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시대를 닮은 예술가의 삶...뮤지컬 ‘렘피카’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아르데코의 여왕’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 삶 그린 뮤지컬 - 제77회 토니 어워즈 3개 부문 노미네이트 브로드웨이 최신작

2026-07-05     주하영 칼럼니스트
뮤지컬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그림은 선과 면, 색채, 빛, 구도를 통해 대상을 담아낸다. 그림이 그려지는 네모난 틀에는 화가의 눈을 통해 본 대상, 혹은 세상이 담긴다. 화가가 그린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화가가 본 그 사람이기도 하지만, 화가가 살아가는 세상이 만들어낸 누군가이기도 하다.

세상의 흐름과 물결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 지대한 영향은 화가의 붓을 통해 캔버스에 흔적을 남긴다. 초상화가 사진과 다른 점은 대상을 담아내는 사람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정, 세계관, 이상, 철학과 같은 것들이 화가의 붓을 통해 캔버스에 전달된다는 점일 것이다.

뮤지컬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 유행한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을 확립하는데 기여한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그린 뮤지컬 '렘피카(Lempicka)' 아시아 초연이 최근 막을 내렸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으로 토니 어워즈 연출상을 수상한 레이첼 채브킨이 연출을 맡은 칼슨 크라이저 극본, 맷 굴드 음악의 뮤지컬 '렘피카'는, 2024년 제77회 토니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무대디자인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2014년 워크숍을 거쳐 2018년 윌리엄스타운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뮤지컬 '렘피카'는 2022년 캘리포니아 라호야 플레이하우스에서 브로드웨이 진출 전 시범 공연으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선보였다.

하지만 엇갈린 평가와 관객 동원 부진으로 27회의 프리뷰와 41회의 정식 공연만을 끝으로 폐막하게 되면서, 팝 아티스트의 노래나 유명 영화·소설이 지닌 인기에 기대지 않고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구상된 창작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당시 러시아를 탈출한 뒤 파리에 정착하면서 아르데코 양식의 초상화와 누드화로 명성을 얻었고, 양성애자이면서 자신의 욕망과 야심을 숨기지 않았던 여성 화가 렘피카의 생애를 펼쳐 보이는 뮤지컬의 태동은 십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본을 맡은 크라이저는 대학원 재학 당시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인물을 찾던 중 한 친구가 ‘타마라 렘피카’를 제안하면서 관심을 품기 시작했다.

아트북을 통해 타마라의 그림들을 접한 크라이저는 가수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나 고급 주얼리 광고에서 여러 차례 그녀의 그림들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트북 속 그림들처럼 “거대하고, 대담하며, 색채가 풍부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은 작곡가 굴드를 만나면서 “운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굴드는 클래식 선율, 팝, 록, R&B, 일렉트로닉, 테크노가 결합된 다채로운 분위기의 드라마틱한 음악을 완성했다. 굴드에 따르면, 1980년대 대형 뮤지컬의 문법에 맞춰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유사하게 음악적 ‘방대함’을 겨냥했지만, 재즈 시대가 배경인 만큼 1920년대의 활기를 떠올리게 하는 곡들도 포함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대에 앞선 인물을 그리는 뮤지컬인 만큼 곡들은 의도적으로 현대적 사운드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평론가 자커리 스튜어트에 따르면, 기술 숭배와 파시즘의 광기를 담아내는 미래주의자 마리네티의 강렬한 넘버 ‘퍼펙션(Perfection)’이야말로 그런 곡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

기계, 힘, 속도, 차가움, 새로움을 찬양하는 예술운동인 ‘미래주의’가 1920~30년대를 사로잡으면서 타마라의 그림에 영향을 준 만큼, 무대 또한 검고 차가운 ‘철’의 느낌을 반영했다.

채브킨의 표현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해체된 에펠탑”이라고 할 수 있는 무대 위 철제 구조물은 당대의 파리와 만국박람회, 기계를 의미함과 동시에, “구불구불한” 삶의 굴곡을 대변하는 계단, 공중에서 내려오는 삼각형 깃발 모양의 스크린, 그림을 상징하는 평면과 틀을 통해 “소비에트 구성주의와 이탈리아 미래주의”를 담아냈다.

파리에 세워졌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뼈대가 드러난 철의 사용으로 대중에게 산업과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불러왔던 ‘에펠탑’을 연상시키는 무대는, 타마라가 러시아에서 탈출해 파리에 정착한 시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뮤지컬

채브킨은 프로그램북의 ‘인사말’에서, 타마라가 그린 초상화들이 “차갑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강렬한 생명력”을 품고 있으며, 시간과 죽음에 맞서 “이 인간은 이곳에 존재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선명하고, 영원한 존재로”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고 피력하는데, 뮤지컬 '렘피카' 역시 그런 시선에서 ‘한 인간’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실존 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삶에서 두 사람을 사랑했으나 그 둘을 동시에 사랑했고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인물’이라는 허구적 설정을 통해 인물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삶을 파헤치고자 했다.

