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사람이 보이는 건축 外
[비평연대] 김성신·김재훈·노신회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 사람이 보이는 건축 (방명세, 나비의활주로, 2026)
불꽃처럼 살다가 장렬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낭만주의 시대의 혁명가들을 우리는 추앙한다. 그러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웅들이 있다. 바로 ‘패배하지 않는 혁명가’들이다. 이들은 신념을 위해 끝없이 투쟁한다. 비명을 지르지도, 소리 내어 울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어떤 경우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자존심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싸움을 멈추는 법이 없기에 패배도 모른다.
이들은 말이 적다. 대신 지극히 섬세한 주파수로 세상과 소통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으며, 언제나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우리 시대 영웅들의 면모다. 내가 아는 방명세도 그중 하나다.
“조용히 돌아갈 수 있는 자리 하나가 사람을 끝까지 걸어가게 한다는 것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가 책 한복판에 숨겨 놓은 문장이다. ‘공공(公共)’이라는 단어를 방명세만큼 아름답고 완전하게 사용한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김성신 / 출판평론가·비평연대)
■ 내면의 작은 방 (정용실, 찌판사, 2026)
고등학생 시절까지 유독 마른 아이, 또래보다 허리가 얇은 아이라고 불렸다. 건축이라는 꿈을 안고 건축학과에 진학했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달렸다. 5학년 무렵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알레르기 반응으로 급하게 새벽에 응급실에 가고, 평생 흘리지 않던 코피를 쏟고, 몸이 붓기 시작하면서 체중이 10킬로 불었다. 누적된 것들이 한꺼번에 터진 걸까. 졸업 즈음 나는 방향을 잃고 지쳐 멈춰버렸다.
책 중반,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꺼내며 각자의 내면의 방을 마주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 장면들을 읽으며 어딘가 익숙한 감각이 올라왔다. 나도 겪어본 일이었기 때문일까. 저자의 수업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책을 다 읽고도 나의 내면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이 내가 원하는 방향인지도 사실 잘 모르고 있다. 방문은 꽤 견고하게 자물쇠가 걸려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이 그 자물쇠를 열 마스터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서, 조금씩 그 문을 열어볼 방법을 찾아야겠다.(김재훈 / 건축·문화비평가)
■ 어른의 시간-완벽하지 않은 날들을 위한 인생 수업 (줄리 리스콧-헤임스, 박선영 옮김, 온워드, 2022)
어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성숙하고 모범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너는 어른이야?”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십 대는 아니니 그렇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도 아니고 ‘그렇다는 할 수 있다’라고 조건부를 붙인 것이 이미 멋진 어른 탈락이다. 다른 한 편으로 아직 모든 걸 책임지는 어른까지는 되고 싶지 않다는 철없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사고한다는 것 자체가 미성숙하다는 거고 그게 어른답지 못한 거 아닐까 다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행히 동시대에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저자인 리스콧 헤임스는 과거 20세기 심리학자들이 성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꼽은 학업, 취업, 독립, 결혼, 출산이라는 5가지 지표가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는 1998년도부터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일해왔다. 특히 신입생 학부 학장 및 상담 과장을 맡으며 수많은 20대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고 책 속에서는 직접 경험한 다양한 학생들의 사례와 함께 과거 어른의 기준에서 벗어난 새로운 어른다움을 제시한다. 젊은 세대를 향해 이렇게 해야 ‘진짜’ 어른이라는 잔소리 대신 본인이 학생들과 나눈 대화와 사례를 근거로 과거와 현재에 바뀐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그들을 이해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책 속에서 ‘어덜팅(adulting)’ 즉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 자체를 나타내는 단어를 소개한다. 책 전반에서 그는 어른이라는 건 완벽한 상태가 아닌 그러려고 노력하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나도 완벽한 어른이냐는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워도 어른 되는 중? 이라고 물어본다면 맞지, 맞기 하고 웃으며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노신회 / 스피치앱‘또박또박’대표·문화평론가·비평연대)