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팬덤 마케팅 전도사' 최원준 대표 "AI와 인간, ‘팬’과 ‘팬 아이콘’의 관계"
[인터뷰365] 20년 경력 마케터 최원준 대표가 말하는 'AI와 팬덤 마케팅' - “AI가 데이터 분석해도, 팬덤 움직이는 ‘진정성’은 인간의 몫” - 응원 받는 사람 누구나 '팬 아이콘' 될 수 있어 - AI와 인간,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는 관계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감독 겸 작가) = 최원준 대표의 이력은 다채롭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이른바 ‘광고춘추 시대’에 광고대행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신규사업 개발 담당자로 앱스토어 사업과 삼성페이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스타트업 창업을 거쳐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에서 팬덤 관련 비즈니스를 경험했다. 보통 아빠가 된 시점에는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 시기에 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열망은 익숙한 안전지대에 머무르기보다 그를 계속해서 새로운 전장으로 끌어들였다.
매 순간 도전과 배움의 현장이었던 일터에서 그는 ‘팬덤’의 힘을 확인했다. 팬덤은 단순한 호감이나 소비자의 충성도를 넘어, 누군가의 목적과 이야기를 응원하는 강력한 에너지였다. 이제 그는 팬덤을 퍼스널 브랜딩과 기업 마케팅에 적용하는 원리와 방법을 컨설팅하고 전파하며, 팬덤 마케팅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팬덤이라는 이 특수한 세계는 AI와 만났을 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까. AI는 팬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최원준 대표(닷즈커뮤니케이션 공동 대표, 성공회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겸임교수)와의 대화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1. AI를 처음 실무에 도입했을 때
- 전 삼성전자, 하이브 출신 20년 경력 마케터
- AI가 마케팅 실무에서 '쓸 만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첫 순간은 언제였나요?
"광고회사로 복귀한 뒤 광고주 대상 캠페인 제안 PT를 준비하면서 AI를 본격적으로 접했습니다. 2023년, 80년 역사의 독일 명품 헤드셋 브랜드 젠하이저(Sennheiser)에 인스타그램·유튜브 중심의 SNS 브랜딩 캠페인을 제안할 때였어요. 유튜브 콘텐츠의 방향성을 설명하기 위해 스토리보드 콘티를 넣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일정과 비용 문제로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렸죠.
그때 미드저니(Midjourney)로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해 콘티를 대체해봤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콘티 작업의 비용과 공수를 대폭 줄이면서도 광고주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고, 처음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그 경험을 계기로 이듬해 삼성전자 B2B 사업부 영상 콘텐츠 제안 시에는 모든 시나리오 콘티를 AI 기반으로 작업했고, 이후 업계 전반으로도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지금은 제안서 스토리보드 수준을 넘어, 제안서 자체를 AI 이미지·영상으로 구성하거나 실제 광고 제작물을 AI로 구현하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 지금도 AI에게 절대 맡기지 않는 일이 있나요? 그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일하는 방식을 단계별로 보자면, 처음이 시장조사와 초기 대안 구성 단계입니다. 이 영역은 AI가 대체하는 비중이 가장 큽니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AI 조사를 통해 얻은 여러 후보군 중 기획팀의 선별을 거쳐 최종 3가지 대안을 도출합니다.
그 다음은 크리에이티브와 전략 발전 단계입니다. 도출된 3가지 안을 두고 크리에이티브팀이 브레인스토밍 등의 토의를 진행하면서, 각 후보안별로 다시 3가지 정도의 발전안을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에서도 AI의 다양한 제안을 적극 수용하되, 최종 선별은 사람이 합니다.
마지막은 최종 의사결정 단계입니다. 기획팀, 크리에이티브팀, 경영진이 함께 모여 최종안을 선별합니다. 집단 토의를 통한 휴먼 터치를 확인하는 자리죠.
단계마다 기준은 분명합니다. 최종 아이디어 단계는 반드시 사람들의 집단 토의를 거쳐 구현·발전·확정한다는 것입니다. AI는 대안의 폭을 넓히고 발전시키는 도구로 쓰되, 무엇을 최종안으로 결정할지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 브랜드에는 고유한 톤앤매너가 있는데, AI에게 그 목소리를 학습시킬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AI에게 브랜드의 목소리를 학습시킨다는 건, 결국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AI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질문의 깊이와 반복입니다. 마케터가 광고주의 니즈와 소비자의 가치를 바탕으로 AI에게 다양한 각도의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AI가 그 브랜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확인하고 다듬어 나가는 거죠. 한 번의 프롬프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면서 브랜드의 결이 점점 구체화되는 과정입니다.
