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유안진 시인의 '안경알만 바꿨는데'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경알만 바꿨는데 / 유안진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날아다니고
허공 속에는 새들이 헤엄쳐 다닌다
나 또한 물과 허공 사이를 물구나무서서 다닌다
질겁하고 달려가 따졌더니
안경점 주인은 고래고래 삿대질이다
제대로
똑바로
잘 보이게
주문했지 않았느냐고.
- '둥근 세모꼴' (서정시학, 2011)
유안진 시인은 194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를 지냈으며, 시와 소설, 수필을 넘나드는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현재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문단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대표 시집으로는 ‘달하’, ‘봄비 한 주머니’,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등이 있으며, 대표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세대를 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입니다. 최근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화가인 딸 김문정을 추모하며 펴낸 작품집 ’나는 그림인가? 그림이 나인가?‘에 깊은 모성애와 그리움을 담아냈습니다.
유안진 시인의 작품은 가족과 사랑, 신앙,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언어로 풀어냅니다.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표현과 담백한 서정을 통해 일상의 평범한 순간 속에서 삶의 진실과 인간애를 발견하게 하며, 교육자다운 성찰과 시인 특유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펼쳐 왔습니다.
지난 6월 동작문화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예술 특별강연회’에서 유안진 시인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두 시간 내내 서서 유쾌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동안 강연장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두 문장은 "시를 쓸 때에는 거짓말로 참말하기."와 "생활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였습니다.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시와 삶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대표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난초와 지초의 향기처럼 서로를 닮아가는 우정을 이야기한 이 글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시와 삶을 한결같이 지켜 온 유안진 시인의 발걸음에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그의 문학과 강연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