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8) 노 시인의 눈물에서 분단의 고통과 통일의 염원을 듣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시는 시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어렸을 때 겪은 아픈 삶을 그냥 넘기지 않고,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여러 사람의 가슴이 뛰고 손과 발이 움직여 거대한 물결을 일으킨다. 바로 시의 힘이다.
여덟 살 때, 네 살 어린 이종사촌 여동생과 생이별한 여든다섯 살 오세영(吳世榮, 1942~) 시인이 68년 만에 그 여동생을 만나 쓴 시 '너는 4살 나는 8살'이 바로 그렇다. 오 시인은 6월24일 오후 3시,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수요문학광장․214 이 작가는 말한다’에서 “나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겠다”면서 자작시 '그 때 너는 네 살'을 낭독했다.
너는 4살, 나는 8살
우리는 그때 외갓집 마당가에 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헤어졌지.
네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에 어리던
푸른 하늘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데,
네 볼우물에 감돌던 그 천진스런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었지.
곧 전쟁이 일어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우리는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생사를 모른 채 이처럼
70년 헤어져 살아야만 했구나.
예뻤던 내 여동생 종주야.
이제 너는 일흔 둘,
나는 일흔 하고도 여섯.
몸들은 이미 늙었다마는 아직도
네 눈에 어리던 푸른 하늘과
네 볼우물에서 일던 그 귀여운 미소는
여전하구나.
종주야. 내 사랑하는 동생아,
이제 우리는 다시 헤어지지 말자.
그때 그날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우리 외가 집 마당가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
다시는 그 끔찍한 민족의 시련을
겪어선 안된다.
그때는 너는 4살, 나는 8살
- 오세영, '그 때 너는 네 살' 전문.
금강산에서 68년만에 만난 이종 여동생
담담하게 낭독하던 오 시인은 끝부분에 이르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감정을 진정시켰다. 낭독을 마친 뒤,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오세영 시인은 2018년 8월25일 금강산의 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여덟 살 때 헤어진 이종사촌 여동생 종주를 만났다. 1950년 4월, 살구꽃이 활짝 핀 전남 장성의 외가 댁에서 네 살짜리 종주와 헤어진 지 68년 만이었다. 종주를 만나기 몇 주 전, 해외로 출장 가서 호텔에서 잠자고 있는데, 새벽 2시에 동대문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에 친척이 사느냐?”고 물어 “없다”고 하니, “잘 생각해 보라. 귀국하면 대한적십자사에서 전화할 것”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하니 6.25전쟁 2개월여 전에 영광 외가에 왔던 4살 터울 이종사촌 여동생이 떠올랐다.
오 시인은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났다. 선친은 경성공업전문학교 토목과를 다녔다. 이상(李箱) 시인의 10년 정도 후배였다. 1941~1942년 중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선친은 전염병에 희생됐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선친의 유해는 이미 화장에서 어딘가에 뿌렸다면서 유품을 전해주었다고 했다.
모친은 1남6녀의 장녀였다. 스무 살에 결혼했는데, 선친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 시댁이 아니라 친정에서 지냈다. 선친이 돌아가시자 시댁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외가에서 살았다. 다만 오 시인이 태어날 때, 출산은 본가에서 하라고 해서 전남 영광 시댁에 가서 낳았다. 고향이 전남 영광이지만, 태어나서 100일 정도만 전남 영광에서 살았을 뿐이어서, 기억이 거의 없다. 오 시인이 친가보다 외가를 얘기하는 이유다.
이종사촌 여동생, 종주는 외할머니의 둘째 딸, 그러니까 오 시인 큰이모의 딸이었다. 종주의 아버지, 오 시인의 이모부는 명문인 광주서중을 졸업하고 보성전문 철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서중은 1929년 11월3일에 일어난 광주학생의거의 중심이 됐던 학교다. 이모부는 공산주의자였다. 6.25 때 낙동강전투의 선무공작에 투입됐다가 인천상륙으로 퇴로가 끊긴 인민군과 함께 빨치산이 되어 백두대간으로 월북하려다 체포됐다. 계급이 상당히 높은 ‘거물’이라 ‘현장 총살’을 면하고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무기로 감형됐다가 7,8년 복역하다 석방됐다고 한다.
김일성이 6.25를 일으켰을 때, 이모는 청량리역 근처에서 살았다. 이모부가 석방된 뒤 집에 가보니, 전쟁 통에 집은 사라졌고 이모와 딸과 부모의 소식도 알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 이모부는 재혼했다. 오 시인과의 관계도 끊겨 남남이 된 것이다. 2018년에 종주를 만나서 들으니, 이모와 종주 그리고 시부모는 춘천을 거쳐 월북했다. 종주가 이산가족상봉 때 먼저 아버지(오 시인의 옛 이모부)를 만나겠다고 신청했는데, 아버지가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 이종사촌 오빠인 오 시인을 만나겠다고 신청했다고 한다.