러시아와 프랑스, 미국으로 세 개의 국가를 넘나들며 볼셰비키 혁명과 두 번의 세계 전쟁을 겪은 타마라의 삶 가운데, 뮤지컬은 1918년부터 1939년까지 타마라가 파리에 머물며 화가로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뮤지컬

또한 1975년 노년의 타마라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와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원에서 붓을 들고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로 회귀하는 구성을 취함으로써, 한 여인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틀을 완성한다.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과 수미쌍관 구조를 이루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녀의 그림들이 재평가되면서 회고전이 개최되고, 2020년에 ‘마조리 페리의 초상’이 2,120만 달러(한화 약 310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가 주목한 일을 암시하는 짧은 장면들이 더해진다.

주로 무대 위에 빈 액자로 암시되거나 디지털 영상으로 삼각형 스크린에 잠깐씩 투사되던 타마라의 그림들은 마침내 관객 앞에, “절대 붓질의 흔적을 보이지 말 것”을 강조했던 금속성 광택을 가진 화려한 색감과 명암대비가 강렬한 기하학적 형태의 스타일을 드러내 보인다.

뮤지컬

뮤지컬이 채택한 이야기는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타마라가 러시아 귀족 출신의 변호사 ‘타데우스 렘피키’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 날부터 시작한다.

사랑하는 남자와의 행복한 신혼은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으로 변한다. 남편 타데우스는 황제 비밀경찰과 내통한 혐의로 감옥에 갇히고, 타마라는 갖고 있던 보석들을 하나씩 뇌물로 바치면서 남편을 감옥에서 빼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남편 석방의 대가로 그녀의 몸을 요구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녀는 거래를 수락한다.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타데우스는 어떻게 자신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한 것인지 타마라에게 집요하게 묻지만, 그녀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파리에 도착한 젊은 부부는 아기와 함께 생존할 길을 찾아야 하지만, 귀족으로 살아온 타데우스는 은행에서 돈이나 세는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일축한다.

타마라는 생계를 위해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하고, 길에서 그림을 파는 화가와 마주치면서 마지막으로 붓을 잡아본 게 언제였는지 떠올린다. 결혼 전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던 타마라는 부유한 상류층의 거실에 어울릴만한 그림들을 그려 팔기 시작하고, 미술품 수집가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대부호 ‘라울 쿠프너 남작’과 ‘남작 부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 ‘마리네티’에게 그림 수업을 받게 된다.

뮤지컬

마리네티로부터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네모난 캔버스만큼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타마라는 평면 위에 자신만의 세상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첫 그룹전에서 마리네티를 찾아온 ‘라파엘라’와 마주친 타마라는 “기계만이 아름다움이며 완벽한 예술”이라고 외치는 마리네티를 향해, 아름다운 라파엘라의 몸을 그려 “여자가 질주하는 위력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한다.

뮤지컬

빈민가 출신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 노동자로 살아가는 여인 라파엘라와의 만남은 타마라의 삶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라파엘라의 누드를 그리면서 타마라와 라파엘라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라파엘라를 뮤즈로 삼은 타마라는 화가로서 점점 더 성장한다.

하지만 남편 타데우스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은행에서 일하기로 했다면서 예전의 아내로 돌아와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하고, 라파엘라 역시 자신과 타데우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종용한다.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떠나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던 타마라는 결국 남편과 연인을 둘 다 잃고 만다.

뮤지컬

뮤지컬 '렘피카'의 핵심은, 타마라가 첫사랑이었던 타데우스와 자신의 뮤즈인 라파엘라 사이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열망을 끊임없이 추구한 인간”으로서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작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다시 생존을 위한 변화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맥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삶의 끈을 놓으려는 시도를 한 듯 손목을 붕대로 감은 타마라를 찾아온 남작 부인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화가는 타마라밖에 없다면서, “짧은 인생에 절망 따위는 사치”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이 기억하게 해달라면서 완벽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달라는 남작 부인의 넘버 ‘저스트 디스 웨이(Just This Way)’는 감동을 불러온다. 채브킨 연출은 ‘시어터매니아’와의 인터뷰에서, 남작 부인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감정”과 “세상이 불타고 있어도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초상화의 본질이 “생명을 보존하려는 노력”이라는 점과 연결되면서, 타마라에게 다시 한번 붓을 들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뮤지컬

실제 역사에서 타마라는 남작 부인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없는데, 서사에 영감을 준 그림은 1931년 작인 '부카르 부인의 초상화'라고 한다.

