기억을 다시 이어 붙이는 한 편의 치유 음악이다.
이번 청룡기 우승은 세광고가 트로피 하나만 들어 올린 순간이 아니었다. 미평찬가는 응원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공동체를 움직이는지를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승리의 노래였다. 전국의 야구 팬들에게도 '응원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