상봉 둘째날, 호텔 객실에서 둘이서만 만났을 때 여동생이 시를 써달라고 했다. “외가집이 생각나면 읽어보겠다”고 해서, “내가 시인인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2개월간 교양교육을 받으며, 오라버니가 서울대학교 교수인 것도 알았다”고 했다. 헤어지고 밤새 쓴 시가 바로 '그 때 너는 네 살'이다. 눈물로 시를 읽는 오 시인을 보며 시 한편을 써 보았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76년 전, 외가 마당을 환하게 밝힌
살구꽃 아래에서 헤어진
이종사촌 여동생의 볼우물에 감돌던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그리움이었다
그것은 먹먹함이었다
68년만에 기적처럼 만나
떨어진 시간만큼이나 달라진
늙은 몸에서도 여전히 피어나는
볼우물 미소에 감춰진 거리의 먹먹함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문묘에 배향된 동방18현(東方十八賢),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으로 번성하던 외가가,
둘째 사위를 잘못 두는 바람에 풍비박산(風飛雹散)난 참상을,
세월의 명약으로 따뜻하게 감싸는,
아픈 과거를 딛고 종주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는 사랑이었다
시인이, 이제 하늘에서 부르실 나이가 됐다는
여든다섯 살 오세영 시인이
76년 전에 일어난 6.25전쟁을 하루 앞두고
흘린 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움과 먹먹함과 사랑이었다
- 홍찬선, '시인의 눈물' 전문
시는 과학이 아니라 사랑이다
오 시인은 전남 장성에 있는 월평국민학교에 다니다 광주에 가서 2년 살고 전주의 완산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 이렇게 이사 다닌 것은, ‘둘째 사위를 잘못 얻은 죄’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후손으로 넉넉하게 살았던 외할아버지가 끌려가 비명횡사를 당하고, 외할아버지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돌아다니던 외할머니마저 정신줄을 놓은데다 ‘빨갱이 집안’이라는 손가락질 때문에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 시인은 명문인 전주북중 입학시험을 쳤지만 떨어져 후기인 신흥중,고를 다녔다. 그때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오후 2시30분에 6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2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뛰어가 줄을 선 뒤 3시에 문이 열리면 책을 빌려 문을 닫는 밤 9시까지 읽었다. 도서관 사서로 계시던 선생님이 “책이 그렇게 좋으냐?”면서 예외적으로 책을 빌려주어 집에 가서도 읽었다.
당시 1등 하던 박병우라는 친구가 오 시인 동네로 이사 왔다. 걸어서 1시간 정도 등하교를 함께 하면서 그 친구에게서 공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오 시인은 1학기 기말시험을 본 뒤 반에서 4등이 되었다. 입학할 때 20등에서 장족의 발전이었다.
신흥중,고는 미션스쿨이라 여름방학 때 여름성경학교를 했다. 그때 목사가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착한 일 하면 갈 수 있다”고 하니 “아니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되물으니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해서 “예수가 누굽니까?”라고 물었다. 목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도공이 빚은 쓰레기통이 ‘어떤 놈은 꽃병으로 빚어져 사랑받는데 자신은 쓰레기통이라서 푸대접 받는다고 불평을 터트리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불만은 있지만 운명이니 어찌하겠느냐?”고 대답했더니 “맞다 그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이 오 시인 문학의 출발이었다.
오 시인은 “인간의 논리와 하늘의 논리, 인간의 진실과 하느님의 진실은 다르다”며 칼 야스퍼스가 '비극론'에서 3대 비극으로 소개한 소포클래스의 '외디푸스왕'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이어 '구약성경'의 '욥기'를 소개했다. 하느님이 욥기를 ‘의인(義人)’으로 여겨 사랑하고 축복하자 악마가 욥기의 재산을 없애고 가까운 사람을 죽이며 욥기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자, 욥기가 처음에는 불만을 터뜨리며 항의하다가 마지막에 “당신 뜻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내용이다.
오 시인은 “진리는 논리에 있는 게 아니라 모순에 있다”며 “논리적 진실은 과학이지만 모순의 진실을 찾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모순의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학적 진실이 아닌 바로 사랑과 같은 모순의 진실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시(詩)라고 부른다”는 설명이다.
하나 보태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만일 하나 보태기 하나가 둘이 되는 이치가 통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성립될 수 없다. 과학적 진실은 하나 보태가 하나가 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인간의 삶에서 항상 그렇던가.
가령 두 사람을 합칠 수 있다면 하나 보태기 하나는 하나, 아니 셋도, 넷도 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사람 하나에 사람 하나를 보탠 것을 부부라 한다. 그런데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 하나라는 뜻이다. 그런 부부 사이에 아이들이 생긴다면 이제 하나 보태기 하나는 셋이 될 수도, 넷이 될 수도 있다.
