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인류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크리스탈 파이트·조너선 영의 ‘어셈블리 홀’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 - 2025년 올리비에상 최우수 무용작품상 수상작 - 크리스탈 파이트가 이끄는 무용단 ‘키드 피봇’ 첫 내한 무대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다른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영어 단어 ‘어셈블리(assembly)’는 “사람들의 모임, 특정 목적을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집단”을 뜻한다. ‘어셈블리 홀’이란 이러한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공간인 학교 강당, 공공회의 장소, 마을회관 등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교회, 정부 단체, 국제기구의 총회장을 지칭하기도 한다.
서구문화에서 시민들이 모였던 최초의 어셈블리 홀은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집회 공간인 ‘에클레시아스테리온(Ekklesiasterion)’으로 알려져 있다.
시민 모두가 발언할 권리를 갖고 있었던 이 공간에서는 동맹을 맺는 일이나 전쟁 선포에 대한 논의뿐 아니라 지역 공공건물의 건설 및 공직 임명에 관한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약 1,100명~1,700명의 시민들을 수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에클레시아스테리온 이전에는 기원전 6세기경 500여 명의 엘리트 대표들이 모여 의회를 하던 ‘불레우테리온(Bouleuterion)’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안무가 중 한 명인 크리스탈 파이트가 최근 자신이 20여 년간 이끌어 온 무용단 '키드 피봇'과 함께 내한해, 2025년 올리비에상 최우수 무용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어셈블리 홀(Assembly Hall)'을 선보였다.
캐나다 배우이자 극작가로 ‘일렉트릭 컴퍼니 시어터’를 설립한 조너선 영과 2015년에 첫 협업으로 선보인 ‘베트로펜하이트(Betroffenheit)’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올리비에상을 수상한 뒤, 계속 이어진 네 번째 협업 작품이다.
조너선 영이 쓴 대본을 녹음한 대사에 맞춰 ‘립싱크(lip sync)’를 하듯 무용수들이 동작과 제스처, 춤을 추며 표정과 입 모양까지 맞추는 방식의 공연은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체적 움직임만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re)와 현대 무용이 결합하고, 언어가 마치 안무를 위한 음악처럼 기능하면서, 현실에서 환상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조너선 영과 크리스탈 파이트의 협업 작품들은, 무용수들의 과장되고 희화화된 몸짓이 녹음 음성에 맞춰 립싱크로 재현되는 동안, 관객이 언어와 신체성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긴장’을 느끼게 되는 특징이 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조너선 영이 화재 사고로 자신의 딸과 조카들을 잃은 비극 속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심리적으로 조명한 ‘베트로펜하이트’ 이후, 권력의 역학 관계와 도덕적 모호성을 다룬 ‘더 스테이트먼트(The Statement, 2016)’와, 니콜라이 고골의 희곡을 원작으로 정치적 부패와 탐욕, 해체를 탐구한 ‘검찰관(Revisor, 2019)’에 이어, 2023년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 신화와 영웅주의를 다룬 ‘어셈블리 홀’을 탄생시켰다.
2020년에 예정되었던 '검찰관'의 내한 공연이 팬데믹으로 무산되면서, ‘베트로펜하이트’와 함께 영상으로 디지털스테이지(‘CoM On’)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데, 이번 '어셈블리 홀' 공연은 ‘CoMPAS 26 시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LG아트센터 서울에서 펼쳐졌다.
93년의 역사를 가진 중세 재현 동호회 단체는 회원 수 감소와 지속되는 재정 적자로 인해 해체될 위기에 처해있다. 소도시의 전형적인 ‘마을회관(어셈블리 홀)’으로 보이는 곳에서 연례 회의가 펼쳐지는 가운데, 동호회 의장과 부의장, 재무관, 서기, 대외홍보의원, 평의원, 무기 총괄 스태프 등 8명은 단체의 ‘미결 안건’, 즉 존속과 폐지를 둘러싼 결정을 논의한다.
평의원인 게일은 ‘자애와 보호의 기사단(the Benevolent and Protective Order)’이라고 불리는 동호회를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지만 서기인 보이드와 재무관 글렌다는 해체를 강하게 주장한다.
해산안에 투표할 수 없는 의장을 제외하면 7명이 남는 가운데, 3대 3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연례 회의 참가자들은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유입한 듯 보이는 ‘데이브’가 단체의 운명을 결정할 것임을 인지한다.
낡은 농구 골대가 벽 중앙에 높이 걸려있는 무대 공간은 마을회관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걸어온 시간을 대변하는 듯하다.
반원형으로 의자를 놓고 둘러앉아 녹음된 대사에 맞춰 립싱크와 과장된 액션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재현’하는 무용수들은 커피와 다과를 언제 내올지, 회의는 어떻게 격식에 맞게 진행할지에 대한 사소한 의견 논란부터, 회원들 간의 내밀한 암투, 자신의 의지 관철을 위한 정치적 포섭과 배제, 공동체 내 소속감과 권력 의지에 이르기까지, 어느 공동체의 회의에서든 발생하는 ‘갈등’을 포착해 드러낸다.