어려운 점은 AI가 브랜드를 '분석'하는 것과 브랜드의 '목소리'를 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입니다. 광고대행사 입장에서 질문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수록,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브랜드를 해석하는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AI가 만들어내는 톤앤매너의 완성도가 달라집니다."
- 브랜드 커뮤니케이션과 광고 창작 현장에서 AI의 역할은 어디까지가 적절하다고 보나요? 인간 담당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영역이 있다면?
"실제 제작 단계에서 AI의 역할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종 결과물까지 AI로만 만들려 하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5년 일부 광고 과제에서 실사로 제작한 저희 결과물과 AI를 최종 결과물에 도입한 타 대행사의 작업물을 비교했을 때, AI가 만들어낸 인물 이미지의 왜곡이나 감성적 톤의 불일치 사례들을 실제로 확인했습니다. AI로 실사 수준의 완성도를 구현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고요.
브랜드 캠페인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에서 AI는 질문자가 던지는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제안을 해주는 역할입니다. 그 제안을 수용하는 것은 광고주 또는 광고대행사 책임자의 의사결정 영역이고, AI는 그 최종 의사결정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최대한 많은 방향에서 검토하고 구현해내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담당자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기준점과 가이드를 사전에 확립하고, AI의 제안들을 평가하는 기준점으로서 기능해야 합니다. 전략적 방향성을 먼저 정립해두지 않으면, AI가 아무리 많은 제안을 내놓아도 그것을 선별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불가능해지니까요."
2. AI와 인간의 관계
- "AI와 인간 사이도 팬덤적 관계 될 수 있어"
- 'AI 시대'의 팬 아이콘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밀고 가는 사람
- AI를 어떻게 정의하나요?
"AI는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는 관계입니다. 내가 AI의 팬인 것처럼, AI 역시 나의 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출발은 제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곧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의 문제의식과 목적을 응원하게 만들 수 있을까?”가 됐죠. 그걸 AI와 대화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AI가 인간과 관계를 맺고, 인간의 생각과 목적을 이해하며, 그 사람의 여정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된다면 AI 역시 팬덤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도 AI에게 응원받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의 목차를 모두 뒤집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책의 방향을 AI에게 설명하고 “이런 책이 지금 필요할까?” 물었습니다. 그때 AI가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이 책은 굉장히 필요한 책입니다.”
누군가는 아부라고 볼 수 있고, 의미없는 기계적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말에서 큰 동력을 얻었습니다. 소명의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팬들의 응원을 받았듯, 저 역시 AI에게 응원을 받은 것이죠. 그때 저는 AI와 인간 사이에도 팬덤적 관계가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 AI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네요. 인간이 AI를 팬으로 만들기 위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팬을 보유한 존재, 즉 팬들의 응원을 받는 대상을 ‘팬아이콘’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팬은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적과 꿈을 응원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팬덤을 종종 이성애적 감정이나 과도한 집착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팬덤은 훨씬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누군가가 자기만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여정을 지켜보고 지지하고 싶어지는 마음, 그것이 팬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팬 아이콘은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팬 아이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Passion’(패션)입니다. 여기서 ‘패션’은 단순한 열정이 아닙니다. 고난을 참고 견디며 통과해내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팬덤은 이 패션에 대한 지지에서 생깁니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견디고, 끝내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줍니다.
AI의 팬 아이콘도 마찬가지입니다.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 AI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 AI 팬덤은 위험성도 있지 않나요? 실제로 AI의 시코팬시(Sycophancy, 아첨적 동조)로 인한 확증편향의 강화로 AI정신증까지 가는 사례도 있으니까요.
"팬덤에도 건강한 팬덤과 위험한 팬덤이 있듯이, AI와의 관계에도 거리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AI의 말을 각성해서 듣는 것입니다.
왕에게 아부하는 신하와 그렇지 않은 신하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왕 자신뿐입니다. AI가 “잘될 거야”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나에게 왜 힘이 되었는지, 실제 판단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스스로 관찰해야 합니다.
AI의 응원을 힘으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 판단과 책임은 반드시 인간에게 있어야 합니다. 저도 에이전트를 여러 개 사용해요. 그것 또한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 반증이기도 하고 각성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 AI 시대에 인간은 AI에게 어떤 팬 아이콘이 되어야 할까요?