하나에 하나를 보태어도 여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이 아니라고 해서 인간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에 하나를 보태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진실, ‘사랑’이라 부르는 그 시적 진실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과학이 아니라 시인 것이다.
하나 보태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 같은 진실은 오직 삶을 편안하게, 안락하게 영위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필요한 진실일 뿐이다.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이 과학적 진실을 벗어난 곳에 있는, 한마디로 모순에 토대한 진실이다. 이 생은 과학적 진실이 아닌 바로 사랑과 같은 모순의 진실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시(詩)라고 부른다.
- 오세영 '시인의 말'
오세영 시인은 이날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시 '살구'도 낭독했다. '살구'는 오 시인이 최근에 열매를 소재로 쓴 연작시 열댓 편 가운데 가장 최근에 쓴 시다. 그는 “어제 밤에 쓴 시가 나의 대표시”라는 스승 박목월(朴木月, 1916~1978)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훌륭한 시가 없어서 자꾸 쓰다 보니 1000여편을 쓰게 됐다. '살구'가 가장 최근에 쓴 시니까 현재 나의 대표시”라고 했다.
그대는 아는가.
살구꽃 화사하게 피는 남쪽 마을을,
꾸벌은 그 어느 곳보다 더 윙윙거리고,
모란은 그 어느 하늘보다도 아름답게 꽃대를
밀어올리고,
바람은 그 어느 들녘보다 청량하게 부는
내 고향 남쪽 나라.
내 유년의 뜰
살구향에는
한국전쟁의 포연(砲煙)과, 외할머니의 애처로운 한숨과
네 살적 헤어진 이종 여동생의
해맑은 눈빙치 서려 보인다.
꽃상여 소리 없이 고샅을 빠져나가고
호곡(號哭)조차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 그때 그 시절 외가집 살구나무의
꽃 그늘,
이 땅의 우리 천재 시인 이상(李箱)은
임종하면서
레몬 향을 맡고 싶다고 했다지만
난해시가 싫다, 나는
죽음을 맞을 때 꼭 살구향을 맡고 싶다.
그대는 아는가.
살구꽃 화사하게 피고
꿀벌은 그 어느 곳보다 더 윙윙거리고
모란은 그 어느 할보다 아름답게 꽃대를
밀어올리고,
바람은 그 어느 들녘보다 청량하게 부는
내 고향 남쪽 나라를…
- 오세영, '살구' 전문
시 '살구'에는 ‘만일 괴테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이런 시를 썼을 것이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괴테는 유명한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에서 여주인공 미뇽(Mignon)이 부르는 노래를 다음과 같이 썼다. 오 시인은 “'살구'를 괴테의 '미뇽의 노래'를 패러디해서 썼다”고 밝혔다.
레몬나무 꽃이 피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어두운 잎새 사이로 황금빛 오렌지가 빛나고,
푸른 하늘에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며,
도금양은 조용히, 월계수는 높이 서 있는 곳.
그곳을 진정 아시나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내 사랑하는 이여,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라.
그 집을 아시나요? 기둥들이 지붕을 받치고 있고,
대리석 홀은 번쩍이고, 방들은 빛나며,
대리석 조각상들이 서서 나를 바라보며 말하네,
"가여운 아이야, 사람들이 네게 무슨 짓을 마쳤느냐?"
그곳을 진정 아시나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나의 보호자여,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라.
구름 속에 길이 난 그 산을 아시나요?
노새는 안갯속에서 제 길을 찾고,
동굴 속엔 용의 해묵은 종자가 살며,
바위는 흘러내리고 그 위로 폭포가 쏟아지는 곳.
그곳을 진정 아시나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우리의 길이 나 있나니! 오, 아버지여, 우리 떠나요!
- 괴테, '미뇽의 노래' 전문, 번역; 제미나이
“얘 귀는 보통 귀가 아니라 부처님 귀다.”
“얘 이마를 보면 보통애가 아니라 하늘에서 보낸 아이다…”
오 시인은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손님이 찾아왔을 때 하는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았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말도 하고 행동을 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오 시인이 시 '자화상'에서 “나는/ 빈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고 노래한 것은 비극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에 다짐한 각오였을 것이다.
전신이 검은 까마귀,
까마귀는 까치와 다르다.
마른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먼 설원을 굽어보는 저
형형한 눈,
고독한 이마 그리고 날카로운 부리.
얼어붙은 지상에는
그 어디에도 낱알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대 차라리 눈발을 뒤지다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까치처럼
인가(人家)의 안마당을 넘보진 않는다.
검을 테면
철저하게 검어라. 단 한 개의 깃털도
남기지 말고…
겨울 되자 온 세상 수북이 눈은 내려
저마다 하얗게 하얗게 분장하지만
나는
빈 가지 끝에 홀로 앉아
말없이
먼 지평선을 응시하는 한 마리
검은 까마귀가 되리라.
- 오세영, '자화상'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