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없는 우리네 어머니'...연극 '이사', 주호성의 애틋한 사모곡(思母曲)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 윤미현 작, 장경민 연출의 연극 ‘이사’ - 주호성 배우가 빚어낸 독자적 ‘화술(話術)’의 총화

2026-06-04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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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윤미현 작, 장경민 연출의 연극 ‘이사’를 6월 2일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에서 관람했다.

청주의 극단 시민극장이 지난 3월 대한민국 연극제 충북 경연작으로 선보인 작품으로, 6월 7일까지 공연한다.

“연극 ‘이사’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내 삶의 기억, 그리고 어머니께 바치는 절실한 사모곡이 될 것이다.”

주호성 배우는 올해 76세이다.

이 이야기는 그가 5~15세이던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전후가 배경이다. 전쟁의 상흔에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이 빈곤의 시기에, 자식을 먹여 살리려 물불을 가리지 않던 우리네 어머니의 자화상이다.

희곡을 쓴 윤미현 작가는 40대 중반인데, 이 시기 빈궁함을 떨치고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을 회상 형식(거의 1인극 같은 독백)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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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40분에 달하는 이 장편의 어머니를 주호성 배우가 마치 자신의 친어머니처럼 떠올려 그리워 눈물짓고 목이 메는 살아있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우리말의 정확한 본새, 단어의 뉘앙스, 쉼표 하나 점 하나까지 지켜내는 호흡과 여백...

연극 ‘이사’는 주호성 배우가 지닌 독자적 ‘화술(話術)’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성우 출신인 그는 1960~7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에 우리네 남성들의 온갖 말에 감정의 옷을 입혔고, 그 시대 풍속을 투영했다.

그리고 반세기 넘게 연극배우로 무대를 지켜온 그는 우리 말을 연극 언어로 표현하는 화술에 집중했으며, 온 군데 굿판, 소리판을 찾아다니며 우리 감성과 추임새를 몸에 배도록 호흡했다. 그리고 술꾼, 장돌뱅이, 염쟁이 등 서민 캐릭터와 DNA를 뼛속 깊이 새겼다.

혹자는 장나라 배우를 스타로 키운 주호성이 중국에 체류하며 연극판을 떠났다고 하지만, 1인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을 중국어로 공연했을 만큼 그는 결코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귀국 후에는 배우에서 연출가로 영역을 넓히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 4~5편의 작품을 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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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현 작가의 이 작품은 배우에게 고난도의 연기를 요구한다.

작가는 아내와 아들, 회상 속 어머니 등 3명의 등장인물을 두었지만 가장인 주호성이 지나온 시절, 행상 어머니를 기다리던 유년기와 외상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었던 학창시절, 아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주던 결혼 초기, IMF로 강원도 양구에서 힘든 일을 했던 시기, 친구를 찾아 시설에 간 이야기, 그리고 영원한 이사를 말하며 어머니의 무덤을 서성대는 말년...

이를 모노드라마 하듯 각기 다른 시간대, 나이대, 감정의 굴곡을 주로 말(화술)에 의지하여 감정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기자 중 하나가 주호성 배우이다. 70대 후반 노배우가 오랜 내공 없이는 할 수 없는 고난도 모노드라마를 해낸 것이다.

대본 한 두 장, 서너 장으로 이어지는 긴 대사를 책 읽듯 하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을까.

이를 무대 언어로 살려내려면 배우가 자기 안의 연출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악보의 빠르기와 강약 표기처럼 대사에 완급을 두어야 하고, 그 내면에 흐르는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야 한다.

어느 대목은 눙치듯 해야 하고, 어느 페이지는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야 하는 것이다.

윤미현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주목할 만한 작가다. 그는 2025년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에서 ‘옥수수밭 땡볕이지’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심도 있는 희곡들을 발표해왔다.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청춘들의 그 후를 그린 ‘옥수수밭 땡볕이지’는 그 시절을 살지 않은 작가가 어떻게 당시 시대상을 이렇게 절절히 살려냈을까, 놀라울 정도다.

이 작품 ‘이사’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6.25전쟁 때 시골집 아궁이에 숨었다가 적군이 군불을 때는 바람에 남편과 생이별한 후, 오지항아리를 지고 벽지를 돌며 생선을 팔아 아들을 키워 대처로 보낸 전형적 어머니상을 그려냈다. 궁핍하던 시대의 우리네 생활상을 아들의 회상으로 살려냈는데, 그 주제와 표현이 가슴이 찡할 정도로 맵고 아리다.

그 시절 최고의 가치는 쌀이었다. 쌀독이 채워져 밥을 굶지 않는 것, 이를 위해 엄마는 강을 건넜고 산길을 오르내렸다. 엄마가 행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쌀독이 가득 채워졌다. 죽은 어머니의 유품 보따리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수저가 여러 벌 나왔다.

행상을 하면서도 아들과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어머니의 소망이자 이 연극의 핵심주제이다.

자식을 낳고 살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를 그리는 남편을 아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같은 집 1층으로 이사해버린 아내...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코끼리밥통’을 가져가자 남편은 속이 상한다. 쌀통, 밥통, 밥은 어머니 생존 이유였고, 그걸 보며 자란 아들에게는 밥통과 쌀통은 어머니 혼이 서린 ‘신앙’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아내 역을 맡은 김순이 배우의 수더분한 연기가 주호성 배우의 개성 연기를 잘 받쳐주었다. 어머니의 추억에 갇혀 아들이 무슨 콘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데다, 양구 시절에는 토시와 덧신을 넣고 다니는 남편이 미워 ‘함바집’ 밥상을 안기는 캐릭터가 밉상스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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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화두는 ‘외상’이다. 가난하던 시절, 우리는 ‘외상’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식품이나 생필품을 먼저 가져다 쓰고 후에 갚는 정산 방식인데, 신용이 제일 중요했다.

아들이 사는 동네 슈퍼 아줌마와 아들은 그에게 ‘외상해 갈 것’을 강요했다. 어머니가 돈을 맡기고 그리 시킨 것이다. 아들 역시 아내와 아들이 가는 가게마다 원하는 대로 물건을 주라며 어머니의 외상 전략을 대물림했다.

절친이던 그 슈퍼 아들이 행려병자 신세가 되어 먼 데까지 찾아갔는데, 아는 체도 못 하고 벤치에 소보로빵을 두고 오며 목이 메면 흰 우유 사서 마시라고 돈을 넣고 왔다는 대사에서 필자는 눈물이 났다.

외로움... 나이 들어 더욱 생각이 나는 어머니의 기억을 끌어안으며 아들은 ‘영원한 이사’를 떠나고자 한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해 어깃장을 놓는 아내, 평생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들... 그래서 “나 이제 이사갈련다”는 대사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는 연극이 ‘이사’다.

배우들이 보아도 주호성 배우의 독백 연기는 긴 여운과 울림을 안겨준다. 작품 또한 영상 매체와는 다른 진한 감정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이사’는 기울어가는 대학로 연극의 하나일 뿐이다. AI시대라고 해도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할 명품 배우의 개성 연기가 묻히는 현실이 필자는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