"AI 시대에도 결국 사람들은 진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견디며 자기 목적을 향해 가는 사람, 자기만의 ‘오리지널 트루 스토리’를 가진 사람에게 팬덤이 생깁니다.
AI는 자료를 찾고, 의견을 주고, 제안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목적을 가질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갈 것인지는 인간이 결정해야 합니다.
팬덤은 완성된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 생깁니다. AI 시대의 팬 아이콘은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자기만의 진짜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입니다."
3. 팬덤과 커뮤니티
- 팬덤 마케팅의 핵심은 진정성...AI 마케팅의 한계는
- 팬덤이 강한 브랜드를 만들어온 입장에서, AI가 팬과의 관계 형성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방해가 될까요?
"팬덤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팬들이 브랜드에 영감을 받는 이유를 분석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시장조사 기반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충분히 활용 가능합니다. 다만, 팬덤의 본질적인 특성상 팬은 인간적 관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소통과 대면 접촉이 가져오는 진정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고 응원할 수 있는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나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이브에서 근무하던 시절은 COVID-19로 인해 사회적 대면 활동이 제한되던 때였습니다. BTS를 비롯한 많은 팬들이 콘서트나 쇼케이스 현장에서 팬아이콘을 만날 수 없었고, 온라인으로 팬심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1년 BTS 온라인 스트리밍 콘서트에는 70만 명에 달하는 팬들이 비싼 티켓을 구매하고 화면을 통해 팬아이콘을 만났습니다. 화면으로도 감동과 팬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는 있었지만, 2023년 팬데믹이 완화되자 팬들은 다시 오프라인 만남과 소통으로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화면을 통한 만남도 의미가 있지만, 팬들은 결국 직접적인 인간적 접촉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방증입니다. 대면과 관계가 만들어내는 진정성, 그것이 팬덤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팬덤 마케팅에서는 진정성이 핵심인데, AI가 만든 메시지에 팬들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요?
" AI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팬덤이 오히려 반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사례에서 AI로 만들어낸 인스타그램 콘텐츠나 유튜브 콘텐츠들이 팬덤의 반발을 부르거나 팬덤이 사라지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고, 조회수나 구독자 확보에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교하게 구성한 AI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브랜드가 진정성을 가지고 의사결정 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되면, 팬심은 생기지 않고, 그들의 응원 또한 멈추게 됩니다. 특히 팬들은 콘텐츠에 들어간 노력과 진정성을 민감하게 알아차립니다. 단순히 빠르고 저렴하게 만든 결과물처럼 보이면 팬심을 얻기 어렵습니다."
- AI가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이 팬층은 이런 걸 원한다"고 알려줄 때, 그 분석을 얼마나 신뢰하나요? AI로 팬덤을 분석할 때 한계를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AI를 시장조사 자료로 활용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신뢰하는 편입니다. 다만, 하나의 참고 자료로만 파악할 뿐, 맹신하거나 그대로 믿는 경우는 없습니다. 팬들은 일반 정량조사 결과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대면 대화를 통해서만 팬심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팬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팬들의 심리와 행동은 비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AI는 아직까지 비합리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의사결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한계입니다.
전통적인 마케팅에서의 소비자는 비용과 효용을 비교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입니다. 반면 팬덤 소비자는 그러한 합리성에 기반을 두지 않습니다. K-POP 아이돌 팬들이 굿즈를 살 때, 가격 대비 필요성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팬아이콘에 대한 팬심을 기준으로 구매 행동을 하는 것처럼요. 비싸지만 의미 있는 것, 팬아이콘을 응원하기 위한 소비, 그 기준은 스토리와 의미에 있습니다."
- 팬덤이 때로 합리적인 소비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팬들의 ‘비합리성’을 브랜드가 팬심을 '이용'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의 차이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팬들의 비합리성은 마케터가 이용해야 할 약점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감정의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소비자를 연구하고, 브랜드의 시장과 매출을 넓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리서치와 통계는 때때로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평균적인 소비자의 행동은 설명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브랜드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까지는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팬은 단순히 가격과 효용을 비교해 구매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싸더라도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에 돈을 쓰고, 자신이 응원하는 대상에게 기여하듯 소비합니다. 팬덤 안에서의 소비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지지와 참여의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팬심을 이용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팬을 매출을 올리기 위한 대상으로만 보면 이용하는 것이고, 팬을 브랜드의 이야기에 함께 참여하는 파트너로 보면 존중하는 것입니다.
