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이문재 시인의 ‘남들이 내려올 때 올라갔다’

2026-07-09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산문 ‘남들이 내려올 때 올라갔다’ 중에서 / 이문재

처음부터 끝까지 독학이었다. 사용설명서를 백 번 넘게 읽었고 하루에 만 컷 이상을 찍어댔다.

3년쯤 지나자 '감'이 잡혔다. 하지만 야생화 사진의 진입장벽은 높았다.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이원규만의 사진'이 필요했다. 발상을 전환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사진가들은 산에서 내려온다. 나는 그때 산으로 올라갔다." 안개 속에 피는 꽃을 찍는 일은 야영의 연속이었다. 혹독한 기다림의 나날이었다. 2015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의 '몽유운무화'를 찾는 이들이 생겨났다.

3년 전, 그의 역발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둠을 찍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요즘 밤하늘의 별과 지상의 나무가 한 프레임에 들어가는 '별나무'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야생화보다 훨씬 까다롭다. 반경 40킬로미터 이내에 도시가 없어야 한다. 달이 뜨거나 날이 흐리면 1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한 나무를 3년 이상 지켜봐야 겨우 한 컷이 나온다. 그는 '별나무'를 발견하고 희귀 야생화에 등을 돌렸다. 그의 사진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희귀 꽃 사진은 그 위치가 알려지기 마련이다. 한번 알려지면 훼손된다.

‘남들의 내려올 때 올라갔다’ (난다, 2026)

연기수업과 시 낭독회에서 이문재 시인의 시 ‘봄날’, ‘농담’, ‘혼자의 넓이’ 등을 자주 읽다 보니 언젠가는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북토크 소식을 듣고 능내서점으로 찾아가 시인님을 직접 뵐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빈 철로만이 반겨주는 추억의 능내역을 함께 둘러본 뒤 시인께서 들려주신 시와 인생, 그리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의 시가 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문재 시인(1959~)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생태 시인이자 사유의 시인입니다. 1982년 동인지 ‘시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실을 꾸준히 탐구해 왔습니다. 시를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윤리의 문제로 바라보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상상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대표 시집으로는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혼자의 넓이’ 등이 있습니다. 특히 ‘혼자의 넓이’는 등단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시집으로, 고독과 공동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고 성숙한 시선으로 성찰한 작품입니다. 이 시집으로 제33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근에는 새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를 출간했습니다. 2026년 1월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나온 이 시집은 기후 위기와 생태적 전환의 시대를 성찰하며, 관계의 회복과 문명 전환을 모색하는 시편들을 담담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또한 5월에는 20년 만의 산문집 ‘남들이 내려올 때 올라갔다’(난다)를 펴냈습니다. 이 책에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 93편이 실려 있으며, 문학과 사회, 자연, 공동체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산문집에서 문학적 상상력과 타인에 대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의 마음은 타인의 삶과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문재 시인의 시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며, 자연과 인간, 개인과 공동체를 함께 성찰하게 합니다. 기후 위기와 공동체의 해체가 심화되는 오늘날 그의 시와 산문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서로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며 공존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