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광고와의 7-2 승패 넘어선 감동...'폐교 위기' 이겨낸 영월 상동고의 기적

[신향식의 365칼럼] - 국내 최초의 공립 야구 특성화고…2023년에 창단 - 전교생 3명에서 전국 고교야구대회 본선 출전까지 - 2026 KBO 신인 드래프트서 첫 프로야구 선수 배출도 - 승패를 넘어 학교를 살린 주민들과 영월군, 강원도교육청 - 청룡기가 남긴 가장 큰 감동은 점수판 밖에 있었다

2026-07-02     신향식 칼럼니스트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2일 오전, 나의 모교 청주 세광고가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2회전에 나섰다. 상대는 강원도 영월군의 상동고.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학교였다. '무난히 이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문회 단체 카카오톡방에는 서울 목동야구장 전광판 사진과 경기 상황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점수가 바뀔 때마다 응원도 뜨거워졌다. 결과는 세광고의 7-2 승리.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세광고는 안정된 마운드와 집중력 있는 타선을 앞세워 시종일관 경기를 주도했고, 공수에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며 3회전 진출을 확정했다. 동문인 나도 모처럼 가슴 뿌듯한 승리를 만끽했다.

그런데 경기 종료 직후, 한 친구가 단체방에 상동고에 관한 짧은 글 하나를 올렸다. 그 몇 줄의 글이 오늘 경기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조사해 보니 2023년에 창단한 국내 최초의 ‘공립 야구 특성화고’였다. 모교 승리의 기쁨은 그대로였지만,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조금씩 상대 팀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 웃음소리보다 적막이 더 익숙했던 교정

상동고는 원래 야구 명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폐교가 더 가까웠던 학교였다. 한때 전교생이 세 명뿐이어서 학교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처럼 오갔다. 아이들 웃음소리보다 적막이 더 익숙했던 교정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를 살리고 싶었던 사람들, 아이들의 꿈을 지켜 주고 싶었던 사람들, 지역의 불씨만은 꺼뜨리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강원도교육청과 영월군, 학교와 동문, 지역 주민들은 학교를 없애는 대신 야구부를 만들기로 했다. 야구는 운동부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학교를 살리는 마지막 승부수였다.

학교 없애는 대신 야구팀 만들자” 힘모아

그 선택은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냈다.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기숙사가 들어서고, 야구장이 조성됐다. 조용했던 운동장은 다시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폐교 직전이던 학교는 어느새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학교가 됐다. 학교를 살린 것은 야구공 하나가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우리 학교만은 꼭 지켜 내자"는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사연을 알고 다시 오늘 경기를 떠올려 보니 7-2라는 점수도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세광고는 명문다운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승리였다. 그러나 상동고 역시 마지막 아웃카운트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눈빛에는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 냈다'는 묵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목동야구장에서는 사실 두 개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세광고와 상동고가 벌인 9이닝의 승부였다. 다른 하나는 폐교의 문턱까지 갔던 학교가 다시 희망을 되찾기까지 이어 온 몇 년간의 긴 경기였다. 전자는 세광고가 이겼지만, 후자는 이미 상동고도 이기고 있었다.

전국서 학생들 모여들어 다시 함성으로 가득차

그래서 오늘은 세광고의 승리를 마음껏 축하하면서도 상동고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선수들뿐 아니라 그들을 이끌어 온 감독과 교직원, 학교를 끝까지 지켜 낸 동문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기 위해 힘을 모은 주민들, 영월군과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들 모두에게  축하하고 싶다. 학교 하나를 살린다는 것은 건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학생들의 꿈을 지키고 지역의 미래를 이어 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청룡기 우승 트로피는 단 하나의 학교만 품에 안을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그렇지 않다. 희망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함께할수록 더 멀리 간다. 오늘 목동야구장에서 가장 값진 장면은 어쩌면 7-2라는 점수판이 아니라, 한때 사라질 뻔했던 학교가 전국 무대에서 끝까지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기적이 빚어낸 아름다운 드라마

세광고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상동고의 기적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것이다. 마침 상동고는 2026 KBO 신인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임종훈 선수가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아 지역사회에 감동을 준 바 있다.

오늘 청룡기는 세광고에는 승리를 안겨 주었고, 상동고에는 희망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승패는 기록으로 남겠지만, 사람을 살리고 학교를 살린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