대외홍보위원인 우디는 중세 기사의 모험을 ‘재현’하는 참여형 미션 축제로 ‘퀘스트 페스트(Quest Fest)’를 통해 신규 회원을 유치하겠다는 포부를 시연한다. 슬라이드 필름 영사기로 스크린에 필름을 확대해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과정은 영사기의 고장으로 중단되고, 데이브는 퀘스트의 주인공인 ‘이름 없는 기사’ 역할을 맡아 낡은 투구를 쓰게 된다.
데이브가 은빛의 기사 투구를 쓰는 순간은 마치 게임에서 ‘미션 참여하기’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퀘스트의 재현을 위한 액자형 무대 ‘프로시니엄(proscenium)’은 신비로운 소리와 함께 깊은 숲으로 변모한다. 관객은 극중극의 형태로 데이브가 현실을 넘어 중세 시대의 ‘환상’ 속으로 이동해 겪어나가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흰 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의 여인이 누군가의 주검을 부여안고 흐느끼는 옆에서, 투구를 쓴 데이브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를 묻는다. 여인은 자신의 ‘반려자(companion)’가 어리석은 기사에게 살해당했다면서, 자신의 영혼 대신 그의 영혼을 데려간 죽음을 원망하며 죄의식과 슬픔의 탄식을 쏟아낸다.
그녀가 슬퍼하는 죽음의 대상이 ‘상호 간의 교감과 정서적 유대를 바탕으로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을 뜻하는 ‘동반자, 친구, 동료, 파트너’를 포괄하는 단어 ‘companion’으로 지칭된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년간 같은 목적을 갖고 모여 친목과 화합을 나누면서 역사 속 특정 순간들을 재현해 온 동호회 회원들, 즉 공동체의 일원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탈 파이트와 조너선 영의 협업 작품들이 늘 그렇듯, 현실과 환상이 중첩되는 ‘이름 없는 기사’ 데이브의 모험 부분부터는 무용수들의 안무가 역동성과 추상성, 신비함과 흥미로움, 풍부한 감수성과 기괴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극중극’에 해당하는 프로시니엄 무대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웅장하고 압도적인 첫 부분에 맞춰 중세 시대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기 시작한다.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가 대결하듯 맞서며 극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음악에 동작을 딱 맞춘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중세 전투의 재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과 동시에, 무대 위 움직임을 수정하고 배우들의 위치를 가다듬는 ‘연출’을 패러디한 듯 메타적 속성을 드러낸다.
퀘스트는 무용수가 홀로 기량을 드러낼 수 있는 솔로(독무)와 아름답고 기이한 파드되(2인무), 역동적인 3인무와 앙상블(군무)이 협주곡 선율에 따라 여러 장면으로 펼쳐지며 무대 위에 다채롭게 구현된다.
환상 속 장면들은 리하르트 바그너 오페라의 원작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장편 서사시 '파르치팔(Parzival)'을 떠올리게 하는 성배(Holy Grail), 성창(Holy Lance), 예언, 연민과 구원, 영적인 성장, 희생과 연계된 움직임이 가득하다.
하지만 캐나다 초연 당시 창작자들이 프로그램북을 통해 밝힌 출처에 따르면, '어셈블리 홀'의 서사는 에셴바흐의 서사시보다 약 20~30년 앞서 집필된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미완성 작품 '페르스발(성배 이야기)'(원제: Perceval, ou le Conte du Graal)를 기반으로 한다.
이 때문에 ‘이름 없는 기사’인 데이브의 여정은 제대로 된 ‘결정적 질문’을 하지 않아 치유와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죄책감’에 빠지게 되는 미완성의 여정을 따르는 측면이 있다.
물론 다양한 참고 자료들이 많이 적용되어 탄생한 '어셈블리 홀'에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왜 신화가 필요한 것인지, 위기에 처한 공동체가 희생양 이론을 통해 집단을 유지해 온 것은 아닌지에 대한 창작진의 질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집단으로 모이는 능력, 무언가를 함께 믿고 따라온 역사, 이야기를 만들고 공연하며 공감하고 연민해 온 문화 속의 인류는 전통적인 대면 참여의 공간을 떠나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며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속에 엮여있는 디지털 시대의 공동체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몸과 몸이 부딪치는 물리적 공간에 모이기를 원한다. 특히 공연은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무대 위에 ‘재현’되는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이전보다 개인화된 삶, 디지털 공간의 확장, 초연결의 보편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가 공동체의 회복과 연대의 필요성, 무언가를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할 필요에 대해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셈블리 홀'은 그런 ‘결정적 질문’에 관객 모두가 동참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다음 해를 향해 또다시 미뤄진 ‘미결 안건’은 우리 모두 함께 답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