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1’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유리창 1 /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조선지광' (1930년, 1월호)
정지용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방향을 바꾼 시인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한 시인이 아니라, 우리말의 감각과 리듬을 새롭게 발견한 모더니스트였습니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이미지와 감각으로 보여주는 그의 시는 일제강점기의 불안과 시대적 고독 속에서도 언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오늘날 다시 읽어도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대표작 ‘향수’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라는 첫 구절만으로도 한국인의 집단적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현대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유리창’은 차가운 유리의 촉감 속에 상실의 슬픔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현충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기억은 거창한 말보다, 한 사람을 잃고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차가운 유리창을 닦는 화자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조용히 비춰 줍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들이고 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정지용 시인은 뛰어난 시인이었을 뿐 아니라 후학을 길러낸 문학적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잡지 ‘문장’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며 젊은 문인들을 발굴했고, 훗날 청록파를 이루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을 문단에 소개했습니다. 그의 안목과 영향력은 한 시대를 넘어 한국 현대시의 토대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 그의 고향 옥천에서는 지용제가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