'뉴욕 시어터 가이드'에 따르면, 초상화의 “고개를 약간 기울인 모습, 눈빛에 담긴 아련한 슬픔, 위엄, 그리고 차분하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이 남작 부인의 넘버(노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남작 부인이 초상화를 부탁하는 장면은 히틀러의 권력 장악과 파시즘의 부상 속에서 유대인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며, 자신이 죽고 난 뒤 남편과 함께 파리를 떠나라고 조언하는 남작 부인으로 인해, 타마라가 딸 키제트를 데리고 아내를 잃은 남작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이 또한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데,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제시 그린은 남작이 아내를 잃기 수년 전부터 이미 타마라와 불륜 관계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 외에도 타마라가 마리네티에게 그림을 배운 적 없다는 점, 라파엘라가 타마라와 관계를 맺었던 여인들을 여럿 합쳐 만든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는 그린은, 실존 화가의 삶을 너무 압축하고 재구성해 왜곡한 탓에 맥락이 흐려져 주인공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분명해졌음을 비판한다.

뮤지컬

뮤지컬 '렘피카'가 다루는 타마라의 삶이 실제와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타마라는 마리네티가 아니라 나비파의 일원인 상징주의 화가 모리스 드니와 큐비즘 화가인 앙드레 로트의 지도를 받았다.

부유한 상류층의 초상화 작업 외에도 길에서 마주치는 남녀에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던 타마라는 상당히 자유분방하게 많은 남녀와 관계를 맺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라파엘라를 그린 그림들을 타마라는 7점 정도 남겼는데, 1927년 작인 '아름다운 라파엘라'는 모델의 몸에 대한 작가의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타마라의 “가장 강렬하고 에로틱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 전쟁은 분명 전례 없는 참사였지만 가치관의 붕괴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기도 했는데, 전통적인 젠더 개념과 성적 관습, 성 역할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1920년대 파리는 레즈비언의 시대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고, 가정에 묶여 있던 여성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었으며, 성 역할의 변화가 패션과 외모에 반영되었다.

타마라는 “남성 포식자와 같은 성적 대담함”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고, '아름다운 라파엘라'를 통해 “강인하고 관능적이며 자신의 쾌락을 완전히 통제하는 존재”를 그려냈다.

작곡가 굴드는 표면이 깔끔하고 완벽해 보이는 타마라의 그림 속 인물을 가까이 잘 들여다보면 “눈동자 뒤에 한 인간이 갇혀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하는데, 뮤지컬 '렘피카'는 그것을 타마라의 ‘불안’으로 본 듯하다.

뮤지컬

사실 넘버의 가사들을 잘 살펴보면 타마라가 소용돌이치는 격변의 시대를 헤쳐 나가면서 ‘생존’이라는 단어를 늘 마음속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타마라는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는 ‘속도’에 대한 강박과, 자신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장식성’, 언제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인 ‘보석’에 대한 집착을 품고 있다.

타마라의 그림 중 가장 잘 알려진 자화상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패션 잡지의 표지를 위해 제작된 이 자화상은 1920년대 신여성의 아이콘이자 자동차 시대, 아르데코 양식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스카프를 두른 은색 헬멧의 타마라는 녹색의 프랑스 명품 스포츠카 핸들에 무심하게 손을 올려놓은 채 세련되고 우아하며 냉담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뮤지컬

실제로는 타마라가 노란색 르노 차를 몰았다는 사실은 타마라가 자신의 이미지 창조와 브랜딩에 능한 인물이었음을 드러내는 에피소드로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기계적인 시선과 냉담한 눈빛 속에 무엇이 담겨있을지는, ‘붓질이 드러나지 않는’ 세련되고 에로틱하며 역동적인 에나멜 완성 속 인물들의 삶에 무엇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뮤지컬 '렘피카'는 자신의 것을 단 하나도 잃고 싶지 않은 강한 욕망을 품은 여성이 “격변의 시대를 살며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 나가는 모습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불안’을 숨기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브로드웨이 개막 당시 타마라 렘피카의 전시회를 기획한 소더비의 닉 다이멜은 타마라가 자신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구현한 방식이 “오늘날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피력한다.

그는 마돈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잭 니콜슨과 같은 스타들과 도나 카란, 볼프강 주프와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유독 타마라의 그림들을 수집하며 공감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뮤지컬

출생지와 출생 날짜가 다른 기록으로 존재하고, 딸 키제트가 전기 작가를 통해 전하는 이야기 또한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타마라의 삶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타마라가 “자신의 신화를 창작하는 사람”으로 불릴 만큼 보이고 싶은 이미지로 자신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렘피카: 아르데코의 여신'을 쓴 패트릭 베이드에 따르면, 타마라가 살던 시대에 공식 칭호를 받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페라 가수들은 최대 5년까지 출생일을 변경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었다고 한다.

타마라의 미화된 이미지나 이야기들은 결국 젊음과 아름다움, 전성기를 더 길게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거짓이 융통되던 시대의 ‘단면’인 셈이다.

시대를 담아내는 예술가의 그림에 시대의 가치가 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한 여성의 삶에 달라진 가치와 신념, 스타일과 문화, 역사가 담기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을까? 타마라 렘피카의 삶이 지닌 모순과 혼란, 욕망, 가치관의 혼재 역시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처럼, 그녀에 대한 평가 또한 부딪치는 가운데, 우리는 뮤지컬 '렘피카'를 통해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뮤지컬 '렘피카'가 허구를 더한 타마라의 삶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