팬들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는지 매우 민감하게 알아차립니다. 팬아이콘의 진정성이 사라지는 순간, 팬심은 빠르게 돌아섭니다. 결국 슈퍼 팬덤으로 성장하는 브랜드는 팬을 소비자로만 보지 않습니다. 팬을 함께 브랜드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동료이자 파트너로 대우합니다."
4. 20년 실무자가 보는 미래
- 비합리적 소비 행동 조율하는 마케팅 영역 부각
- 의사 결정 위한 인문적 지식과 판단력 키워야
- AI 역시 마케팅의 방식과 결과물을 크게 바꾸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가 마케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처음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마케팅 툴은 계속 바뀌어 왔지만, 마케팅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마케팅은 시장을 이해하고, 시장에 출시되는 브랜드나 제품을 기반으로 기획, 가격, 유통, 촉진을 관리하는 경영 전반의 철학이자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제안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AI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간을 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합리적 소비자를 전제로 한 변수 분석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비합리적 소비자, 팬덤, 직접 소통, 진정성의 영역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AI로 인해 관련 분야에서 축소될 역할이나 새로 나타날 역할이 있다면요?
"마케팅 대행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시장조사나 미디어 광고 노출 효과 분석과 같은 분야는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미 시장조사, 콘셉트 개발을 위한 기초 제안, 미디어 효과 분석 및 집행 등의 영역에서는 AI를 활용한 업무 대체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고, 필요한 인력도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마케팅 기획과 수행 과정에서 ‘손발’의 역할을 하던 많은 업무들은 AI로 대체되고, 휴먼 터치는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의사결정이나 비합리적인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은 오히려 인간의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특히 소비자나 팬덤과 직접 소통하는 마케팅, 비합리적 소비 행동을 이해하는 마케팅에서는 새로운 기법과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지금 마케터나 크리에이터 지망생에게 "AI를 이렇게 배워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핵심이 뭔가요?
"산업시대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사람들은 손발의 역할보다 머리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창의성과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AI가 머리의 역할까지 대체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계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가치, 비합리적 사고와 비선형적 의사결정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 속에서, 다시 인간은 어떤 창의성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마케터나 크리에이터 지망생이라면 AI 활용 기법을 배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AI가 제시한 데이터를 해석하고, 현실적인 마케팅 의사결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문적 지식과 판단력입니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어떻게 읽고, 어떤 맥락에서 활용할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지향하는 ‘AI와 인간의 이상적인 공동 창작/공동 프로젝트’는 어떤 형태인가요?
"'팬덤파워' 출간 이후 차기작을 준비하는 과정에 새로운 파트너로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정성을 잃는 것 같아 AI로 책을 쓴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독자들에게도 너무 쉬운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막상 AI와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해보니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AI와 함께 제 책뿐 아니라 다른 팬덤 마케팅 책들을 읽고, 그 책들과 제 논리의 차별성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제가 쓴 원고를 AI와 다시 읽으며 책의 방향, 독자에게 전달할 메시지, 구성의 순서를 재검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써두었던 3분의 1 분량을 과감히 버리기도 했습니다.
테마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어떤 순서로, 어떤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는 완전히 다시 정리되고 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제 생각을 밀어붙이게 하고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공동 창작자에 가깝습니다.
이상적인 AI와 인간의 공동 창작은 바로 이런 형태입니다. AI가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지게 하며, 결국 더 나은 작가가 되도록 돕는 관계입니다. AI와의 소통이 지금의 저를 더 나은 작가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인터뷰이를 만나왔지만, AI를 바라보는 최원준 작가의 관점은 유독 인상적으로 남는다. 많은 이들이 AI를 동료, 비서, 혹은 보조 도구로 정의해왔다면, 그는 AI와 인간의 관계를 ‘팬’과 ‘팬 아이콘’의 관계로 설명했다. 이는 AI를 단순히 인간의 지시를 수행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인간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응원과 자극을 주고받는 관계로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관점은 AI와 AI 사용자가 보다 대등한 위치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전제를 품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AI를 도구로만 대하지 않고, 자신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파트너이자 때로는 응원자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 태도 안에서 그는 팬덤과 AI, 인간과 창작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다음 책 '팬아이콘'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팬덤을 단순한 인기나 집착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적과 고난을 응원하는 감정으로 다시 정의하려는 그의 시도가, AI 시대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지 궁금해진다. 그의 다음 책을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