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느낌의 공동체 外

[비평연대] 유희선·맹준혁·김미향·김도경의 500자 서평

2026-06-26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지음, 문학동네, 2011)

사계가 나름 나름으로 독서의 계절이지만 6월은 특히나 도서전의 계절이다. 도서전이란 높은 확률로 내향인일 출판사 직원들이 심연 속 외향성을 끌어올려 대면한 독자들에게 책을 영업하는 자리다. 이 책이 참 좋은 책인데... 그 ‘좋음’을 어떻게든 와닿게 하고픈, 발을 동동 구르는 원념이 원기옥처럼 집약된 행사인 것이다. 이 거사를 앞둔 나, 출판 마케터. 사고 싶어지는 책 설명을 위해서는 정확한 찬탄의 어휘를 채집해야 하므로 책장의 ‘신형철 전집 존’으로 향한다.

신형철은 별로인 게 왜 별로인지 보다 아름다운 게 왜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문학평론가다. 이에 비판하는 이들도 있으나... 아름다운 걸 어쩌라고. 내가 소개하려는 '느낌의 공동체'는 평론집이 아니라 산문집이기는 하지만. 여튼 문학에 대해 쟤는 어떻고 너는 어떤지 삿대질로 품평하는 쿨(하고 싶은)남이 되는 대신 너를 읽고 내 세상은 영영 달라졌다며 마침표의 바짓가랑이에 절절하게 매달리는 그가 좋다.

'느낌의 공동체'에서는 지금보다 약 20년 젊은 신형철이 기형도의 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뿐 아니라 유재하며 언니네 이발관의 가사, 이창동의 영화 등에 대고 다채롭게 사랑을 고백한다. 적확한 어휘로 고백하는 그 날카로움으로 사회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희미하게 부유하는 느낌을 명확한 단어로 포착하고 싶은 이들, 나를 통과한 느낌과 가깝고 근사하게, 또 멋지고 근사하게 칭찬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이들을 '느낌의 공동체'로 불러오고 싶다.(유희선 / 출판마케터)

유희선<br>

■ 중동태의 세계(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동아시아, 2019)

"인간이 애초에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이라는 김재인 교수의 추천사를 보자마자 이 책을 사고 싶었다. '중동태'라는 낯선 말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이 책이 던지는 다음의 질문이었다.

'인간은 정말 자기 행위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존재인가?'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판단할 때 "네가 선택했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택과 의지는 같은 말이 아니다. 어떤 행위는 오롯이 내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과거의 조건, 몸의 반응, 관계,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생겨난 결과일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최근에 편집한 '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저자 니클라스 브렌보르 역시 '중독'이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고쿠분 고이치로는 인간의 행위를 능동과 수동이라는 이분법적 언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는 브뤼노 라투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라투르가 행위자를 인간 주체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물로까지 그 관계망을 확장했다면, 고쿠분은 행위의 문법 자체를 의심한다. 요컨대 두 사람 모두 "이건 대체 누가 한 일인가?"라는 익숙한 질문에 대한 성급한 확답을 유보하게 만든다. 물론 고쿠분이 책임을 회피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애초에 그런 결론을 내리는 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판단의 지연 속에서 책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질문된다.(맹준혁 / 출판편집자·콘텐츠기획자)

맹준혁<br>

■ 작가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버리는가(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최민우 옮김, 휴머니스트, 2026)

작가들은 작품으로 말하지만, 때로는 작품보다 더 솔직하게 창작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작가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버리는가'는 헤밍웨이, 잭 런던, 헨리 제임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마크 트웨인, 에드거 앨런 포 등 세계 문학사의 거장들이 직접 쓴 창작론과 문학론을 한데 모은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서로에게 동의하기보다 자주 반박하고 논쟁한다는 데 있다. 소설은 삶을 재현해야 하는가,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작가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 속에서 독자는 작품 뒤에 숨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만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훌륭한 교과서이고, 독자에게는 문학을 더 깊이 읽게 만드는 책이다. 작가의 영혼이 머무는 밀실에 잠시 초대받는 기분을 선사한다.(김미향 /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김미향<br>

이 일기는 읽지 마세요, 선생님(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정미영 옮김, 우리교육, 2007)

최근 다시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불현듯 떠오른 책이 있었다. 어릴 적 학교 도서관에서 홀린 듯 집어 들었던 '이 일기는 읽지 마세요, 선생님'이다. 학기 중과 여름 방학마다 정해진 분량의 일기를 써서 제출해야 했던 기억은 내게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진솔한 일상을 담되, 나와 매일 마주치는 타인에게 반드시 그 내용을 보여야만 한다는 전제 속에서 지어내기, 감추기, 드러내기를 선택적으로 수행하던 기억들. 당시에는 일기가 감정의 창구라기보단 무엇을 드러내야 하며 또 드러내지 말아야 할지를 정교하게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연습 같았다.

하지만 소설 속의 던프리 선생님은 학생이 쓴 일기를 읽어도 될지, 읽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일기의 주인에게 넘겨준다. 그래서 티시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를 일기로 풀어내며 숨 막히는 현실을 조금씩 헤쳐 나간다. 티시가 그 고통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매주 쓰는 일기의 상단에 남길 수 있는 “읽지 마세요, 던프리 선생님”이라는 문구 한 줄과,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는 어른의 존재다.

아프지 않은 성장 같은 것은 없다지만 적어도 그 시간 속에서 잠시 몸을 피할 안전지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리고 던프리 선생님이 지킨 그 사소한 약속은 “나는 네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메시지가 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이 책에서 새롭게 눈길이 간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는 일은 쉽지만, 정작 스스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던프리 선생님이 제안한 특별한 “일기 쓰기의 규칙”을 통해, 아이에게 정말로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따뜻하고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도경 / 출판편집자·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