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고선경 시인의 ‘고백’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백 / 고선경
너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분홍색 카디건과 청바지를 골라 입었지 상점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노래를 기억해두었고 캐러멜 하나를 너에게 쥐여 주면서 이거 내 전부야, 말했어
전부를 건네받고도 질투를 느낀다는 게 이상하지 않고
네가 꿈에서 깨물었다는 과일의 이름이 궁금할 뿐이지
나는 너에게 자두에 가까운지 딸기에 가까운지
어떤 붉음일지
미끈한 턱을 타고 흘렸을 과즙의 끝 맛을 상상했지
그때 너는 나의 달고 끈적한 취향을 받아 적었잖아 나를 안으려면 어떻게 구겨져야 하는지 학습했잖아 구겨진 손금 사이로 캐러멜이 녹아가는 동안
전부를 줘버리고도 수치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입 벌려 웃었어
너를 만난 날에는 일기장에 붙은 별 모양 스티커들이 밤새 수런거렸다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가며 흩어졌다
원래대로 돌이킬 수는 없었다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 같이 읽고 하루 종일 퍼즐을 같이 맞춰도 내가 너의 전부인 것 같지는 않아서 빗물 같은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오고
어느 새벽 네가 짚어보게 될 기타의 가느다란 줄에는 어떤 빗방울이 맺혀 있을까 그 순간 빗방울이 투명하게 기억해낼 노래는
너를 주저앉혔으면 좋겠다
주저앉아서 문득 무른 과일 냄새 맡았으면 좋겠다
어느 편의점에서나 파는 분홍색 캐러멜
이렇게 돌려받고 싶다
- '러브 온 더 락' (창비, 2026)
고선경 시인은 2022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로 등단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연애, 월세, 아르바이트, 외로움처럼 요즘 청춘의 현실을 날카롭고도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샤워젤과 소다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러브 온 더 락’ 등을 통해 일상 속 불안과 사랑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면서도 힙한 감각으로 묵직하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문화와 ‘텍스트힙’, ‘포엣코어룩(시인처럼 입는 스타일)’ 감성이 확산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