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과 절제로 빚어낸 영화 '저만치 가까이'...백학기 감독 "삶은 뫼비우스의 띠"

- 백학기 감독 신작 ‘저만치 가까이’ 특별 시사회 - 시사회 전 진행된 1분간의 독경...서진스님과 청혜스님 출연 - 여백과 절제의 미학...마이산 탑사와 전남 보성 대원사서 촬영

2026-05-29     김리선 기자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지금부터 1분간 독경을 시작하겠습니다."

백학기 감독의 장편독립영화 '저만치 가까이'의 특별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불경을 읽는 서진스님의 목소리가 영화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진 3분간의 명상 시간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이렇게 시작된 '저만치 가까이'는 고요하고 담담하게 흘러간다. 전북 진안 마이산 탑사와 전남 보성 대원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여백과 절제의 미학을 강조한다. 침묵과 사색, 그리고 명상은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열 마디 말 대신 주인공이 담담하게 읊조리는 짧은 시(詩)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28일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시사회에는 200여 석의 객석이 가득찰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백 감독을 비롯해 윤지 역 배우 김수진, 수연 역에는 배우 최경희, 서진스님과 청혜스님이 함께 자리했다. 

영화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출가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절을 찾은 20대 윤지의 내면의 여정을 담은 1부 ‘저만치’와 삶에 대한 후회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은퇴한 교수 수연의 명상과 치유의 여정을 다룬 2부 ‘가까이’로 구성됐다.  

이 두 에피소드는 느슨하게 연결된 듯하면서도 끝내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1부에서 윤지는 어머니 서진스님을 결국 만나지 못한다. 윤지에게 청혜스님은 "만나지 못하는 것도 인연"이라며 묵직한 한마디를 건넨다. 그리고 2부에 이르러 딸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서진스님은 다른 사찰에 기거하며 전혀 다른 인물인 수연의 깊은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해 준다. 

백학기 감독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극 중 윤지가 끝내 만나지 못한 서진 스님은 다른 공간에서 수연의 마음을 치유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에피소드 '저만치'에서 끝내 만나지 못한 '미완의 만남'이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같다"며 "살아가면서 만남이든, 이별이든 관계의 역학 속에서 어긋나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숙성시켜 다음의 거름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을 영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시사회 직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수연 역을 맡은 배우 최경희는 "몰입과 집중을 경험했다. 명상 장면의 경우 한 시간이 넘는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독님이 주신 큰 선물"이란 소회를 밝혔다.

오디션에서 105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윤지 역의 김수진은 "대사보다 시로 말하는 장면이 많다보니 감정을 드러내는 게 힘들었다. 마음을 시로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생애 첫 연기에 도전한 청혜스님은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는데, 인생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촬영이 신기하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서진스님은 "과거 배우(연기) 학교에 다녔을 정도로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는 깜짝 과거를 밝히며 "오랫동안 카메라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일깨줘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백 감독은 영화 '공중의자', '산수갑산', ‘이화중선’ 등을 제작, 연출했다. 배우와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으며, '삼류극장에서 2046'등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는 백 감독이 직접 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